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홈플러스가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가며 노동자·입점업체·협력업체·농축산 생산자까지 줄잡아 10만명의 생존이 흔들리고 있다. 내달 29일 회생계획안 제출 기한을 앞두고 있지만 홈플러스 인수합병(M&A)도 불투명하자 안수용 마트노조 홈플러스지부장(52·사진 오른쪽)과 지도부들이 단식투쟁에 나섰다. 안 지부장이 지난 5월1일~19일 1차 단식을 했고, 안 지부장을 포함한 지부 지도부가 이달 8일부터 2차 단식을 시작했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20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앞 농성장에서 안 지부장을 만나 심정과 현장 상황, 투쟁 계획을 물었다.

- 단식을 결심한 계기는.
“올해 5월 1차 단식을 했을 때만 해도 ‘홈플러스 회생 문제가 이런 상황이다’라는 걸 사회에 알리는 게 목표였다. 지금은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회생계획서 제출 마감이 12월29일까지로 돼 있지만, 우리가 확인한 홈플러스 재무제표상으로는 11월 급여까지만 지급이 가능하고 12월 임금은 못 주는 상황이다.

전기요금도 두 달 연체가 되면서 이번 달을 넘기는 순간 다음 달에는 전기가 끊길 수 있다는 통보까지 들었다. 유통업은 전기가 끊기면 냉동·냉장설비가 멈추고, 그 순간부터는 문 닫는 것과 다름없다. 겉으로는 회생계획서 마감까지 시간이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12월을 넘기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판단했다. 지금 제대로 된 인수조건 마련을 요구하기 위해 지도부 세 명이 무기한 단식에 들어갔다.”

“현장에선 ‘차라리 망했으면’ 말 나와
하루 매출 5만원 입점업체도”

- 현장 노동자와 입점업체 상황은 어떤가.
“노동자들은 말 그대로 고용불안과 생활불안에 짓눌려 있다. 이미 일부 점포는 폐점됐고 ‘이러다 전체 점포가 한꺼번에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돌다 보니, 밤에 잠이 안 온다는 조합원이 정말 많다. 심지어 ‘차라리 빨리 망해서 실업급여라도 받고 마음 편히 지내고 싶다’는 말까지 나온다.

상품 공급이 원활하지 않다 보니 노동강도도 올라갔다. 진열대가 비면 세로로 진열하던 걸 가로로 늘려 채우고, 납품이 늦어지는 상품 대신 남은 제품을 진열한다. 하지만 다음날 납품 물건이 들어오면 처음부터 다시 진열해야 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니 노동강도는 2~3배로 뛰었다.

입점업체 피해는 더 심각하다. 명절 이후 하루 매출이 5만원도 안 되는 가게들이 많다. 먹거리 장사가 대부분이라 식재료를 빚을 내 사오는데, 장사가 안 되면 그대로 폐기해야 한다. 그래도 계약관계 때문에 문은 열어야 하니까, 가족·알바 인건비까지 줄여 사장 혼자 몇 달째 버티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 회생신청 직전인 3월1일에 몇천만원 계약금을 주고 입점한 신혼부부도 있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울면서 호소한다. 협력업체 노동자들은 3월 초부터 권고사직이 쏟아졌고, 청소·카트·식당 같은 외주노동자들은 ‘어디 갈 데가 없다. 제발 살려 달라’고 한다.”

- 지역 상권은 어떤 상황인가
“홈플러스는 지역 상권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부산 가야점처럼 전국 매출 상위권이던 점포를 MBK가 자산유동화를 위해 폐점시켜 버리자, 그 주변에 장사가 잘되던 골목상권까지 같이 무너졌다. 광주의 한 점포는 문을 닫은 뒤 부동산 경기까지 안 좋아 건물이 방치되다 보니, 주변 상권이 통째로 어두워지고 슬럼가처럼 변해버렸다. 홈플러스 하나가 없어지면 반경 3~4킬로미터 안 수십만 소상공인이 같이 흔들리는 구조다.”

▲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정부가 국가적 차원 해결 의지 보여야”

- 노조는 정부 역할을 촉구하고 있는데.
“지금 당장 필요한 건 정부가 ‘홈플러스 문제를 책임지고 풀겠다’는 의지를 공식적으로 밝히는 일이다. 기업회생 이후 유동성 위기가 더해져 폐점부터 유통망 악화, 기업가치 하락까지 악순환이다. 정부가 메시지를 내야 입점업체나 납품업체, 금융권이 “국가 책임 아래 회생할 수 있겠구나”라는 믿음이 생기고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다.

좀 더 구조적인 대책으로는 캠코 같은 공적 자산관리회사가 부실채권을 정리하고, 유통 역량을 가진 곳에 홈플러스를 넘기는 방안을 요구하고 있다. 농협처럼 전국적인 유통망과 물류망을 가진 곳이 유력한 후보가 될 수 있다. 단위 농협에서는 대형마트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만큼 농협이 가장 합리적인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고용노동부 장관도 ‘선량한 인수자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으니, 이제는 정부가 태스크포스를 꾸려 실제 인수 구조를 설계하고 나서야 한다고 본다.”

- 일각에서는 기업실패에 정부가 왜 개입하느냐는 시각도 있다.
“홈플러스 사태는 한 민간기업의 실패 문제가 아니다. 우선 규모가 다르다. 홈플러스 정규·비정규직, 입점 소상공인, 협력업체, 농축산물 납품업체까지 합치면 10만명 수준이다. 이분들이 잘못한 게 하나도 없는데, 회생 공고 한 장으로 갑자기 길거리로 나앉게 생겼다. 실업급여와 각종 사회보장 비용, 지역경제 붕괴에 따른 손실까지 계산하면 이번 홈플러스 사태는 사회적이고, 공적인 문제라고 봐야 한다.

또 하나는 국민연금 문제다. 국민연금이 MBK파트너스에 투자한 9천억원 가까운 돈을 아직 회수하지 못했다. 홈플러스가 살아야 그 돈도 장기적으로 회수할 수 있다. 결국 국민 세금과 노후자금이 엮여있는 구조인데, 이걸 단순히 한 기업의 사적 문제라고만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티몬·위메프 사태에서도 수만명의 소비자 피해가 발생했는데, 홈플러스는 그 규모가 훨씬 크다.”

“새 인수자, 제2의 MBK는 안 돼
정부 입장 없으면 물·소금까지 끊을 것”

- 26일 최종 입찰제안서 제출 기한을 앞두고 인수희망자가 나오긴 했다.
“새 인수자는 ‘두 번째 MBK’가 돼선 안 된다. 빚을 다시 잔뜩 내서 인수하거나, 부동산만 팔아먹고 빠져나가겠다는 곳은 애초에 배제해야 한다. 회사를 실제로 운영하고, 유통 경쟁력을 살릴 수 있는 곳에 넘겨야 한다. 홈플러스는 메가푸드마켓 전략 이후 적자를 끊고 매출을 끌어올렸고, 익스프레스 점포만 해도 연간 1조원 이상 매출을 올릴 정도로 경쟁력이 있다. 구조만 제대로 짜면 충분히 살릴 수 있는 회사다.”

- 향후 투쟁 계획은.
“지도부 세 명은 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단식을 풀 생각이 없다. 최소한 정부가 ‘홈플러스 문제를 국가적 차원에서 정리해 보겠다’는 메시지를 내놓기 전까지는 끝까지 가겠다는 결심이다. 다음달 2일에는 매주 진행하던 화요 문화제를 확대해, 대통령실을 향한 대규모 문화제·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가 입장을 내놓지 않는다면, 물과 소금까지 끊는 더 극단적인 단식도 각오하고 있다. 홈플러스 사태를 단순한 민간기업의 경영 실패로 치부하지 말고 수많은 노동자와 상인, 생산자의 생존이 걸린 사회적 재난으로 봐 달라는 게 우리의 마지막 호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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