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나 죄인을 찾는다. 마치 감전된 사람처럼 “누가 나쁜 짓을 했냐”며 도덕이란 회초리를 든다. 또 다른 이는 도덕 대신 법전을 편다. 알량한 법 조항을 들이밀고 “그것은 불법적이야!”라며 묘한 우월감에 취한다.
우리가 홈플러스 사태를 보는 눈도 다르지 않다. 사업가를 세우고 “최고급 별장을 구매한 무책임하고 나쁜 사람”, “뻔뻔한 표정과 도덕불감증”이라고 비난하고, 심지어 ‘검은머리 외국인’이란 인종차별 발언까지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사태를 제대로 보려면 우리는 사회에 눈을 돌려 다시 물어야 한다. “어떻게 나쁜 짓이 가능했나”, “나쁜 짓은 어떻게 합법적이었나”.
홈플러스 사태는 우리가 만든 제도가 어떤 식으로 우리를 배신하는지 보여준 사건이다. 제도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사태가 실토하는 몇 가지 구조적 모순을 확인하게 된다. 개인의 일탈을 넘어 자본의 문제가 선명해진다.
첫째, 홈플러스는 유통업으로 생존할 수 없는 유통업체였다. 점포는 금융 상품으로 잘게 쪼개졌고, 사모펀드의 차입매수(LBO) 뒤 매출 확대와 효율 개선보다 자산유동화가 유리해졌다. 장사 잘해 돈 버는 것보다 부동산 팔아 돈 버는 게 이득이었단 얘기다. 점포는 리츠로, 매출과 각종 채권(심지어 대금채권마저)은 유동화증권으로 팔려나갔다. 이 모든 과정은 본업 수익을 갉아먹는 자해였지만, ‘세일즈앤리스백’이란 세련된 경영기업으로 포장됐다.
둘째, 가치를 만든 사회가 손실을 떠안았다. 홈플러스 점포 부지는 그 자체로 가치가 생길 수 없다. 국가는 도로·지하철·주거단지·학교를 지었고, 몰려든 사람들의 일상이 홈플러스의 부동산 가치를 만들었다. 즉 부동산 팔아 돈 번 홈플러스의 수익 구조 자체가 ‘사회적’이었다. 사회적 토대 위에 생긴 매각 차익은 MBK가 챙겼고, 경쟁력 약화와 청산에 따른 실업과 상권 붕괴라는 손실 청구서는 사회로 날아왔다.
마지막으로 노동자의 임금이 노동자를 겨냥했다. 홈플러스 자본의 한 축은 국민연금이 담당했다. 국민연금은 안정적인 수익을 노린 일종의 ‘경기방어주’ 투자였지만, 노동자가 매달 낸 보험료는 홈플러스의 금융기법을 통한 사적소유에 활용됐고, 구조조정을 정당화하는 자금줄이 된 셈이다.
인수금융, 세일즈앤리스백, 회생제도 등은 모두 합법적인 제도 안에서 설계됐다. 모든 유통업체의 자본운영 구조는 사실상 홈플러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것을 허용하게 하는 착하고 합법적인 파괴를 봐야 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