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지 베이트(Ragebait)’라는 신조어가 있다. 정제된 번역은 ‘혐오·분노 조장 콘텐츠’고, 좀더 뉘앙스를 살려 번역하면 ‘분노 떡밥’ 정도일 것 같다. 자극적인 제목으로 클릭수를 유도하는 제목 낚시(Clickbait)의 일종이다. <팩트풀니스> 저자 한스 로슬링의 생각을 빌리자면, 분노가 인간의 본능과 관계돼 있기 때문에 분노 떡밥은 쉽게 보이고 쉽게 퍼진다.

요즘 눈에 띄는 분노 떡밥 중 하나는 금융노조의 주 4.5일제 파업과 김형선 금융노조 위원장의 단식이다. ‘억대 연봉’ ‘고액연봉자’ ‘황제 파업’ ‘배부른 파업’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이는 “가진 사람들이 특권을 요구한다”는 불편한 느낌과 분노를 자극한다.

2023년 기준 억대 연봉자는 전체 근로소득자의 6.7%라고 하니, 우리나라 국민의 93.3%는 자극받을 것이다. 주 40시간, 주 5일 근무제에서도 주 52시간을 일하는 교대제 노동자나 고용 불안에 시달리며 자발적 장시간 노동을 강요받는 노동자들도 마찬가지 감정이지 않을까.

하지만 기분만으로 주 4.5일제 논의를 막아서기엔 너무 아쉽다. 주 4.5일제는 모든 노동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의제다. 금융 노사가 주 4.5일제를 도입하면 사회 전체적으로 이정표가 세워진다. “도입이 어렵다”가 아니라 “어떻게 도입할 수 있을까”로 논의 주제가 옮겨진다.

실제로 금융노조는 2002년 주 5일 근무제를 노사합의로 도입해 우리나라의 주 5일제를 이끌어냈다. 이후 2004년 법정 노동시간이 단축됐고. 단계적 주 5일제를 시행해 제도가 정착됐다. 제도 도입을 촉진한 선례도 있는 것이다.

우리가 기분에 빠져 있다면 노동시간 단축은 점점 더 멀어지지 않을까. 서울 중구 은행회관 앞에서 철야 농성 단식 중인 김형선 위원장은 “사쪽이 입장을 여전히 바꾸지 않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주 1회 대대표교섭을 하기로 했지만 기약은 없다. 그는 추석 내내 천막을 지키고 있을 셈이다.

한스 로슬링은 <팩트풀니스>에서 본능에 빠지지 말자고 권한다. 비난할 개인이나 집단만 찾고 있으면 거기서 그칠 뿐, 시스템을 개선하기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그 말처럼, 기분에 빠져 비난만 하고 있으면 노동시간 단축은 점차 멀어진다. 그러니 결국 하고 싶은 말은 한 가지다. 분노 떡밥에 낚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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