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선영 금속노조 자동차판매연대지회장은 국회 앞 농성 동안 피케팅을 하며 노조법 개정을 촉구했다. <금속노조 자동차판매연대지회>

계엄 사태로 노동자들이 국회 앞에 모여들었던 지난해 12월3일로부터 1년이 지났다. 이들은 다시 국회 담벼락 앞에서 겨울을 맞았다. <매일노동뉴스>는 내란 1년을 맞아 지난해 겨울 국회로 달려간 노동자들과 올해도 국회 앞을 지키는 노동자들을 지난 2일 인터뷰했다.

“비정규 노동자 현실 달라진 것 없어”

지난해 12월3일. 국회 앞 농성장에서 김선영 금속노조 자동차판매연대지회장은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에 가장 먼저 계엄 소식을 전했다. 그날 오전부터 국회 앞은 경찰버스로 둘러싸여 있었지만, “집회 대비겠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밤 10시께 잠에 들려던 찰나, 장석관 사무장이 어머니에게 “계엄이 선포됐다. 당장 들어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믿기 어려웠지만 김 지회장은 밖으로 나가 현장을 촬영해 금속노조에 공유했다. 연락을 받은 조합원·시민들이 속속 모여들며 농성장은 계엄을 알리는 긴박한 현장으로 변했다. 김 지회장은 이들과 밤새 국회 앞을 지켜냈다.

국회 앞에서 계엄을 막아낸 기억은 1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탄핵 이후 시간이 흘렀지만 그는 “비정규 노동자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카마스터인 그는 대리점주와 판매용역계약을 맺고 일했지만, ‘진짜 사장’인 현대차와는 교섭조차 하지 못했다. 지회는 자신들의 문제가 모든 간접고용·비정규직의 문제라고 여겨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을 촉구해왔다.

노조법은 지난 8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과제는 남았다. 국회 앞 농성장은 아직 온전히 철거되지 않은 채 이날로 1천3일을 맞았다. 원청인 현대차와의 교섭도 요원하다. 김 지회장은 “정부가 시행령으로 개정법 취지를 무력화하려 한다”며 “비정규직이 사용자와 제대로 교섭할 수 있을 때까지 단결과 투쟁은 끝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재명 정부, 기대 크지만 우려도
사회양극화 해결하고 경제민주화 힘써주길”

헬기 소리와 계엄 발표가 동시에 들려오던 지난해 12월3일, 이지웅 공공노련 위원장과 노철민 수석부위원장은 국회 앞으로 달려갔다. 국회 앞에는 전차와 군인이 배치됐고 시민들은 도로에 누워 있었다. 이 위원장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마음으로 밤새 현장을 사수했다. 계엄 해제 이후에도 조합원들과 함께 국회·한남동·헌법재판소 앞을 지켰다.

정권이 바뀐 지금, 내란세력은 물러났지만 노 수석부위원장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이후 문재인 정부를 맞아 광장에 모인 목소리가 충분히 실현되지 못했던 경험 때문이다. 그는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감이 더 크지만 우려도 있다”며 “지금은 이재명 정부가 약속한 사회 대개혁을 어떻게 실현해낼지 지켜보는 단계”라고 말했다.

공공부문 노동자로서 그는 정부에 ‘노정교섭’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정부에 따라 공공기관의 공공성·자율성·민주적 운영이 좌지우지되지 않기 위해서는 노정교섭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노 수석부위원장은 “국회에 계류된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공기관운영법) 개정안과 정부조직법 개편안이 조속히 해결돼야 한다”며 “국민 목소리가 반영되는 공공기관 정책 체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크게는 사회양극화 문제와 경제민주화에도 힘써주길 바란다”며 “재벌·대기업이 사회적 이윤을 독점하는 현실을 바꿔내는 것이 우리가 처한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하는 방향”이라고 말했다.

▲ 2023년부터 시작된 금속노조 자동차판매연대지회 국회 앞 농성. 3일로 1천3일을 맞았다. <금속노조 자동차판매연대지회>
▲ 2023년부터 시작된 금속노조 자동차판매연대지회 국회 앞 농성. 3일로 1천3일을 맞았다. <금속노조 자동차판매연대지회>

“공무원 정치기본권, 계엄 맞서는 힘”

평화를 되찾은 2025년 12월3일, 국회 앞 인도에는 여전히 천막이 빼곡하다. 세밑이 다가오면 이곳은 늘 절박한 요구로 덮인다. 해를 넘기기 전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들과 미뤄진 약속의 값을 받아내려는 이들이 모인다. 올해는 공무원노조와 전교조, 학교비정규직이 농성장을 차렸다. 1년 전을 떠올리며 이들은 다시 같은 자리에서 국회를 바라보고 있다.

김태성 공무원노조 사무처장은 지난해 12월3일 계엄 소식을 듣자마자 국회로 달려갔다. 담화문의 ‘반국가세력 척결’이 노조와 야당을 겨냥한 조치라고 직감했다. 민주노총이 “계엄군이 국회로 이동 중”이라며 간부 집결을 요청하자, 그는 서울 영등포구 사무실에서 국회로 가는 10분 동안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날의 기억은 노조가 지금 국회 앞 천막을 친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계엄과 같은 위헌적 조치를 막는 힘은 공무원의 정치기본권에서 비롯한다”고 말했다. 헌법은 국민의 정치적 자유를 보장하지만, 하위법은 공무원의 정당 가입과 후원을 금지한다.

노조는 정치기본권 보장과 퇴직 공무원 소득공백 해결을 위한 입법을 촉구하며 지난 10월20일부터 국회 앞에서 농성 중이다. 정치기본권은 1년 전이나 지금도 제자리걸음이지만 변화도 적지 않다. 지난달 27일 국제노동기구(ILO)는 한국 정부에 공무원의 정치적 자유와 노동권 보장을 권고했다. 최근 국가공무원법이 개정되며 상관의 위법한 지시에 침묵을 강요해온 공무원의 ‘복종 의무’ 조항도 76년 만에 사라지게 됐다. 김 사무처장은 “행정을 잘 아는 공무원이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목소리를 내야 국민에게 이익이 돌아간다”며 “공무원의 권리가 보장돼야 국가 위기에서도 행정이 흔들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 2025년 12월2일 담 너머 국회의사당이 자리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 2025년 12월2일 담 너머 국회의사당이 자리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계엄 후 첫 파업 ‘학교비정규직’, 계엄 끝나도 다시 거리로

유정민 학교비정규직노조 사무처장은 지난해 12월3일 빗발치는 전화로 계엄을 실감했다고 했다. 사흘 뒤 예정돼 있던 총파업에 대한 문의가 쏟아졌다. 노조 위원장·수석부위원장이 현장에 없어 최종 판단은 그의 몫이었다. 그는 고민 끝에 파업을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더 시급한 것은 계엄이었다. 집에서 두 아이를 안아준 뒤 국회로 향해 새벽 4시까지 노조 깃발을 들고 계엄 해제를 기다렸다. 사흘 뒤 열린 첫 파업에는 예상을 웃도는 인파가 모였고, 조합원들은 파업대회 후 탄핵 촉구 집회에도 참가했다.

그 과정에서 작은 변화도 생겼다. 노조 상징인 ‘분홍 조끼’를 알아보고 먼저 인사하는 이들이 늘었고, 교육감·국회의원들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탄핵 정국 속에서 다양한 색 조끼를 입고 거리를 지킨 노동자들은 시민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학교비정규직노조·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여성노조)는 교육청·교육부와 교섭이 결렬할 때마다 국회 앞 농성을 반복해왔다. 예산 확보 없이는 급식 대책과 처우 개선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올해도 임금차별 해소 예산과 학교급식법 개정을 요구하며 지난달 10일부터 농성에 들어갔다. 경찰이 천막 설치를 막아 얇은 비닐과 침낭에 의존해야 한다. 연대회의는 4~5일 2차 릴레이 파업을 준비 중이다.

유 사무처장은 “국회 앞에서 또 겨울을 나고 있지만, 안에서 애쓰는 의원들을 믿는다”며 “교섭과 농성을 잘 마무리하고 돌아가고 싶다. 예산과 제도를 가로막는 내란 세력 국민의힘은 응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말했다.

▲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정소희·이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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