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소희 기자

지난 28일 서울 구의역 김군 9주기를 맞아 공공운수노조가 다크투어를 기획했다. 출발지인 서울 구의역에서 김군을 추모한 뒤 명일동 싱크홀(땅꺼짐) 사고 현장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에는 땅꺼짐 사고로 오빠를 잃은 유족과 바닥 균열로 영업을 멈춘 인근 상인이 함께했다. 이들은 사고가 일어난 지난 3월24일 이후 두 달이 지나도록 생계대책이나 조사결과를 내놓지 못하는 정부·지방자치단체에 책임을 다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27일엔 대선후보들이 정치 분야를 주제로 티브이 토론에 나섰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정치개혁·개헌에 관한 비전을 논하는 시간에 문제의 발언을 작심한 듯 내뱉었다. 생방송으로 진행한 토론에서 여과없이 송출된 언어 성폭력에 모욕감을 느꼈다. 토론회를 더 볼 수 없었고 종국엔 무기력감마저 느꼈다. 그는 여성이 겪는 성폭력과 공포에 무관심했다. 여성의 신체를, 또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말해 온 다른 후보를 유력 후보를 비방하기 위한 잣대로 도구화했다.

토론회를 보고 밀려온 감정들로 밤새 잠을 설치다 28일 다크투어를 취재했다. 싱크홀 피해자들은 국토교통부 조사 발표가 연기되며 사회적 관심이 사그라들 것도 우려하고 있었다. 말할 공간과 들어줄 누군가가 절실한 그들을 보며 전날의 토론회를 떠올렸다. ‘이준석 후보에게 주어진 시간과 마이크가 다크투어에 모인 이들, 그리고 불 탄 공장과 30미터 철탑 위에 올라간 노동자들에게 주어졌더라면’ 하고 생각했다.

이 후보는 29일에 기자회견을 열며 자신의 발언이 혐오가 아니라는 궤변을 늘어놨다. 놀랍지도 않았다. 그는 중년 남성이 주류인 국회에서 오직 청년 정치인이라는 이미지 하나로 정계에 입문해 정치인생을 이어 왔으면서도 꾸준히 차별과 갈라치기, 약자 혐오로 지지자를 결집해 왔다. 이동권을 보장해 달라는 장애인의 요구와 저항을 ‘비문명적·인질극’이라 했고, 외신과 인터뷰에선 “(고용상 성차별은) 어머니 세대 이야기”라며 구조적 성차별을 부정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이래로 성별 임금격차 1위를 놓친 적이 없고, 여성고용률도 최하위권이지만 그의 눈에만 이런 지표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는 스토킹 피해 뒤 살해당한 여성을 알리며 대책을 촉구한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에겐 “남성이 잠재적 가해자라는 프레임은 사라져야 한다”고도 말했다.

모욕감과 분노로 잠이 들 수 없던 밤 나를 안심시킨 건 SNS 속 분노의 물결이었다. 발 빠르게 그를 고발하고 사퇴를 촉구한 여성·시민·노동단체의 성명을 읽으며 안도했다. 동시에 한국옵티칼 고공농성 500일을 맞아 만난 한 대학생 연대시민과 인터뷰를 떠올렸다. 그는 온수로 목욕을 하고 안락한 자신의 침대에 누울 때 고독·추위와 싸우는 고공농성장이 떠올라 괴롭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끝내 모두의 복직을,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너 나 할 것 없이 퀴어·여성·장애·노동자인 자신을 드러냈던 광장이 이어질 거라고 희망했다. 광장 이후 사회는 이전과 같지 않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아마 이준석 후보는 타인을 걱정하며 잠 못 든 경험이 없을 것이다. 그는 연대의 가치를 알지 못하고 영영 자신이 사회에 끼친 해악을 뉘우치지 못할 것이다. 정치인 이준석은 이제 자신의 자리를 잃을 것이다. 광장 이후 사회에 이준석의 자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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