우리는 언제나 죄인을 찾는다. 마치 감전된 사람처럼 “누가 나쁜 짓을 했냐”며 도덕이란 회초리를 든다. 또 다른 이는 도덕 대신 법전을 편다. 알량한 법 조항을 들이밀고 “그것은 불법적이야!”라며 묘한 우월감에 취한다. 우리가 홈플러스 사태를 보는 눈도 다르지 않다. 사업가를 세우고 “최고급 별장을 구매한 무책임하고 나쁜 사람”, “뻔
12·3 내란 뒤 정년연장부터 산업전환·야간노동까지 논쟁적인 논의가 여당 주도로 흘러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TF에서 특위로 격상된 ‘회복과 성장을 위한 정년연장특별위원회’와 최근 발족한 ‘정의로운 전환 대책 특별위원회’, 을지로위원회가 주도하는 ‘택배분야 사회적대화기구’ 등 다양한 대화협의체가 당 내부 회의체 형식으로 운영된다. T
포털에 ‘포괄임금제’를 검색하면 나오는 자동완성 키워드 중 하나는 ‘포괄임금제 만든 XX’다. XX는 욕설이다. 어떤 유저들은, 포괄임금제를 만든 사람이 누구이고 어느 대통령이 도입했는지 부단히 찾고 있다. 공짜 야근의 빌미가 되는 제도의 기원을 알아야만 했다.그 키워드를 처음 봤을 때, 수없이 키보드를 두드렸을 노동자를 떠올렸다. 프로젝트 기간이라며 매일 새벽에 퇴근하고도 초라한 임금명세서를 받아 들어야 했을 IT노동자, “근무시간을 산정할 수 없다”는 말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을 사무직, 포괄임금제가 부당한 줄 알면서도 선택권이
‘레이지 베이트(Ragebait)’라는 신조어가 있다. 정제된 번역은 ‘혐오·분노 조장 콘텐츠’고, 좀더 뉘앙스를 살려 번역하면 ‘분노 떡밥’ 정도일 것 같다. 자극적인 제목으로 클릭수를 유도하는 제목 낚시(Clickbait)의 일종이다. 저자 한스 로슬링의 생각을 빌리자면, 분노가 인간의 본능과 관계돼 있기 때문에 분노 떡밥은 쉽게 보
“국민주권정부, 노동존중사회를 지향하는 새 정부 기치에 맞게 고등학교만 나와도 좋은 직장에서 일할 수 있는 제도와 예산을 꼭 마련하겠다.”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18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직업계고 학생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의에 이같이 답했다. 5일 특성화고 학생·교사와 함께 영화 를 관람하기도 한 김 장관은 이란희 감독 인터뷰 기사를 언급하며 “학생들에게 실습 현장이 ‘벌 받는 곳’이 돼선 안 된다는 말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학생들이 자기 일을 보람
국회 사회적 대화체가 다음달 공식 출범한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대화를 제안한 게 지난해 7월이니 1년2개월을 논의했다. 정치의 시간이었던 지난해 12월3일부터 올해 6월4일까지 넉 달 정도 빼도 8개월이나 머리를 맞댔으니 장고했다. 그래도 출범은 할 수 있게 됐으니 일단 악수는 아니게 된 셈일까.확언은 어렵다. 가봐야 할 일이다. 국회 사회적 대화를 통해 성과가 도출될지 아직은 미심쩍다. 의제만 봐도 그렇다. 재계와 노동계가 벼린 칼을 뭉툭한 자루에 넣어놓은 격이다. 첨단신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인력양성 방안 모색은 결국 채용과
취임 100일을 일주일여 앞둔 4일 현재 이재명 대통령 지지율이 2주 연속 상승세다. 취임 후 지지율 상승세를 꺾은 것은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 등에 대한 8·15 특별사면과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기준 강화였다. 다시 상승으로 돌아서게 한 것은 한미 통상협상 후속타인 한미 정상회담이 가장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지난달 25일(미국 현지시간) 이뤄진 한미 정상회담은 초미의 관심사였다. 상호관세 15%로 결정한 통상협상 후속 논의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 속에서 농축산물 추가 개방이나 주한미군 감축 등 미국의 무리한 요구가 이어질지 긴장의
자사주 소각 논의를 제외한 상법 개정의 주요 쟁점 논의가 마무리되는 분위기다. 상법 개정은 미시적으로 “회사의 주인은 누구인가”를 따지는 일이고, 거시적으로는 한국 자본주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과정이다. 지난달 1차 개정(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 확대)을 통해 주인은 ‘주주’로 확장됐고, 이른바 ‘더 센’ 2차 개정(집중투표제 도입 등)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는 자본이 인간을 기계 속도에 맞춰 통제하는 장면을 풍자한다. 핵심은 인간이 자기 신체를 스스로 통제할 권한을 완전히 상실했다는 점이다. 오늘날 한국의 고용허가제는 그보다 한 발 더 나아간다. 사업장 변경과 지역 이동이 차단된 이주노동자는 폭언과 멸시 속에서도 벗어날 길이 없다. 노동자는 신체를 넘어
이재명 대통령의 첫 8·15 광복절 특별사면·복권 조치로 정치권이 떠들썩했다. 국민의힘이 크게 반발하고, 더불어민주당과 소수정당들이 옹호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국민의힘은 조국 조국혁신당 전 대표와 윤미향 전 의원 등을 포함한 ‘여권 인사’가 대규모 특사 명단에 오른 점을 비판했다. 후폭풍도 이어지고 있다. 올해 광복절은 둘로 쪼개질 양
“이재명 정부는 갈등을 회피하는 방식을 쓰진 않을 것이다. 여대야소 정국에다 거대 여당이다. 정부가 의지를 가진 의제들은 마음먹고 추진할 거다. 정부가 책임지고 추진한 뒤 국민의 심판을 받는 것, 그게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좋은 정치다.” 이재명 정부 출범 초기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일하게 된 분들을 만나 들었던 이야기다. 기대가 실망을
정치인의 말에 위로를 받기도 한다. 국회의원은 법을 짓는 사람이지만 정부와 기업에 국민의 목소리를 전한다. 고 노회찬 의원은 그런 점에서 탁월한 어른이었다. 국민을 위한다며 뜻모를 소리를 해 대는 이들에게 날카롭지만 쉬운 말로 잘못을 꼬집었다. 그는 평범하지만 자기를 표현할 언어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을 대신해 말할 줄 아는 정치인이었다. 그래서
‘주얼리 노동자’ 김정봉 금속노조 동부지역지회 부지회장은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가 처음으로 만난 ‘1호 노동자’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노숙농성 중이던 김정봉씨는 지난달 24일 김영훈 후보자가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처음 출근하던 날, 피켓을 들고 주얼리 노동자들의 고용보험 미가입 실태 등을 알리며 근로감독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당시 김영훈 후보자는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이 끝난 뒤 농성장을 찾아 “어떤 해결책이 있는지 고민하겠다”고 말했다.기자는 다음날인 6월25일 오전 ‘1호 노동자
기자가 쓰는 글은 현학성을 덜고 구체성을 더하는 게 미덕이라고 믿는다. 취재의 단면을 잘라 내 전달하는 ‘취재수첩’이라는 공간은 더욱 그렇다고 여겨 왔다. 그 믿음을 이번만 배신해 보려 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우리나라에서 정당에 가입한 사람은 1천120만1천374명이다. 인구수 대비 당원수는 21.8%로,
“노동청에 갔더니 인사팀장이 직접 와서 의견을 수용해 줬고, 원직복직하게 됐어요. 아이를 생각하면 매 순간 고민되고 헛헛하다가도 아이도 사회생활하는 엄마에게 더 좋은 영향을 받을 것 같아 다시 마음을 다잡는 기회가 됐습니다.”육아휴직 사용 도중 갑자기 광주광역시에서 300킬로미터 떨어진 서울로 발령이 났던 메리츠캐피탈 직원 A(40)씨가 지난달 25일 원직복직됐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그날은 애초 신청했던 육아휴직 기간이 끝나는 날이었다. 보도 이틀 만에 전격으로 이뤄진 조치였다. “정말 다행입니다.” 다른 말은 할
25일로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한 지 3주일을 맞았다. 길지 않은 시간이겠지만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겪은 지난 3주는 정신 못차릴 정도로 많은 변화의 시간이기도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4일 국회에서 취임선서 뒤 대통령실에 와서는 “무덤 같다”는 인상적인 첫 마디를 남겼다. 사람도 집기도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었다. 실제 그랬다.
6·3 대선 전으로 페이지를 조금 넘겨 봤다.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난달 12일. 더불어민주당이 마련한 10대 대선공약 설명 기자간담회에 질문을 두 개 들고 갔다. 하나는 노동계가 100% 만족하기에는 부족해 보이는 공약이었고, 다른 하나는 민주당이 어쩌면 ‘영원히’ 못 할 수도 있는 정책에 대한 질문이었다. 앞의 질문은 일하는 사람 권리 보장법, 뒤의 질문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었다.대선후보가 안 왔는데도 취재 열기는 뜨거웠다. 대여섯번 손을 든 끝에 질문할 수 있었다. 차례를 기다리면서 들었던 다른 언론사 기자들의 질문들
“될까요?” 주 4일 근무제와 관련한 취재를 하면서 취재원들에게 자주 들었던 말이다. 물론, 정말 몰라서 묻는 건 아니다. 또래 기자, 비서관들과 했던 대화들은 으레 이런 식이었다. “주 4일제 관련 기사나 행사를 주 6일을 일하면서 준비했다니까요, 주 4일제 가능해요?” 한 전문가는 “주 40시간이 아니라 52시간
지난 28일 서울 구의역 김군 9주기를 맞아 공공운수노조가 다크투어를 기획했다. 출발지인 서울 구의역에서 김군을 추모한 뒤 명일동 싱크홀(땅꺼짐) 사고 현장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에는 땅꺼짐 사고로 오빠를 잃은 유족과 바닥 균열로 영업을 멈춘 인근 상인이 함께했다. 이들은 사고가 일어난 지난 3월24일 이후 두 달이 지나도록 생계대책이나 조사결과를 내놓지 못하는 정부·지방자치단체에 책임을 다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한편 27일엔 대선후보들이 정치 분야를 주제로 티브이 토론에 나섰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정치개혁·개헌에 관
“(동성애를) 좋아하지 않는다.”“(차별금지법 제정) 방향은 맞지만 …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을 하기 어렵다.”대통령 탄핵으로 맞이한 조기대선 국면에서 2017년 유력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전 대통령과 2025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각각 한 말이다. 언뜻 방향성에 동의한 이재명 후보의 말이 진전으로 읽힐 수 있으나, 지금 당장 추진해야 할 과제가 아닌 후순위로 미뤄 버렸다는 점에선 크게 다를 바 없다.정치권과 달리, 8년 새 광장의 모습은 많은 것이 달라졌다. 특히 이번 광장에서는 그간 사회에서 잘 ‘보이지 않는 존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