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호동 노동자투쟁연대 대표

생의 끝까지 노동탄압에 시달리다 목숨을 내놓은 지 100일이 넘도록 장례를 치르지 못한 노동자. 민주노조가 살 길이라며 앞장서 싸우고 조합원들에게 외려 미안해하던 노모의 천금보다 귀한 자식. 시민들이 분향소가 있던 서울광장에서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를 향해 100리길 꽃상여를 지고 가며 사측에 원통한 죽음의 해결을 요구했지만 묵묵부답인 노동열사 한광호.

한광호는 1974년 충북 영동에서 태어났다. 스무살을 갓 넘긴 나이에 운명처럼 고향에 있는 유성기업㈜ 영동공장에 입사했다. 99년부터 1년여 동안 처음으로 민주노조의 대의원 활동을 했다. 노조탄압이 본격화한 2012년 10월부터 두 번째 대의원 활동을 했다. 2013년 10월부터 1년간 대의원을 연임했다. 2016년 3월17일 오전 6시40분께 끝없이 진행된 노조탄압과 저항의 와중에 징계대상자였던 한광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3월18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유성기업 영동공장에서 그의 영정을 보니 낯익은 얼굴이었다. 집회가 끝나고 영안실로 갔는데, 그의 형인 석호가 상복을 입고 인사를 했다. 활동에 바빠 제대로 챙길 수 없었던 못난 형이라며 착한 동생과 가족사를 애절하게 쏟아 냈다. 필자와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와의 인연은 민영화 반대 발전파업에 연대하면서 시작됐다. 유성기업 서울사무소가 당시 발전노조 사무실과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어 농성과 집회 등으로 연대가 끈끈해졌다. 복수노조 제도가 도입되면서 정권과 자본의 사전기획 및 표적 파괴 대상이었던 두 노조의 동병상련. 노조파괴 과정에서 인권유린으로 인한 고위험군의 고통은 발전노조라고 다르지 않다. 2004년 유성올빼미 희망버스기획단에서 송경동 시인과 공동집행위원장으로 활동했던 필자는 부지부장이었던 그의 형과 수시로 만났다. 형과 동생이 사이좋게 같은 회사에 입사해 민주노조 활동을 하고 모진 탄압도 같이 받았구나. 한 맺힌 이야기를 들으며 목이 메었다. 형인 석호의 어깨를 안아 주고 밖으로 나와 눈물인지 빗물인지 얼굴을 닦으며 비 내리는 하늘이 되레 고맙게 여겨졌다.

한광호는 입사 후 민주노조 현장을 책임지는 대의원과 조합원 활동이 약력의 전부인 노동자였다. 유성기업은 노사가 합의한 심야노동을 주간노동으로 전환시키지 않기 위해 직장폐쇄와 무자비한 용역폭력을 휘둘렀다. 국정감사 결과 현대차의 개입과 창조컨설팅의 전문적 조력을 받은 조직적 기획폭력이었음이 드러났다. 단체협약 해지와 부당해고, 회사(어용)노조 설립, 몰래카메라 감시, 고소·고발 등 노조탄압의 모든 수단을 쏟아부었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정신건강은 극도로 악화됐다. 노동자 심리치유 전문기관에서 조합원들을 상대로 정신건강 실태조사를 했다. 고위험군이 40%라는 심각한 결과가 나왔다. 노조탄압으로 악화되는 조합원들의 정신건강 때문에 고위험군 현장 노동자들이 외롭게 고립된 상태가 되지 않도록 담당자를 정해 서로를 챙기도록 했다. 전문상담사 치료도 병행했다.

한광호는 고위험군에 속한 조합원 중 한 명이었고 상담치료 중이었다. 불법적 노조탄압 폭력의 희생자였고, 계속되는 징계 대상자였다. 생의 마지막까지 그를 괴롭힌 결정적인 문제였다. 노동자들은 현대차와 유성기업에 한광호가 산화한 지 최소한 100일은 넘기지 말자며 책임 있는 답변을 요구했다.

하나 요지부동이었다. 한광호를 위한 상여소리는 영동에서 서울시청을 거쳐 현대차 본사 앞에서 중단되고 말았다.

망자에 대한 예의는 동서양을 불문한다. 상례의 절차에 울리는 악곡은 옷깃을 여미게 한다. 우리의 상여소리는 “북망산천 멀다더니 내 집 앞이 북망일세 가네 가네 나는 가네 빈손으로 돌아가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기약 없는 길이구나 잘있으오 잘사시오 모두 모두 잘있으오” 등 죽은 자의 혼을 위무하고 남은 자의 안녕을 비는,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진혼곡이요 이별곡이다. 서양에서는 모차르트가 말년에 남긴 레퀴엠(Requiem, 라틴어로 안식이란 뜻)이 유명하다. 레퀴엠은 죽은 이들의 넋을 위로하고 영원한 안식을 노래하는 진혼곡으로 모차르트의 제자인 쥐스마이어가 완성했다고 한다. 스승의 생전 미완성 유작을 제자가 사후에 완성해 의미가 각별한 듯하다.

한광호의 영정 앞에 100일이 넘도록 노조파괴 책임자를 처벌하라는 산 자의 처절한 외침. 민주노조 사수와 자본의 착취가 없는 세상. 그가 남긴 미완의 과제. 중단된 장송곡 상여소리를 마무리 짓는 것이 망자 한광호를 향한 산 자의 몫이며 진혼의 정수다. 떠남을 순서 없이 예비하는 산 자들이 진혼의 악곡을 부르고 연주하며 마지막 예를 다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하여 ‘그대 잘가라’는 이 짧은 인사치레를 못하게 하는 유성기업 유시영 회장과 그를 부리는 현대차. 사회적 책임이 있는 기업들이 취할 태도는 아니다. 100일 동안 장례를 못 치르게 하는 것은 결코 사회적 면책이 될 수 없다. 만시지탄. 이제라도 현대차와 유성기업은 망자 한광호 앞에서 산 자의 ‘최저예의’라도 갖추라.

노동자투쟁연대 대표 (hdlee2001@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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