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헌법에는 단결권이 명시돼 있고 노동자는 누구라도 자유롭게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다. 그런데 5·16 군사쿠데타로 세워진 박정희 정부는 노동조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노동관계법을 개악했다. 그 개악안 중에 ‘복수노조 금지’가 있었다. 사측은 이 조항을 활용해 선제적으로 어용노조를 만들어 노동자들을 관리·통제하고 민주노조를 만들 수 없도록 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민주노조가 확산됐고 어용노조 민주화 투쟁도 활발했다. 그렇게 형성된 민주노조들은 노동악법 철폐를 위해 투쟁했다. 김영삼 정부는 1996년 12월,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과 정리해고제 등 노동법 개악안을 날치기로 통과시켰다. 그러면서도 노동자들의 투쟁 요구 중 하나인 복수노조 금지 조항을 없애 상급단체인 민주노총 합법화를 수용했다. 단, 부칙으로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설립은 유예했다. 96·97년 총파업으로도 이것을 바꾸지 못했다.

2010년 노조법이 개정된다. 이 노조법 개정은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를 인정하되 ‘교섭창구 단일화’를 강제함으로써 교섭권을 제한하는 ‘개악’이었다. 소수노조가 되는 순간 그 노조는 교섭권만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쟁의권도 행사할 수 없다. 악질적인 사측은 창조컨설팅 같은 노조파괴 전문업체의 도움을 받아 어용노조를 만들고 갈등을 일으켜 민주노조를 소수노조화하며 교섭권과 쟁의권을 박탈해 무력화하기도 했다.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는 사측이 노동조합을 통제하는 수단이었다.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를 폐기하는 투쟁은 힘 있게 진행되지 못했다. 소수노조로 고군분투하는 노조들만 이 제도에 대해 문제제기할 뿐, 대다수는 교섭대표노조가 되는 데에 힘을 쏟았다.

그런데 우리는 교섭창구 단일화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20여년간 끈질기게 싸워 쟁취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조를 무력화하는 데 사용되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지난 24일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조법 시행령(안)을 브리핑하면서 원·하청노조 전체가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했다. 이 주장의 근거는 없다. 교섭창구 단일화는 애초에 이런 상황을 상정한 제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가 낸 소송에서 행정법원은 개별 하청업체에서 교섭창구 단일화를 하면 하청업체 전체나 원청과의 단일화 절차 없이도 원청과 교섭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바 있다. 정부의 시행령은 이런 법원 판결보다도 후퇴한 것이다.

교섭창구 단일화가 강제되면 하청노조의 교섭권이 무력화될 가능성이 높다. 하청에 지배력을 갖고 있는 원청이 하청업체에 어용노조를 만드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다. 그렇게 민주노조를 소수노조가 되게 하면 교섭권과 쟁의권은 박탈된다. 고용노동부 시행령안은 원청에게 어용노조를 만들라고 부추기는 꼴이다. 물론 고용노동부도 이런 우려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일단 교섭창구 단일화를 한 후 상급단체별로 교섭단위를 분리해 주겠다고 한다. 아마도 노동위원회는 시행령에 따라 교섭단위를 분리해 줄 것이다. 하지만 교섭단위 분리를 예외적으로 간주하는 법원이 그것을 수용할지는 알 수 없다. 원청업체들은 교섭에 나서기보다는 교섭단위 분리 절차를 핑계 삼아 소송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노조법 개정의 취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권 보장에 있다. 그런데 원청과 교섭을 하게 되더라도 실질적으로 협약 체결에 이르기까지 하청노조들은 너무나 많은 난관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고용노동부 시행령에 따르면 하청노조는 최초의 절차, 즉 교섭자리에 앉기 위해 교섭창구 단일화와 교섭단위 분리 절차를 거치고 사용자와 교섭의제에 대해 노동위원회의 사실상 승인을 받아야 한다. 교섭자리에 앉는 것조차 이렇게 어려워서야 되겠는가.

고용노동부 시행령은 폐기하고 원청교섭이 제대로 이뤄지도록 하는 방안을 다시 논의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그치지 말고 노동권을 제한하는 ‘교섭창구 단일화’에 대해 본격적으로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 복수노조 금지부터 교섭창구 단일화에 이르기까지 정부와 기업은 노조할 권리를 제한하기 위해 끈질기게 악법을 만들어낸다. 그런 악법에 맞서 진지하고 끈질기게 투쟁하지 않고 그 악법을 피해갈 우회로를 만들면, 언젠가는 그 악법이 어렵게 쟁취한 노동자들의 권리를 다시 가로막게 된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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