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얼마 전까지 대기업(X사)에 다녔던 30대 동성애자다. 퀴어로서, 사회비판적 의식을 가진 사람으로서 기업문화에 완전히 녹아드는 것은 예상대로 쉽지 않았다.대기업은 사회가 규정한 ‘정상’ 루트를 착실하게 밟아온 사람들이 모인 곳이고, 규범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멸균처리된 공간이다. 그렇기에 시스젠더·이성애자 중심의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고, 결혼과 임신·출산·육아는 자연스럽게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다. 물론 한국 사회의 많은 곳에서 그러한 분위기가 여전히 공고하다. 그럼에도 X사에서의 많은 관계와 대화들은 자본주의적 욕망과 맞
‘또다시’, 아니 ‘오늘도’ 노동자가 일하다가 죽어 간다. 새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노동자들은 여전히 화재·붕괴·추락으로, 기계에 끼이거나 위험물질에 노출돼 사망한다. 하청·특수고용·일용직이기에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노동자들의 죽음 앞에서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쿠팡에서 올해에만 물류센터 4명, 택배기사 4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쿠팡이 경위를 공개하지 않아 알려지지 않은 노동재해가 더 있을 수도 있다. 사망한 노동자들은 모두 장시간노동·야간노동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장시간·위험노
사회 곳곳에서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노동자의 외침이 들려온다. 부당해고는 노동자의 생존을 위협하고 삶을 붕괴시킬 수 있는 참혹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그러나 사용자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하다.현대차 전주공장 하청업체에서 경비·보안 업무를 하던 노동자가 탕비실 냉장고에서 초코파이를 먹었다는 이유로 절도죄로 기소돼 벌금 5만원의 유죄 판결을 받았다. 업체가 바뀌어도 15년가량 같은 곳에서 근무했던 무기계약직 노동자다. 물류회사 관계자가 “초코파이가 없어졌다”고 112에 신고했고, 사무실 냉장고에서 초코파이
1일 박수근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이 취임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에 따른 원청 사용자 책임 확대 등 중요한 과제를 잘 해결해 가길 바라고 응원한다. 아울러 어렵게 노조법을 개정하였는데 교섭창구 단일화라는 절차적 장치로 하청노동자의 헌법상 노동3권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노동부의 노조법 시행령 개정안을 폐기하기를 요구한다. 나아가 ADR(대안적 분쟁해결제도), 무리한 화해 권고 등에 몰입한 나머지 노동위원회 심판 기능이 약화되고 부당해고 인정률이 낮아진 현재의 노동위원회 개혁을 위해 두 가지 작은 제안을
현재 대한민국은 디지털 전환이라는 거대한 변화를 겪으며 노동시장의 근본적인 구조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인공지능(AI)과 스마트공장을 중심으로 한 디지털 전환은 기존 제조업의 중숙련 노동을 대체하며, 일자리 간 임금격차와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또한 디지털 플랫폼 노동의 확산은 전통적인 기업 고용모델을 약화시키고, 새로운 형태의 프리랜서가 ‘보편 노동’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시대를 열고 있다. 이는 노동시장 사이의 불평등이 커지며 노동시장으로의 진입이 어려워진 지금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이와 함께 앞으로 예견되는 생산인구 감소
지난 칼럼을 통해 정혜윤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이 설파해 온 직무급 만능론이 거시경제 지표를 소거한 통계적 착시이자 기업의 지불능력 격차를 간과한 탁상공론이 아닌가 하는 질문을 정중히 던진 바 있다. 아직 설득력 있는 반론은 제기되지 않고 있으나 침묵과는 달리 그가 설계한 직무급제를 도입하지 않으면 정년연장은 불가능하다는 위험한 프레임은 여전히 노동 현장을 위협하고 있다. 재계는 학문적 정합성이 결여된 그 논리를 방패막이 삼아 임금체계를 바꾸지 않
개인적인 사정으로 암병동을 자주 드나들며 지난해와 올해를 보냈다. 항암치료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든 삶이 멈춰버리는 장면을 떠올린다. 머리가 빠지고, 온몸이 무기력해지고, 거동조차 힘들어지는 그런 모습 말이다. 하지만 병동에서 마주한 암환자들의 모습은 전혀 달랐다. 그곳은 생각보다 활기차고, 또 생각보다 일상적이다. 낮병동에서 항암을 위해 입원한 사람들 중에는 연차를 쓰고 온 사람, 항암 마치고 다시 회사로 돌아가야하는 사람, 병동에 입원해서도 노트북으로 밀린 일을 처리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만 할
1. 지난달 24일, 고용노동부(장관 김영훈)는 “2026.3.10. 개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시행에 따라 원청 사용자와 하청노조 간의 실질적 교섭을 촉진하기 위하여 ‘노동조합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11월25일부터 내년 1월5일까지 입법예고 한다”고 밝혔다. 하청노동자 등의 원청을 상대로 한 노조 활동 보장을 위해서 입법된 노란봉투법의 시행을 위해서 고용노동부는 대통령령으로 이같이 노조법 시행령을 입법예고한 것이다. 이날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고용노동부는 사용자성 및 노동쟁의 범위 확대에 관한 노조법 개정에 따른 후속조치로
여론조사 문항을 만들다 보면, 실제 조사를 하기 전에 주변 사람들에게 가볍게 특정 주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볼 때가 종종 있다. 가령 요새 대통령 얼마나 일을 잘하냐, 못하냐고 생각하는지. 고용이나 취업 관련 문항을 만들 때면, 이전이랑 비교해서 요새 취업 준비 난이도는 어떤지. 혹은 결혼이나 양육 관련 문항을 만들어야 한다면 주변에 결혼하는 사람이 늘었는지, 주변에 결혼한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등 어찌 보면 시시콜콜할 질문이다.그러나 소위 이런 ‘주변미터’를 결정적으로 참고하기는 어려운 점이, 아무래도 주변인 구성이
올해 3분기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통계는 정부가 표방한 ‘산재와의 전쟁’이 기대만큼의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를 소리 없이 드러낸다. 통계 결과는 심플하다. 사망사고는 작은 사업장, 재래형 사고, 비정형 노동에서 증가했다. 그런데 정부정책은 ‘가장 위험한’ 지점이 아니라 ‘가장 관리하기 쉬운’ 지점을 겨냥하고 있다. 노동자가 일하다 죽는 현장과 정부정책이 개입하는 현장이 어긋나 있지 않은지 중간점검이 필요한 때다. 마흔세 번째 사연은 3분기 사망통계로 본 정부 산재예방정책의 구조적 미스매칭에 관한 이야기다.아무도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중앙정부의 광고예산 집행 관행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정부 광고는 정책 홍보가 아니라 국정운영 신뢰를 세우는 재정행위”라며 부처·기관별로 근거 없이 늘어나는 홍보지출과 정권 홍보성 집행을 공개적으로 지적했다.특히 “성과 없이 돈만 쓰는 방식은 국민에 대한 예산 배신”이라는 발언은 오랫동안 회피해왔던 문제를 정면으로 겨냥한 것으로, 공공 커뮤니케이션 예산 구조 전반을 점검하라는 주문이다.문제는 중앙정부에만 그치지 않는다. 지방정부 광고 시장은 이미 하나의 ‘재정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전체 정부광
박래군 형이 지난 월요일 페이스북에 “친구가 떠났다”며 이형진 민주일반노조 공동위원장의 부고를 전했다. 두 사람이 1988년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때 처음 만난 인연까지 소개했다.이형진 위원장은 1962년 경주에서 태어나 1981년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1984년에 제적당한 뒤 줄곧 인천에서 노동운동에 참여했다.대학에서 제적되면서 해병대에 입대해 제대하자마자 1987년 5월 컨테이너를 만드는 ㈜진도 부평공장에 용접공으로 들어갔다. 석 달 뒤 87년 노동자대투쟁이 벌어지자 파업을 주도했다. 노동법 절차도 무시한 ‘들고양
지난달 21일 삼성바이오로직스에서 임직원 5천여명에 대한 인사팀 노무관리 문건이 우연한 계기로 누출됐다. 연봉과 인사고과는 물론이고 노동조합 활동내역과 사소한 개인정보까지 기록돼 있었다. 사실상 노동자 개인정보를 과하게 수집해 감시에 활용한 것 아니냐는 논란을 야기했다.이번 사건을 통해 누출된 개인정보에는 사내 복지제도이면서 직무스트레스 관리 시스템인 마음건강센터 상담 내역까지 포함됐다. 인사 불이익 조치를 위한 기초 자료가 됐을지도 모른다는 논란에 휘말렸다. 회사에서 실시하는 직무스트레스 관리는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업무 능력을
정형외과 수술실, 마취통증의학과 시술실, 혈관조영실 등 ‘C-arm’이라 불리는 이동형 엑스레이 장비는 이제 현대 의료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장비가 됐다. 의사들은 이 장비가 보여주는 실시간 영상을 보며 환자의 생명을 구한다.문제는 납 방어복으로 가려지지 않는 의사의 손, 팔, 얼굴이 방사선에 무방비로 노출된다는 점이다. 한 번의 노출량은 미미할지 모른다. 하지만 수십 년간 그 미미한 양이 쌓이면 피부 세포 DNA는 손상되고, 결국 ‘피부암’으로 발현될 수 있다.납 가운 속 무방비 지대, 손·얼굴 타깃시술 도구를 잡고 정밀한 조
지난 21일 밤 쿠팡 동탄 물류센터에서 30대 야간노동자가 사망했다. 26일 새벽에는 경기도 광주 물류센터에서 50대 야간노동자가 또 사망했다. 최근 쿠팡 새벽배송을 둘러싸고 심야노동의 위험성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이런 상황에서 연달아 발생한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의 죽음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렇게 일해도 되는지, 우리 사회가 정말 이런 노동을 허용해도 되는지.2000년대 초반, 자동차 제조업에서는 오랜 기간 지속하던 주야맞교대를 주간연속 2교대로 전환해 야간노동을 줄인 사례가 있다. 24시간 돌아가던 공장을 밤에는 멈추고
헌법에는 단결권이 명시돼 있고 노동자는 누구라도 자유롭게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다. 그런데 5·16 군사쿠데타로 세워진 박정희 정부는 노동조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노동관계법을 개악했다. 그 개악안 중에 ‘복수노조 금지’가 있었다. 사측은 이 조항을 활용해 선제적으로 어용노조를 만들어 노동자들을 관리·통제하고 민주노조를 만들 수 없도록 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민주노조가 확산됐고 어용노조 민주화 투쟁도 활발했다. 그렇게 형성된 민주노조들은 노동악법 철폐를 위해 투쟁했다. 김영삼 정부는 1996년 12월, 파견근로자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안 시행에 따른 고용노동부 시행령 윤곽이 나왔다. 개정된 노조법 2조에서는 근로계약 체결이 없어도 실질적이고 구체적 지배력이 있는 자가 노사교섭의 사용자가 된다고 정했다. 그리고 사업 경영상 결정에 관한 사항이 노동쟁의 범위에 추가됐다.그렇다면 교섭 의무가 있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지배력’이란 어떤 것인지,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 경영상 결정에 관한 주장이 무엇인지가 중요하다. 노동부는 이를 시행령으로 구체화하겠다고 밝혔다. 노조법 개정에 따른 사용자성 기준, 노동쟁의 범위,
간호조무사는 동네 병의원부터 상급종합병원에 이르기까지 의사·간호사 등과 더불어 의료 현장 일선에서 환자의 생명을 지키는 직업이다. 그러나 이들을 향한 낮은 사회적 인식은 감정노동을 심화시키고 있으며, 불안정한 고용구조와 열악한 임금 등의 문제는 직무에 대한 자긍심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대전노동권익센터는 지난 4~6월 기관 규모(병의원·요양병원·종합병원·상급종합병원 등)에 따라 표본을 추출한 509명을 대상으로 지역 간호조무사의 고용 현황과 노동환경 등을 파악하고, 감정노동 보호를 위한 대전시 정책 발굴을 위해 ‘대전광역시 간호조무사
최근 직무급과 정년연장에 관한 정혜윤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의 인터뷰와 기사를 보고 아연실색했다. 한때 노동계 동료였던 연구자가 이제는 노동시장의 80% 약자를 위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지난 수십 년간 노동자의 투쟁으로 얻어낸 고용안정과 숙련 보상을 해체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정년연장과 직무급제를 바늘과 실처럼 필연적 관계로 묶는 기이한 프레임을 반복하지만, 직
‘새벽배송 금지’와 관련된 논쟁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 논쟁에서 주목을 끌었던 지점은 ‘안티조선 운동’에 관한 사람들의 태도였다. 연구자 박권일이 용접공 천현우의 조선일보 기고를 문제 삼자 봇물 터지듯이 그게 왜 문제냐는 항의가 쏟아졌다. ‘기레기’ 노래를 부르는 민주당 지지자들이 조선일보 기고를 옹호하는 이 기괴한 모습에 후지타 쇼조의 전향론이 떠올랐다.‘전향(轉向)’이란 참으로 특이한 현상이다. 근대 사회 자체가 개인의 내면에 대한 불가침성을 전제로 성립하기에 국가폭력기구의 ‘외적’인 개입에 따른 ‘내면’의 정향 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