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소각 논의를 제외한 상법 개정의 주요 쟁점 논의가 마무리되는 분위기다. 상법 개정은 미시적으로 “회사의 주인은 누구인가”를 따지는 일이고, 거시적으로는 한국 자본주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과정이다.
지난달 1차 개정(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 확대)을 통해 주인은 ‘주주’로 확장됐고, 이른바 ‘더 센’ 2차 개정(집중투표제 도입 등)으로 범위는 ‘소액주주’까지 커졌다. 하지만 격렬했던 논쟁 속에서 정작 가장 중요한 주인은 공론화조차 되지 못했다. 바로 노동자다.
이번 상법 개정은 한국 자본주의가 주주자본주의로 전환되는 중대한 사건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경제의 한 축인 노동자가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는 점은 이상한 일이다. 이번 개정 논의에서 새 주인을 결정한 핵심 근거는 ‘리스크’ 부담 여부다. 기회비용을 지불하고 위험을 감수한 자본 투자자가 이익을 전유한다는 논리다.
주주는 한정된 자본을 특정 회사에 투자하며 다른 기회를 포기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상법 개정은 매우 합리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주주만 기회비용을 감수하는 게 아니다. 노동자도 한정된 시간을 특정 회사에 투자하며 노동시장에서 다른 선택지를 포기한다.
노동자는 회사와 영업 부진이나 산업 위기 리스크도 공유한다. 매출 하락이나 구조조정 국면에서 임금 삭감이나 노동강도 강화 등 직접적인 위험을 감당하게 된다. 실직과 경력단절은 단순한 생계를 넘어 사회적 지위까지 상실하는 손해를 입힌다.
주주는 미래 기업 성패의 불확실성을 감수하고 현재의 이익을 배분받는다. 노동자는 어떤가. 노동자는 기업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 다양한 기술 훈련을 요구받는다. 하지만 회사가 도산하면 학습한 기술은 노동시장에서 효용가치를 잃을 수 있다. 특히 산업에 따라 기술이 특정 업무에 특화될수록 범용성은 줄어든다. 노동자의 장기근속은 기업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반면, 노동자에게는 이직의 불확실성으로 작용할 위험이 있는 것이다.
회사의 주인은 누구인가. 위험과 기회비용의 감수가 이익 귀속의 근거라면 노동자는 주주와 함께 회사의 주인이다. 정혜경 진보당 의원은 이달 14일 상법 382조의3에 근로자를 포함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상법 개정 논의가 주주를 넘어, 이제는 진짜 주인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