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분기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통계는 정부가 표방한 ‘산재와의 전쟁’이 기대만큼의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를 소리 없이 드러낸다. 통계 결과는 심플하다. 사망사고는 작은 사업장, 재래형 사고, 비정형 노동에서 증가했다. 그런데 정부정책은 ‘가장 위험한’ 지점이 아니라 ‘가장 관리하기 쉬운’ 지점을 겨냥하고 있다. 노동자가 일하다 죽는 현장과 정부정책이 개입하는 현장이 어긋나 있지 않은지 중간점검이 필요한 때다. <무사안일> 마흔세 번째 사연은 3분기 사망통계로 본 정부 산재예방정책의 구조적 미스매칭에 관한 이야기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구요!
지난주 목요일 오후. 대기업에 생산품을 납품하는 2차 협력업체에 보건지도를 나갔다. 전 직원 30명 미만의 소규모 제조업체였는데, 미안한 얘기지만 안전보건관리 수준은 ‘빵점’에 가까웠다.
“작업환경측정 언제 하셨어요?”
“네? 그게 뭐예요?”
“아…. 그럼 특수건강검진도 안 받으셨겠네요?”
“건강검진은 매년 받고 있는데요?”
“공단에서 해주는 기본검진 말고 특수건강검진이요.”
“그게 다른 거예요? 꼭 해야 되나요?”
“네. 법에 반드시 하도록 돼 있어요.”
“제가 개발자 출신인데 회사가 작다 보니 안전보건업무까지 겸하고 있어요. 당장 뭐부터 하면 좋을까요?”
“일단 작업환경측정부터 하세요. 그게 1번이에요, 1번. 그다음에….”
“측정은 제가 직접 하면 되는 거겠죠?”
“아니요. 허가받은 측정기관에 의뢰하셔야죠.”
“그냥 제가 하면 안 되나요?”
“아니, 부장님! 그러시면 당연히 안 되죠! (잔소리×잔소리) (이하 생략)”
작은사업장에서 이런 풍경은 낯설지 않다. 개발자가 데이터를 핸들링하다 말고 소화기 점검표를 들여다보고, 재무 담당자가 결산 서류 옆에 귀마개 카탈로그를 펼쳐놓는 식이다. 전담자도 매뉴얼도 없다. 그냥 위에서 하라니까 해야 하는 구조다.
그러니 “작업환경측정 언제 하셨어요?”라는 질문에 “그게 뭐예요?”라는 답변이 돌아오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게으른 것도, 무책임한 것도 아니다. 그저 아무도 알려준 적이 없었을 뿐이다.
일반적으로 가장 위험한 작업현장 중 하나라고 인식되는 대기업 사내하청은 이런 곳에 비하면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원‧하청이 함께 작업환경을 측정하고, 작업환경 개선까지 이어지는 최소한의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 정도 시스템에도 편입되지 못한,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작은사업장의 사업주나 노동자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마음이 무겁다. 1년 365일 위험이 내재돼 있는 곳, 그러나 정책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 바로 이런 현장에서 가장 많은 사망사고가 발생한다.
대기업을 겨냥한 규제, 작은 곳에 쌓이는 죽음
작은사업장에 내재한 위험은 통계수치로도 확인된다. 올해 3분기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통계를 전년도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지난해 433명이었던 사망자가 올해 457명으로 14명 늘었다. 중요한 건 어디에서 얼마나 늘었느냐다. 50명 미만 사업장에서 26명 늘었고, 그중 22명이 5명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반대로 50명 이상 사업장에서는 12명 줄었다.
작은사업장에 위험이 집중되는 흐름은 업종별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제조업처럼 기본적인 관리체계를 갖춘 업종에서는 사망자가 15명 줄었다. 그러나 체계가 미비하거나 사실상 전무한 기타업종에서는 사망자가 22명이나 증가했다. 관리기반이 약한 지대일수록 위험이 빠르게 쌓이고 있다는 뜻이다.
사고 유형을 보면 흐름은 더욱 분명해진다. 재래형 사고인 ‘떨어짐’에 의한 사망자는 199명으로, 전년보다 36명 늘어 전체 사망의 43.5%를 차지했다. 설비가 노후하고, 작업환경이 미흡하고, 기본 안전조치가 자리 잡지 못한 현장에서 반복되는 사고 유형이다. 위험은 안전망 바깥의 취약한 곳을 찾아 이동하고 있다.
문제는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이재명 정부 들어 대기업 중심의 규제 방향은 더욱 뚜렷해졌다. 행정은 원래 손이 먼저 닿는 곳부터 움직인다. 대기업은 기록도 많고, 조직도 갖춰져 있어 정책 효과를 확인하기도 쉽다. 하지만 5·10·30명 규모의 사업장은 전혀 다르다. 위험을 다룰 인력도, 참고할 체계도 없다. 말 그대로 ‘위험이 무엇인지’부터 배워야 하는 단계다. 이런 곳에서는 단속이 작동하기 어렵다. 그 결과 행정은 ‘가장 위험한 곳’이 아니라 ‘개입이 가능한 곳’부터 움직이게 된다. 작은사업장은 자연스럽게 정책의 바깥으로 밀려난다.
이런 흐름이 이어지면 결과는 정해져 있다. 사망사고의 중심은 영세사업장과 비정형 노동으로 더 깊게 옮겨갈 것이다. 대기업 중심 단속은 일부 성과를 낼 수는 있어도, 산업 전체의 위험을 낮추지는 못한다. 더 큰 문제는 안전의 격차가 굳어지는 일이다. 큰 기업은 더 안전해지고, 작은사업장은 더 위험해진다. 안전은 권리가 아니라 규모에 따라 갈리는 특권이 된다.
‘예방 아닌 단속’ 변질되는 위험성평가
문제의 핵심은 정책의 조준점이 어긋나 있다는 사실이다. 방향을 바로잡지 않으면 사망은 줄지 않고 계속 쌓일 것이다. 그리고 그 대가는 늘 그렇듯 작은사업장의 노동자들이 치르게 된다. 그렇다면 이런 현실에서 무엇이 이들을 지켜줄 수 있을까.
답은 복잡한 장비도, 거창한 시스템도 아니다. 작은사업장에서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예방 방식이어야 한다. ‘위험성평가’는 원래 그런 도구다. 현장에서 위험을 찾아보고, 우선순위를 정해, 작은 개선부터 실천하는 과정 자체가 핵심이다. 열악한 소규모 사업장에서 ‘그나마 돌려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예방수단이다.
문제는 정부가 이 도구의 쓰임새를 오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와 국회는 위험성평가 미이행시 과태료를 강화하고, 세부 절차까지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위험성평가를 ‘단속의 하위 범주’로 규정하는 조치에 가깝다. 전담자조차 없는 작은사업장에서는 위험을 찾기보다 단속을 피하기 위한 문서 만들기에 에너지가 쏠릴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건 규제 강화가 아니다. 소규모 사업장의 현실에 맞는, 간단하고 실행 가능한 위험성평가 모델을 국가가 책임지고 설계하고 확산시키는 일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내년도 예산 111억원이 배정된 ‘안전한 일터 신고포상금’ 역시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런 방식으로 소규모 사업장의 사망사고가 줄어들지 의문이다. 작 사업장의 위험은 노후 설비, 절차 미비, 안전담당 인력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신고가 늘어난다고 해서 이런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이 제도가 실효성을 가지려면 신고 이후 무엇이 어떻게 개선되는지까지 제시돼야 한다. 단지 사업주를 처벌하는 구조라면, 도대체 무엇이 달라진다는 말인가.
제도 시행을 위한 행정력 부담도 가볍지 않다. 신고가 늘면 감독관은 접수·확인·현장방문 등으로 적지 않은 시간을 써야 한다. 이미 한 명이 수백 곳을 맡는 상황에서 민원 처리에 매달리면 정작 위험도가 높은 사업장을 챙기기 어렵다. 제한된 행정력이 꼭 필요한 곳에 닿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그 공백의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산재예방정책의 조준점 바로 잡아야
문제는 복잡하지 않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죽는 곳과 정책이 겨냥하는 곳이 서로 다르다. 작은 사업장에서 반복되는 죽음 앞에서 정책은 여전히 규모가 크고 관리가 수월한 현장에 머무르고 있다. 이 방향을 바꾸지 않으면 산업재해는 줄어들지 않는다. 단속 숫자를 쌓아도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위험이 어디에서 만들어지고 왜 그곳에 쌓이는지, 그 흐름을 정확히 짚어낼 때 비로소 변화는 현실이 된다. 지금 필요한 건 더 강한 단속이 아니라 정책 방향을 다시 설정하는 일이다. 더 늦기 전에 조준점을 작은사업장으로 돌려야 한다. 변화는 언제나 가장 많이 잃는 자리로부터 시작된다.
일환경건강센터 PL (tokki79@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