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호동 노동자투쟁연대 대표

무뚝뚝한 표정의 카혼(Cajón, 페루 발상의 타악기)이라는 타악기 연주자, 시 읽어 주는 남자, 맛난 음식을 뚝딱 만들어 내는 주방장, 신문에 일기 형식의 글을 연재하던 사람, 심지어 책을 낸 저자, 말수가 적지만 한 번 입을 열면 하고 싶은 말을 재주껏 다하고 마는 사람. 그는 10년차 해고자 콜트콜텍 임재춘.

<우리에겐 내일이 있다> 출판기념회를 하는 20일은 위장폐업·정리해고에 맞선 농성 3천367일째, 새누리당사 앞 무기한 노숙농성 199일째 날이다.

임재춘은 충남 공주 태생이다. 1983년 기타 만드는 기술을 배워 기타회사에 다녔다. 유기용제를 만지고 분진을 마시는 고된 기타노동자였지만 결혼도 하고 두 딸의 아버지가 됐다. 나중에 다니던 회사가 콜텍으로 인수돼 콜텍노동자가 됐다. 스스로 밝히듯이 노동자 임재춘의 30년 역사는 ‘기타의 역사’였다. 10년 전 ㈜콜텍이 폐업하면서 해고돼 2016년 현재까지 강산이 한 번 바뀐다는 세월 동안 부당해고 철회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콜트콜텍은 세계 기타시장 점유율 30%를 차지할 정도의 탄탄한 회사였다. 박영호 사장은 30여년 동안 1천억원대의 부를 축적해 국내 120위의 부자가 됐다.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묵묵히 일한 노동자들의 피땀 어린 열매를 독차지한 것이다. 하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물량을 해외공장으로 빼돌리며 서류상 경영위기를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는 전형적인 방식의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노동자들은 무참하게 길거리로 내몰렸고 부당해고에 맞서 현장으로 돌아가기 위한 투쟁은 포기를 모르고 이어졌다. 2013년 2월1일 농성을 하던 부평공장 ‘콜트콜텍 기타노동자의 집’이 강제집행돼 고비를 맞았지만 공장 맞은편에서 천막농성과 촛불문화제·유랑문화제 등 투쟁이 계속됐다. "미래에 다가올 경영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정리해고는 유효하다"는 2014년 6월 대법원 판결도 그들의 투쟁의지를 꺾지 못했다. 이렇게 악덕자본의 위장폐업과 무차별 정리해고에 처절한 사투를 벌이는 노동자들에게 새누리당 대표라는 자가 “잘나가던 회사가 강성노조 때문에 문을 닫았다”는 망언을 했다. 해고노동자들의 분노와 어이없음이 오죽했을지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10년 세월 동안 온갖 우여곡절과 모진 투쟁의 과정에서 결성된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밴드 ‘콜밴’(이인근·김경봉·임재춘)의 연주와 노래는 점점 노련미가 더해지고 있다. 신곡 발표도 계속되고 있다. 아울러 콜밴의 카혼 연주자 임재춘의 실력도 일취월장했다.

2013년 12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오마이뉴스> ‘사는 이야기’라는 코너에 최문선씨의 도움을 받아 ‘임재춘의 농성일기’를 연재하더니 아예 <우리에겐 내일이 있다>는 제목을 책을 냈다. 천막농성장 촛불문화제와 2013년 5월부터 2014년 10월까지 진행된 ‘콜트기타 불매 유랑문화제’ 연출자인 최문선씨가 ‘임재춘의 농성일기’ 기획과 함께 공동으로 집필했다.

이달 6일 사회보장정보원 수요집회 이야기손님으로 출연한 임재춘은 자신의 노동자 생활과 복직투쟁 등 혹독했던 지난 10년을 회고하며 눈물과 웃음을 선사했다. 특히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콜밴의 무대 뒤편 이야기에서는 폭소가 쏟아졌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버텨야 하는 해고노동자의 삶과 결의를 담담하게 풀어놓던 그는 향후 희망도 이야기했다.

“돈 없는 사람들, 빚만 늘어 가는 해고자들도 차별 없이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이어진 한마디는 필자를 몹시 당혹케 했다. “호동 위원장님이 그런 방법 한번 찾아봐요.”

<우리에겐 내일이 있다>에 언급된 임재춘식 ‘자본론’은 이러하다.

“돈이란 사람을 갖고 노는 물건이다. 그러나 애초 돈은 사람과 사람 사이 물건을 사고파는 거래의 수단이고, 약속일 뿐이기에 돈보다 사람이 먼저였다.”

“해고는 살인이다.”

“돈이 웬수다.”

그의 글을 읽는 동안 힘든 해고자 삶을 함축하고 있어 질박한 문장이 오히려 가슴을 후벼파는 느낌이었다.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의 10년 투쟁 여정을 기록한 책을 발간한 임재춘과 콜밴은 현재 다섯 번째 자작곡을 준비 중이다. 콜밴의 음악사적 가치에 대해 “다른 밴드에게 자부심을 주는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도 하지만 <꿈이 있던가> <주문> <서초동 점집> <고공> 같은 대형 히트곡을 네 곡이나 보유한 밴드임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서초동 점집>은 임재춘이 사법부 현실을 풍자하며 작성한 가사를 토대로 만들어진 곡이다.

10년 된 해고노동자 임재춘은 변함없이 카혼 합주연습과 작곡교실, 각종 공연, 농성장 지킴이 역할로 분주하다. "부당해고를 철회하라"는 정당한 요구를 하며 10년 넘게 대장정을 이어 가는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 임재춘과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이 출연했던 연극 <구일만 햄릿>에 이런 대사가 있다.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

노동자투쟁연대 대표 (hdlee2001@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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