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소희 기자

정치인의 말에 위로를 받기도 한다. 국회의원은 법을 짓는 사람이지만 정부와 기업에 국민의 목소리를 전한다. 고 노회찬 의원은 그런 점에서 탁월한 어른이었다. 국민을 위한다며 뜻모를 소리를 해 대는 이들에게 날카롭지만 쉬운 말로 잘못을 꼬집었다. 그는 평범하지만 자기를 표현할 언어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을 대신해 말할 줄 아는 정치인이었다. 그래서 때로 그의 말은 위로가, 효자손이, 소화제가 됐다.

23일로 7주기를 맞은 노 의원을 떠올린 건 최근 여러 정치인의 말을 들으며 느낀 감정 때문이다.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은 얼마 전 열린 고용노동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숨진 고 김충현씨가 동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다고 말했다. 그는 제보를 받았다며 동료들이 노조 조합원이 아닌 고인을 괴롭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가 괴롭힘 증거라며 내민 고인의 메시지는 노조가 생기기도 전에 주고받은 대화였다. 김 의원은 생중계되는 인사청문회에서 고인 동료들을 괴롭힘 가해자라고 몰아가면서도 동료들에게 사실을 확인할 최소한의 의무조차 다하지 않았다.

며칠 뒤 서울 시내의 한 카페에서 우연히 고인의 동료 중 한 명을 만났다. 그는 취재현장에서 얼굴을 비춘 기자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넨 뒤 며칠 전 청문회를 보며 든 생각을 말했다. 그는 이전엔 자살을 결심하는 유명인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청문회를 보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괴감을 느꼈다고 했다. 고인과 자신이 발전비정규직으로 위험의 외주화의 피해자인데도 가해자로 내몰린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그는 이제 자살자의 심정을 알겠다고도 말했다. 그를 포함한 동료들의 억울함이 매우 크다고 했다.

국회는 23일 본회의서 안전운임제를 또다시 3년 일몰제로 시행하는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화물자동차법)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최저입찰제로 과속·과적·과로에 내몰린 화물노동자들은 적정운임을 보장받는 안전운임제를 상시화해달라 20년간 요구해 왔다. 도로 위 흉기가 된 자신들이 일한 만큼 소득을 보장받아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게 해달라는 호소였다. ‘여야 합의’라는 명분으로 또다시 민의를 저버린 국회에서 윤종오 진보당 의원은 “정부와 국회가 의지만 있다면 가능하다. 언제까지 화물노동자를 3년 시범운영에 몰아넣어야 하냐”며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그의 말은 여대야소 국면에서 표결 결과를 바꾸진 못했지만 화물노동자의 절박한 심정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김소희 의원은 동료들의 반박에도 발언을 철회하거나 사과하지 않았다. 김충현대책위가 김 의원 주장을 따져 묻는 보도자료를 내놓고 의원실 관계자와 면담했지만 김 의원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내뱉은 말이 누군가를 죽음에 가까운 고통에 몰아넣을 수 있다는 사실을 여전히 모르고 있는 듯하다. 정치인, 국회의원에게 주어지는 온갖 특혜만큼이나 그들 행동과 말은 무거운 권한을 가진다. 공식석상에서 이들의 언행은 낱낱이 기록되고, 사람을 움직인다. 그리고 때론 사람을 위로하기도 하고 누군가를 생전 경험하지 못한 괴로운 감정의 굴레에 빠뜨리기도 한다. 행동은 말보다 중요하다지만 공인은 말로 생각을 드러내고 말로 책임을 보이기도 한다. 7년 전 오늘 세상을 떠난 한 정치인과 오늘 넓은 국회 본회의장에서 홀로 화물노동자를 이야기한 한 정치인을 떠올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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