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호동 노동자투쟁연대 대표

노동과 자본의 역관계가 작동하는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 법치국가를 살아가는 노동자들에게 법이란 무엇인가. 고차원적인 법철학적 질문은 차치하고 현실에서 노동자들에게 헌법과 노동법이 보장해야 할 법적 권리는 휴지 조각으로 변모하기 일쑤다.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 ‘법’과 ‘정의’를 무기로 노동자 권리 사수를 위해 20여년을 초지일관해 온 법조인이 있다. 법무법인 여는(민주노총 법률원)의 권두섭 변호사.

권두섭은 경북 문경에서 6남매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부모님은 농사를 지었지만 부농이 아니어서 부친이 탄광일을 같이 하셨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대구로 전학했고 1987년 법대에 진학했다. 많은 착한 사람들이 실정법 위반으로 잡혀가는 모습을 보면서 법학이 자신과 맞지 않는 분야인 것 같아 고민을 많이 했다. ‘학생운동 조직’은 물론 동아리 활동도 하지 않았고 시위에 몇 차례 참여해 본 것이 ‘과외 활동’의 전부였다고 고백한다.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두루 거친 외사촌 형 고지환 변호사를 보고 사법시험을 응시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1997년 사법시험 합격 후 연수원 시절 노동법학회 활동을 했는데, 동료들에게 ‘전설의 총무’로 불렸다고 한다. 사법연수원생들의 상당수가 민주노총 상담활동에 참여하게 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사법연수원 수업이 끝나면 일주일에 2∼3회씩 민주노총에서 노동상담 활동을 했다. 민주노총이 합법화되기 이전이라 사회 봉사학점으로 인정받을 수도 없던 시절에 사서 생고생을 하는 바보 같은 사법연수생들이었다.

외환위기 때여서 상담실에 어려움을 겪는 노동자들이 넘쳤다. 그렇게 인연이 시작돼 민주노총에서 일하게 됐다. 민주노총에서 권두섭 변호사의 직급은 실·국장이나 부장이 아닌 법규차장으로 시작했다. 3년여가 지난 뒤 권영국·김영기·강문대 변호사가 합류했다. 2002년 2월1일 드디어 ‘민주노총 법률원’을 개원했다. 지금은 변호사 23명, 공인노무사와 송무지원 간사를 합하면 50여명으로 괄목할 만큼 성장했다. 금속노조 법률원·공공운수노조 법률원과 지역사무소에서 일하는 변호사들도 있다. 양적 규모로는 외국의 유수 노총에 비할 바는 아니다. 영국노총(TUC) 변호사 380명, 독일노총(DGB) 변호사 360여명과는 아예 비교가 안 된다. 그럼에도 14년이 지난 지금 민주노총 법률원인 법무법인 '여는'은 노동사건에 관한 한 대한민국 최고의 로펌으로 우뚝 섰다.

민주노총 법률원 창립 후 대규모 첫 사건이 발전파업 사건이었으니 필자와의 인연이 참으로 깊다. 2002년 6월25일 농성 중이던 명동성당에서 서울경찰청으로 연행됐다가 강남경찰서로 이송됐을 때 번개처럼 달려와 변호사 접견거부 문제로 단호하게 호통치던 권두섭 변호사. 평소 부드러운 미소와 들릴 듯 말 듯 조근조근한 말씨지만 그날 강남경찰서에서의 논리정연한 포효는 포승줄에 묶여 있던 필자를 실없이 웃게 만들었다. 2004년 공공연맹 위원장 시절 고려대 법대생들의 교양과목 시간에 특강을 요청받아서 갔더니 권 변호사의 선배이기도 한 담당교수가 강의 전에 이런 부탁을 했다.

“이호동 위원장님! 전에 권두섭 변호사 강의가 아주 좋았어요. 다만 법대생들한테 법 필요없다고 말해서 좀 그랬는데요. 두섭이 취지는 이해하지만 법대생들이니까 그 발언은 좀 참아 주시고, 나머지는 뭐든 말씀하세요.”

하지만 필자는 “악법은 어겨서 깨뜨리며 실정법의 한계를 돌파하는 것이 노동운동”이라고 힘주어 역설했다. 권 변호사와 도긴개긴의 웃지 못할 추억을 공유한 셈이다.

2000년대 이후 노동탄압 수단으로 손해배상·가압류 같은 소송전을 무차별적으로 제기하는 자본의 양태 변화로 인해 법률 전문가들의 조력이 절실해지고 있다. 노자 역관계의 반영이기도 해서 씁쓸하기도 하지만 여하튼 법적 대응이 불가피해지면서 법률원 기능이 확대되고 있다. 아울러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장의 역할도 중요해지고 있다.

세계 각국 법원이나 광장에는 법과 정의의 상징물인 여신상이 세워져 있다. 그리스신화의 디케(DIKE), 로마신화의 유스티치아(JUSTITIA)에서 유래한 법과 정의의 표상이다. 여신상은 대부분 칼과 평형저울을 들고 눈을 감고 있다. 법 집행에 필요한 세 가지를 상징한다. 평형저울은 법의 형평성을, 칼은 법을 집행함에 있어 엄격함을, 감은 눈은 선입견·편견·압력에 휘둘리지 않는 공정함을 나타낸다.

반면 한국 최고법원인 대법원 정의의 여신상은 편안히 앉아 칼 대신 법전을 든 채 눈을 뜨고 있다. 두 눈 뜬 상태에서 법전과 저울만 들고 누군지 눈치 보며 "그때그때 달라요" 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을 듣기도 한다. 한국의 기울어진 법현실을 소리없이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한국의 척박한 법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20여년 세월을 노동자들을 위해 싸우고 있는 권두섭 변호사. 그의 고군분투를 응원한다.

노동자투쟁연대 대표 (hdlee2001@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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