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을 통해 정혜윤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이 설파해 온 직무급 만능론이 거시경제 지표를 소거한 통계적 착시이자 기업의 지불능력 격차를 간과한 탁상공론이 아닌가 하는 질문을 정중히 던진 바 있다. <매일노동뉴스 2024년 11월25일 “직무급제와 정년연장이 무슨 상관입니까” 참조>
아직 설득력 있는 반론은 제기되지 않고 있으나 침묵과는 달리 그가 설계한 직무급제를 도입하지 않으면 정년연장은 불가능하다는 위험한 프레임은 여전히 노동 현장을 위협하고 있다. 재계는 학문적 정합성이 결여된 그 논리를 방패막이 삼아 임금체계를 바꾸지 않으면 청년 일자리가 소멸한다는 협박성 전제를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정 부연구위원이 주장하는 ‘정년연장과 직무급의 결합’은 정년연장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비용 절감 수단으로 격하시키는 비열한 인질극이자 작위적 결합에 불과하다. 정년연장과 직무급제는 결코 묶일 수 없으며, 묶여서도 안 된다. 이에 지난 칼럼에서 못다 한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인건비 절감이 아니라고? 총액인건비 유지, 약속할 수 있나
정 부연구위원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줄곧 직무급 도입은 단순 비용 절감 장치가 아니라 임금체계의 합리적 재편이라고 주장한다. 듣기에는 그럴싸하다. 그러나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라는 말만큼이나 자기부정적이다.
그의 논리를 복기해 보면 연공급을 비판하며 기업은 인건비 부담으로 조기퇴직을 확대한다고 진단했다. 즉 높은 인건비가 정년 보장의 걸림돌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시한 해법인 직무급제가 작동하려면 필연적으로 고연차 노동자의 임금총액을 깎아 기업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 만약 직무급의 목적이 임금 삭감이 아니라면 기업의 인건비 부담은 1원도 줄어들지 않는다. 부담이 그대로인데 직무급 도입 시 기업이 돌연 정년연장을 찬성할 이유는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비용은 줄이지만 임금은 깎이지 않는 ‘기적의 계산법’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면, 주장의 진정성을 입증할 방법은 단순하다. 직무급 설계의 1원칙으로 총액인건비 유지를 명문화하는 것이다. 싼 임금체계가 아니라 합리적 임금체계가 목적이라면 제도 개편 과정에서 노동자의 소득 총량이 축소돼서는 안 된다. 따라서 직무급 도입 전후 기업의 총액인건비는 축소되지 않으며, 물가상승분과 경제성장률을 매년 자동 반영한다는 원칙이 수용돼야 한다.
이 원칙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결국 주장하는 직무급론은 노동소득분배율을 낮추기 위한 연구결과임을 자인하는 셈이다. 이 최소한의 원칙조차 거부하며 합리성을 운운하는 것은 비용 절감을 공정으로 위장한 기만적 행위일 뿐이다.
노동총량 오류에 기반한 정년연장+직무급제의 허구성
정년연장의 전제조건으로 직무급을 내건 핵심 명분 중 하나는 허울 좋은 ‘세대 상생’이다. 고령자의 임금을 깎지 않으면 기업의 채용 여력이 줄어 청년 신규채용이 막힌다는 소위 ‘부모가 자식 밥그릇을 뺏는다’는 제로섬 논리다.
하지만 이러한 노동총량 이론은 경제학계 주류에서 이미 오류로 규정된 낡은 이론임을 모를 리 없음에도, 마치 비전문가처럼 주장을 반복한다. 노동시장의 일자리 총량은 고정된 상수가 아니다. 노동 수요는 재화·서비스 생산에 대한 파생 수요이기 때문에, 경제 규모가 커지면 고령자 고용과 청년 고용은 서로를 대체하는 관계가 아니라 함께 증가하는 보완재 관계임이 전미경제연구소(NBER),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다수 연구에서 입증됐다.
백번 양보해 단기적·한시적 상충이 있을 수 있다고 치더라도 우리는 이미 2016년 임금피크제 도입 당시 이 논리의 허구성을 뼈저리게 목격했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부모의 임금을 깎아 자식을 뽑겠다고 공언했지만, 주요 학계의 실증 분석 결과 임금피크제로 절감된 재원이 청년 정규직 채용 증가로 이어진 유의미한 상관관계는 발견되지 않았다. 기업은 절감된 인건비를 사내유보금으로 축적하거나 기존 인력의 비용 효율화에 사용했을 뿐이다.
2016년 ‘임금피크제’라는 이름으로 실패한 가짜 약을, 2025년에는 포장지만 ‘직무급’으로 바꿔 다시 노동자에게 팔려는 저의는 무엇인가. 설마 무지인가, 아니면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미필적 고의인가. 직무급제가 과거와 달리 확실히 청년 고용을 담보한다는 근거는 무엇인가. 고용 창출 메커니즘에 대한 구체적 입증 없이 막연한 ‘세대 상생’ 구호만 반복하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다. 직무급제는 청년 고용을 늘리고, 이중노동시장 구조를 해소하며, 임금 삭감 없이 기업 부담을 줄이고, 정년연장까지 가능하게 한다는 그 주장들의 실증적 근거가 진심으로 궁금하다.
국가 재난 앞에서 구명조끼 값 흥정하나
한국은 2017년 8월 65세 인구가 전체의 14.0%를 넘으며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이후 불과 7년 만에 노인인구가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이는 일본(10년)보다 빠르고, 프랑스(39년)·영국(50년)·미국(15년)과 비교해도 압도적으로 빠른 속도다.
문제는 한국의 노인빈곤율이 40.4%로 OECD 회원국 중 단연 1위이며 OECD 평균의 3배에 달한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재정 안정을 이유로 유일한 노후소득보장 체계인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60세에서 65세까지 늦췄고, 이로 인해 법정 정년과 연금 수급연령 사이에 최대 5년의 소득 공백이 발생했다. 정책 변경으로 국가가 초래한 사회적 재난이 명백하다.
초고령사회 대한민국에서 정년연장은 단순 고용 연장이 아니라 국가가 법으로 보장해야 할 최소한의 생존권이자 보편적 사회권이다. 반면 임금체계 개편은 설사 사회적 직무급일지라도 본질적으로 노사가 사회적 대화를 통해 구축해야 할 과제다. 즉 정년연장은 ‘생존’의 영역이고 임금체계는 ‘수단’의 영역이다. 권리는 흥정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런데 정 부연구위원의 논리는 생존권과 수단을 동일선상에 놓는 범주 오류를 범한다. 마치 물에 빠진 사람에게 임금 삭감을 내놓지 않으면 정년연장을 던져주지 않겠다고 협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직무급을 도입하면 일할 권리를 주겠다는 식의 접근은 정년연장의 공공성을 훼손하고, 이를 비용 절감의 흥정물로 격하시키는 시도다.
산별교섭 없는 직무급은 모래성
백번 양보해 직무급이 개별 기업을 넘는 유럽식 ‘사회적 직무급’이라 하더라도 정년연장의 전제조건일 수 없으며, 연계해서도 안 된다. 유럽식 직무급이 작동하려면 산별교섭 법제화, 국가 차원의 직무 평가 표준화, 사회안전망 확충 등 장기간의 제도적 기반 구축이 필요하다. 산업 전체 직무 가치를 표준화하고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강제할 수 있는 산별노조의 통제력이 없다면 직무급은 개별 사용자의 인건비 절감 수단으로 전락한다.
그러나 정 부연구위원은 직무급 도입의 당위성만 강조할 뿐, 제도 안착을 위한 필수 조건인 산별교섭 법제화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한국처럼 기업별 노조가 강하고 재계가 산별교섭을 결사 반대하는 환경에서 교섭 구조 개혁 없는 직무급 논의는 ‘기초 공사 없는 모래성’과 다를 바 없다.
한국 현실에서 사회적 직무급을 단기간에 이식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법·제도 정비와 사회적 합의만 해도 수년 이상 필요하다. 이 난제를 외면한 직무급 논의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반면 정년연장은 인구절벽과 연금 수급연령 상향으로 인한 소득 공백 앞에서 지금 당장 시행해야 할 시급한 과제다. 제도 기반 없는 직무급 도입은 시기상조이며, 정년연장의 발목을 잡는 핑계가 될 수 없다. 제도적 이상을 위해 국민의 생존권을 볼모로 잡겠다는 것인가.
정년연장은 법으로, 임금체계는 교섭으로 풀어야 한다. 이것이 원칙이다. 시대적 과제인 정년연장을 수단에 불과한 직무급제와 묶어 거래하려는 시도는 멈춰야 한다. 그것은 상생이 아니라 노동자의 생존권을 담보로 한 인질극이다.
진정으로 지속 가능한 노동시장을 원한다면 정년연장을 볼모로 잡을 것이 아니라 5명 미만 사업장까지 포괄하는 법정 정년연장을 즉각 입법하고, 임금체계는 노사 자율 교섭의 장으로 넘겨야 한다. 그리고 무체계 사업장에 최소한의 기준을 세울 산별 최저임금과 원·하청 불공정거래 개선부터 논하는 것이 연구자로서, 그리고 입법기관에 속한 연구기관의 연구자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이자 책무가 아닐까.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jhjang8373@inochong.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