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노동자 부부의 세상 건너는 법>을 2016년 첫 책으로 구입했다. 1월 말 노동자역사 한내 운영위원회에서다. 노동자 자기역사 쓰기의 첫 주자가 쓴 책. 35년 외길을 초지일관 달려온 전교조 부부 선생님의 공적활동과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씨줄과 날줄로 조화롭게 엮여 있다. 저자는 강원도 철원에서 교사로 만나 현재까지 35년을 동행한 전교조 원영만·황선희 선생님.

황선희는 1978년 토성초등학교에서 교사생활을 시작해 89년 해직의 아픔을 겪었다. 2015년 원천초등학교에서 마무리할 때까지 교육노동자 38년의 삶은 교사생활 33년과 해직생활 5년이다.

두 분 중 필자가 좀 더 많이 접했던 원영만은 80년 김화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89년 전교조 설립 과정에서 해직됐다. 초대 강원지부장 출신이다. 2006년 다시 해직돼 교육노동자 삶은 교사생활 22년과 해직생활 14년이다. 두 번의 옥고를 치렀다.

두 사람은 70년대에 대학생활을 했다. 황선희는 민청학련 사건으로 지학순 주교가 구속되는 가운데 유신 반대운동의 주요 거점이었던 원주에서 다양한 민주화운동에 동참했다. 원영만은 야학활동과 유신 반대시위에 앞장섰다. 74년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초를 겪었다. 이들은 80년 철원에서 만나 1년여의 열애 끝에 결혼했다. 원영만은 ‘연애 결혼’임을 강조한다.

전교조 설립 과정에서 구속되고 파면된 원영만과 해고돼 같은 길을 걸은 황선희. 이들 부부가 함께한 교육노동자·전교조 간부로서의 기나긴 여정에는 피와 땀과 눈물이 섞여 있다. 아쉽지만 짧은 지면 관계로 생략한다. 자세한 내용은 <동행, 노동자 부부의 세상 건너는 법>에 수록돼 있으니 구입해서 꼭 읽어 보기를 권한다.

2003년 전교조 제10대 위원장으로 활동하던 원영만은 네이스(NEIS) 연가투쟁으로 두 번째 구속됐다. 그리고 2004년 공공연맹 위원장이던 필자와 만났다. 전교조·공무원노조·공공연맹 등이 참여한 ‘공공연대’라는 연대체에서 연대투쟁을 논의하고 함께 집행했다. 특히 2004년 11월 공무원노조 파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교육·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엄중한 투쟁 현장에서 눈빛이 예리하고 과묵하던 그와 농담을 즐기는 필자와의 대화는 그의 소년 같은 천진한 미소로 인해 나름 조화를 이뤘다.

2004년 12월31일을 끝으로 각각 임기를 마친 후 원영만은 전교조 현장으로 돌아갔고, 필자는 ‘해고자, 비정규직과 함께하는 활동’으로 전환했다. 당시 민주노동당에서 당 활동에 직접 나서 달라고 요청했지만 그와 필자는 대중조직 투쟁현장 복귀를 우선시했다. 그것이 외려 노동계급 정치에 복무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학창 시절 반독재투쟁 이후 교육노동권 쟁취투쟁에 투신한 이들 부부의 활동은 2012년 원영만이 위암 수술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던 기간을 제외하고 30여년간 이어졌다. 앞선 칼럼에서 소개한 '몸펴기운동'이 건강을 유지하고 지역 조직활동을 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한다.

동지이자 부부의 아름다운 동행. 필자를 포함해 많은 이들이 존경의 대상으로 삼는 이유다. 힘겹고 치열했던 동행 35년. 그 과정을 일기로 기록한 황선희와 원영만의 노동자 자기역사 쓰기 <동행, 노동자 부부의 세상 건너는 법>.

필자도 자기역사 쓰기 주자로 내정돼 있다. 건강상 문제가 없다면 10년 내에는 써야 한다. 이 책을 지침서로 두고두고 읽으며 후배들에게 소개할 생각이다.

반역의 시대에 저항했던 황선희·원영만 부부의 동행은 반독재 민주화 투쟁, 교육노동권 쟁취와 참교육 실현, 민주노조 건설과 전교조 사수 강화의 한길이다. 전교조 26년간 법외노조·법내노조를 불문하고 참교육의 한길로 달렸다.

이들은 저서에 "전교조 더 당당하게 걸어가야 한다"고 썼다. 정년과 퇴직은 형식적 절차일 뿐이다. 35년 부부의 공동 족적은 그 자체로 역사다. 황선희·원영만의 발자국이 또렷이 찍힌 동행 2편을 따뜻한 박수로 기대한다.



노동자투쟁연대 대표 (hdlee2001@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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