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프랑스 같은 유럽 선진국들은 사용자가 저성과를 이유로 노동자를 해고하려 할 때 노조나 노동자대표와 '합의에 준하는 협의'를 하도록 법률로 규정해 저성과자 해고남용을 억제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한국 정부는 최근 발표한 공정해고(일반해고) 지침에서 "해고를 위한 평가·절차에 노조를 포함한 근로자대표 참여를 보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내용의 실효성 없는 권고만 내놓았다.

독일 “사업장평의회와 사전협의 안 하면 모두 무효”

한국노총은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6층 대회의실에서 징계 및 해고 기준과 절차에 관한 외국 법·제도와 노동자 참여 및 시사점에 관한 국제정책연구 발표회를 열었다.

독일 사례를 발표한 이상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연구위원은 “독일은 해고보호법에서 해고는 마지막 수단이라는 최후수단 원칙에 따라 엄격히 규제한다”며 “사용자가 해고를 단행한다고 하더라도 독일연방 노동법원은 저성과가 ‘현저하게’ 존재하고 노동자 책임소재가 ‘분명하게’ 있어야 이를 인정한다”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특히 독일 사업장평의회(우리나라 기업별 노조) 역할에 주목했다. 독일은 1952년 제정된 기업기본법에서 사업장과 기업 차원에서 사업장평의회 같은 노동자대표가 참여하는 회의체를 만들고 복지·인사·경제적인 문제에 대한 참여와 공동결정권을 보장하고 있다.

그는 “사업장평의회가 행사하는 공동결정 핵심 권리 중 하나가 인사에 관한 사항”이라며 “사용자가 노동자를 해고하려면 사전에 사업장평의회와 반드시 협의해야 하고 이를 거치지 않으면 해고사유와 상관없이 모두 무효”라고 강조했다. 다만 협의 과정에서 사업장평의회가 반대하더라도 사용자는 해고를 진행할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사업장평의회가 사측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다른 대안을 제시한다. 이마저도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소송을 한다.

이 연구위원은 아울러 "독일은 민법·해고보호법·기업조직법을 비롯한 다층적인 법·제도를 통해 해고 전후 단계별로 촘촘한 고용안정 조치를 보장하고 있다"며 "해고가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우리나라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설계상 해고제도가 비슷하더라도 독일은 충분히 보호가 되지만 우리나라는 사실상 해고 자유를 확대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측면에서 정부가 발표한 일반해고 지침은 문제가 많다”고 비판했다.

프랑스 “실재적이고 중대한 이유 있어야 해고 가능”

프랑스는 노동법에서 ‘실재적이고 중대한 이유’가 있어야만 해고를 인정한다. 실재적이라는 것은 사용자가 해고하려는 이유가 명확하고 확증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조임영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둘 중 하나만 충족하면 해고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성과부족은 그 자체로 해고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프랑스도 노조와의 사전협의를 중시하고 있었다. 조 교수는 “프랑스에서는 인사평가시스템을 도입할 때 노동자 전체에 통보하고 기업위원회(우리나라 기업별 노조) 같은 노동자대표와 협의한 후 정부기관인 정보처리와 자유에 관한 국가위원회에 신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프랑스에서 협의는 아주 실질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강조했다. 사측이 평가시스템을 도입하려고 하더라도 기업위원회가 협의를 거부하면 도입은 불가능하다. 조 교수는 “우리나라처럼 형식적으로 의견 한 번 듣고 마는 협의와 질적으로 다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 교수는 이에 따라 일반해고 지침에 대해 “공정한 성과평가 기준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이를 기준으로 해고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의문이지만 설령 가능하다 하더라도 법률에 규정하는 것이 맞다”며 “행정지침으로 (해고를) 시행하는 것은 내용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 절차상 하자가 크다”고 비판했다. 그는 “성과평가를 통한 해고는 노동자를 개별화·고립화하고 단결을 해쳐 결국 노조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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