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호동 노동자투쟁연대 대표

노동조합 활동에서 엄격한 원칙준수로 인해 ‘독사’로 불린 사람. 서울지하철노조 간부 중 복직하지 못하고 정년퇴임한 활동가. 1994년 6·24 동맹파업을 감행한 전지협(전국지하철노조협의회) 상임의장 김연환.

김연환은 80년 서울지하철 운영사업소 신호원으로 입사했다. 노동자 대투쟁의 해인 87년 서울지하철노조 설립에 참여했고 설비지부 초대 신호지회장으로 활동했다.

89년 3월16일 지하철 최초로 전면 6일 파업을 전개한 정윤광 집행부의 조사통계부장으로 구속·해고됐다. 93년 서울지하철노조 제5대 위원장에 당선됐다. 김연환은 94년 3월16일 출범한 전지협의 상임의장을 맡았다. 서울지하철노조와 부산지하철노조를 가맹노조로 하고 철도노조 소속 전국기관차협의회(전기협)를 참관단체로 하는 조직이었다.

전지협은 같은 업종의 노조들이 상호 이해와 교류를 강화하는 연대조직으로 출발해 공동사업과 공동투쟁을 논의하면서 짧은 시간에 강력한 추동력을 확보했다. 서울지하철과 부산지하철은 노동조합 결성 이후 8시간 노동제와 직제개편, 근로조건 개선, 임금인상을 쟁취했다. 반면 철도노동자들은 어용노조 탓에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지 못해 분노하고 있었다. 철도노동자들은 전기협을 통해 투쟁의지를 드높였다. 공동투쟁의 핵심 요구는 전기협의 변형근로제 철폐와 8시간 노동제 쟁취, 서울지하철과 부산지하철의 3% 정부 임금가이드라인 철폐였다. 당시 정부가 임금 가이드라인을 강요하면서 공기업 노동자들의 공분이 치솟는 상황이었다. 노·경총 합의로 외양은 갖췄지만 노동계 일반에 대한 정권의 '임금 억압책'은 대중의 강력한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전지협의 서울·부산지하철과 철도 전기협 노동자들은 단체교섭과 결의대회·준법투쟁·쟁의절차를 비롯한 공동투쟁 단계를 밟아 나갔다.

철도·지하철 노동자들은 94년 6월27일 새벽 4시 동맹파업을 예고했다. 그런데 6월21일 김영삼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불법 폭력시위에 대한 과감한 대처를 지시했다. 이는 곧바로 공권력의 전기협 사전 침탈로 이어졌다. 김영삼 정권은 23일 새벽 3시40분 용산정비창을 비롯해 전국의 철도 현장에 공권력을 투입해 철도노동자들을 무자비하게 연행했다. 공권력 침탈에 따라 철도 전기협은 자동적으로 파업에 돌입했다. 전국의 열차가 일시에 멈췄다.

서울지하철노조는 23일 저녁 조합원 비상총회를 열었고, 24일 새벽 4시부터 파업에 들어갔다. 부산지하철노조는 25일 파업에 돌입했다. 전지협 동맹파업이 6월26일까지 완강하게 지속되자 정권과 자본의 총체적 탄압이 계속됐다. 26일 기독교회관에 경찰이 투입돼 전기협 농성자 전원을 연행했다. 파업 가담자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연행과 직위해제가 잇따랐다. 이러한 상황에서 6월30일 밤 서울지하철노조는 조합원 총회를 열고 7월1일 새벽 4시 현장복귀를 결정했다. 전기협은 7월1일 업무에 복귀했고, 부산지하철도 뒤따랐다.

역사적인 전지협 동맹파업은 궤도노동자들이 정부의 임금 가이드라인 정책과 전기협 파괴기도에 맞서 민주노조운동의 정신으로 정면돌파를 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정권의 분리대응 전술에도 궤도노동자들이 단결과 연대의 정신을 올곧게 지키며 투쟁을 전개해 노동자계급의 연대성을 명확히 보여 줬다.

파업투쟁으로 전지협 소속 노동자 수십 명이 구속됐고, 수백 명이 직위해제를 당하거나 해고됐다. 김연환은 전지협 상임의장으로 구속돼 또다시 해고자 삶을 살아야 했다. 출소한 뒤인 2000년에는 민주노총 공공연맹 위원장을 지냈다. 김연환은 2002년 발전파업 당시 명동성당에서 필자를 만나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명동성당 농성 경험을 살려 ‘명성에서 버티는 비법’을 전수해 고된 필자에게 큰 웃음과 영감을 줬다.

평소에 소탈한 성격이지만 원칙에 있어서는 칼 같아서 ‘독사’라는 별명이 붙은 김연환 위원장. 회의 시작 후 30분이 지나면 더 기다리지 않고 산회를 선언해 버린 일화는 유명하다. 늦게 도착한 사람들이 망연자실했던 그때 사건은 두고두고 "독사의 맹독성을 입증했다"며 즐겁게 회자된다. 본인은 "부드러운 사람"이라고 항상 강조하지만….

김연환은 2004년 총선에서는 민주노총 공공연맹의 추천을 받아 민주노동당 후보로 광명에 출마했다. 필자는 공공연맹 후보 발굴 및 추천위원회 심사위원이었다. 이후 "총선에서 공천위원을 해 봤다"고 너스레를 떨곤 한다.

김연환은 끝내 복직하지 못했다. 정년을 맞아 노조에서 정년퇴임식을 열었을 때 필자도 참석해 따뜻한 박수를 보냈다. 당시 “이호동 위원장은 나처럼 정년퇴임하지 말고 꼭 복직하기 바란다”고 덕담을 건넨 그는 현재 필자와 함께 공공운수노조 지도위원을 맡고 있다.

올해로 22주년을 맞은 전지협 동맹파업은 박근혜 정부의 공공부문 성과제와 퇴출제, 민영화가 추진되는 상황에서 큰 시사점을 준다. 당시의 주역들은 매년 6월24일 산행을 함께하며 투쟁 의의를 되새긴다.

이번 칼럼에서 공공부문 공격에 대한 민주노조의 원칙적인 대정권 협상과 동맹파업의 역사를 재조명한 이유다. 현 시점에서 멋진 계승을 고대한다.

이제는 퇴임 이후 제2의 삶을 살아가는 전지협 상임의장 김연환. 원칙적인 노동운동가의 변함없는 삶과 투쟁을 응원한다. 항상 강건하시기를.

노동자투쟁연대 대표 (hdlee2001@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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