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당초 개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조2호의 후단, 이른바 ‘노란봉투법 사용자성 조항’은 한국 노사관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 전망이었다. 허나 지난주 고용노동부가 입법예고한 시행령을 보면, 안타깝게도 그런 전망이 불투명해진 느낌이다. 시행령은 기존의 기업별 노사관계 관성으로의 회귀와 노동위원회의 개입을 과하게 설정하고 있다. 하청노동자들의 교섭기회 실질화, 노사 당사자의 자율교섭 증진, 초기업교섭 활성화라고 하는 입법의 취지와 어긋나 보인다.

개정안은 원·하청 간 교섭을 서로 다른 두 사용자들이 함께 참여하는 다사용자 교섭, 즉 초기업교섭으로 상정하고 있다. 그 내용인즉 “근로계약을 맺지 않았더라도 근로조건을 실질·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자”라면 “‘그 범위에서는’ 사용자”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상이한 성격의 두 사용자가 등장한다. 하나는 기존의 ‘(근로)계약기반 노사관계’상의 사용자다. 다른 하나는 ‘지배력기반 노사관계’상의 새로운 사용자다.

후자는 전자에 더해지는 것이지 전자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 보조사 ‘도’의 의미는 생각보다 중요하다. 하청노조는 하청의 사업주를 사용자로 두면서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원청에 지배당하는 영역에 한해 ‘그’도 추가로 사용자로 둔다는 거다. 자연스럽게 하청노조+하청사업주+원청사업주의 3자 노사관계가 기본으로 설정된다. 이는 일종의 ‘1(하청노조):다(원·하청사용자)’ 교섭구조, 즉 초기업교섭으로, 기본단위 자체가 이중화된 노사관계다.

여기에서 원청의 사용자성은 어디까지나 부분사용자성이다. 하청노동의 모든 근로조건이 아니라 자신이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영역만 사용자로서 의무를 지니고, 그 부분만 하청의 노사와 함께 교섭해야 한다. 일종의 기능적 사용자성, 범위별 사용자성이다.

지배력 노사관계, 원·하청 노사관계의 이중성, 부분사용자성 등의 원리는 우리 노사관계에 낯선 개념이기에 시행령이 필요하다. 입법 취지를 따른다면 시행령은 △원청·하청은 원천적으로 별도의 기업이기 때문에 애당초 별도의 교섭단위라는 것 △원청의 사용자성은 ‘의제별·범위별’로 한정해서만 판단돼야 한다는 것 △원청은 해당 의제 교섭에 의무적으로 공동 사용자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 △교섭창구 단일화는 하청 내부 복수노조시에만 적용한다는 것 △노동위원회 개입은 오직 ‘사용자성 분쟁’ 판단에 한정한다는 것 등만 명확히 하면 된다. 나머지는 모두 노사자율의 영역으로 둬도 된다.

혹자는 자율이 방치로 흐를 수 있음을 우려한다. 현실은 그렇지 않을 걸로 본다. 원청은 비록 부분사용자라고 하더라도 상당한 정도 추가적인 교섭의무를 지게 되고, 그것을 개별 하청노조들과 따로 교섭하기가 버거울 수 있다. 교섭비용을 줄이기 위해 원청 스스로 통합교섭의 의지를 갖는 것이 자연스럽다. 동일한 의제와 관련해 자신이 사용자성을 지니는 하청노조들과 공동교섭을 하면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원청이 공동교섭을 하자는데 하청사용주가 반대할 여지도 적다. 또한 한국의 주류 노동조합들은 산별교섭·초기업교섭을 지향하기 때문에 애당초 스스로 통합-공동교섭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해서 원청의 제안에 부분 이견이 있더라도 대체로 긍정적으로 임할 가능성이 크고, 먼저 통합의 단위를 설정해서 제안할 수도 있다.

이러한 내재적 지향성하에서 기본 원리만 명확히 한다면 노사 모두 가급적 합리적이라고 판단되는 의제영역에 한해 교섭단위를 자율적으로 통합시켜서 ‘1:다’ 교섭을 ‘다:다’ 교섭으로 확장해 만들어 갈 여지가 크다. 하청이 다양한 원청들에 동일한 서비스를 공급하는 경우라면 원청 사용자들조차 복수로 참여하는 더 대규모의 ‘확장된 다:다’ 교섭판의 설정도 가능하다. 어쩌면 그것이 효율성 면에서 더 바람직할 수도 있다.

안타깝게도 시행령 입법예고안은 이러한 원리와 정반대다. 성격이 다른 두 사용자의 동시적 등장을 의무화시킨 법안의 취지를 놓치고 둘의 질적 차이를 간과한다. 원청 중심으로 모두를 헤쳐모이게 한 뒤 성가시게도 노동위에 의해 교섭단위가 분리되게 만든다. 원청의 노조는 하청사용자와 계약이든 지배력이든 아무 관련이 없고, 원청과 지배력 기반의 관계를 맺는 하청노동자는 원청과 근로계약을 맺고 있는 원청노동자와 질적으로 다르다는 인식도 없다.

원·하청 3자 교섭에서 원청은 하청 노사의 교섭에 부분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한 축일 뿐이지, 애당초 자기 중심으로 통합된 교섭단위를 선점한 주체가 아니다. 교섭단위는 애초에 분리돼 있다. 오직 당사자들의 자율적 통합의 여지만 있다. 노동위는 교섭단위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노사 분쟁시 실질적 지배력에 대한 사실판단만 일관되고 명확하게 하면 된다. 점차 노사들은 현실적 필요에 따라 알아서 교섭단위를 통합시켜 가며 더 이상 노동위를 찾지 않을 것이다. 이게 입법 취지에 맞고 효율적이며 바람직한 노사관계 아닌가.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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