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곳곳에서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노동자의 외침이 들려온다. 부당해고는 노동자의 생존을 위협하고 삶을 붕괴시킬 수 있는 참혹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그러나 사용자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하다.
현대차 전주공장 하청업체에서 경비·보안 업무를 하던 노동자가 탕비실 냉장고에서 초코파이를 먹었다는 이유로 절도죄로 기소돼 벌금 5만원의 유죄 판결을 받았다. 업체가 바뀌어도 15년가량 같은 곳에서 근무했던 무기계약직 노동자다. 물류회사 관계자가 “초코파이가 없어졌다”고 112에 신고했고, 사무실 냉장고에서 초코파이(450원)와 카스타드(600원) 등 1천50원 상당의 과자를 꺼내 먹었다는 혐의였다. 회사쪽은 강력한 처벌 의사를 밝혔고, 검찰은 50만원의 약식명령을 청구했다.
노동자는 무죄를 주장하며 정식재판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벌금 5만원을 선고했다. 이 사건은 지난 9월 2심 재판이 진행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노동자는 “평소 냉장고에 있는 간식을 가져다 먹으라는 말을 듣고 꺼내 먹었으며, 훔칠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경비·보안 노동자가 절도죄로 유죄 판결을 받는 것은 곧 정당한 해고 사유가 될 수 있다. 궁극적으로 노동자가 속한 노동조합을 위축시키는 본보기로 작용할 수 있다. 1천50원 절도에 강력한 처벌 의사를 밝혔던 물류회사 관계자의 태도를 보면, 절도 혐의를 덧씌워 ‘표면적 정당해고 사유’를 만들려는 계책이 숨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건 배경에는 사용자의 노동조합 혐오가 자리 잡고 있었고, 검찰의 충실한 대응이 여기에 한몫을 더했다. 사건 소식을 접하고 “설마 노조 때문은 아니겠지”라고 했던 의문이 말끔히 해소되는 게 더 씁쓸하다.
다행히 지난 11월27일 전주지법은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 승낙을 얻지 않았더라도, 피해자 의사에 반해 냉장고 안에 들어 있던 초코파이 등을 꺼내 간다는 범의(범죄 행위임을 알고 그 행위를 하려는 의사)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평소 사무실 간식을 가져다 먹는 관행이 있었다는 동료 수십 명의 진술과, 회사·검찰·법원을 향해 쏟아졌던 사회적 지탄과 비난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노동자의 투쟁 구호 속에는 ‘임금체불은 경제적 살인이다’라는 외침도 자주 등장한다. 사용자의 부당해고나 임금체불이 범죄라는 사회적 인식이 크게 자리 잡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노동부 장관은 “임금체불은 노동자와 그 가족의 생계를 위협하는 사회적 재난으로 반드시 근절하겠다”고 밝히며 지난 10월23일 상습 임금체불 근절 대책을 발표했다.
상습 체불 사업주에 대한 금융거래상 불이익, 국가·지자체 보조·지원금 신청 제한, 국가 발주 공사 참여 제한, 재직자에게 지연이자 지급 의무, 명백한 고의 체불의 경우 임금 등의 3배 이내 손해배상 청구, 명단 공개 사업주에 대한 출국금지 등 강력한 조치를 담았다. 그러나 노동권을 강화하는 제도가 시행되더라도 “과연 제대로 이행될까”라는 의문은 여전히 앞선다.
2023년 5월 쿠팡CFS는 일용직 노동자의 퇴직금 지급 의무를 회피하기 위해 취업규칙을 변경했다. 1년 이상 근무한 일용직 노동자라도 중간에 4주 평균 주당 15시간 미만으로 일한 기간이 있으면 계속근로기간을 ‘리셋’하는 규정으로 바꾸는 등, 전반적으로 법 위반 소지가 있거나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일용직 특성상 일시적 공백기가 있다고 해도 계속근로가 곧바로 단절된다고 일률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법 위반 소지가 있다. 퇴직금은 개별적·구체적 사실관계에 따라 판단해야 할 사안인데, 사용자 편의대로 개정한 것이다.
이 사건을 수사한 노동부는 2024년 1월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그러나 검찰은 2024년 4월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불기소 처분했다. 이후 사건 담당 부장검사가 당시 지청장 등을 직권남용, 허위공문서 작성·행사 등 혐의로 대검찰청에 진정서를 제출했고,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출석해 외압을 호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현재 ‘쿠팡 불기소 외압 특검’이 진행 중이다.
1인당 200만원가량의 일용직 노동자 8명의 퇴직금을 회피하기 위한 대기업의 꼼수 뒤에 검찰이 충실하게 움직인 결과다. 초코파이 절도 사건은 하지 않아도 될 기소를 무리하게 했고, 쿠팡 퇴직금 미지급 사건은 명백한 증거를 확인하고도 무혐의 처분했다. 명백한 법 위반 행위에 대한 일관성 없는 법 집행으로 노동자의 생존이 위협받는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