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16일이면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근로기준법 76조의2) 시행 5년이다. 편 가르고 따돌리고 뒤에서 수군대던 행위들이 비로소 괴롭힘이라는 이름으로 수면 위로 드러났다. 그저 아랫사람이란 이유로, 나만 예민한가 싶어서 숨죽여 참았던 행위에도 빨간 딱지가 붙었다.
그렇게 5년, 이대로 좋을까. 직장의 테두리를 묻고 지시의 정당성을 묻고 이것도 괴롭힘이냐 묻는 목소리도 묻어난다. <매일노동뉴스>는 시행 5년을 맞은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의 현재와 미래를 들어봤다.
<기획취재팀=제정남·이재·강예슬 기자>
“직장내 괴롭힘 외부 전문조사 노무법인 찾고 계시다면? #노동청 #체계적대응 #비용견적”
“전문 공인노무사로 구성된 직장내 괴롭힘 전담 대응팀을 발족해 기업의 신속·정확한 직장내 괴롭힘 조사 진행에 도움 드리고 있습니다.”
직장내 괴롭힘 사건이 증가하면서 신고사건 조사를 수익화한 노무법인과 법무법인의 마케팅도 확산하고 있다. 23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노무·법무법인들이 직장내 괴롭힘과 관련한 전문팀이나 부서를 앞다퉈 신설하는 추세다.
노무·법무법인에 등장한 ‘괴롭힘 조사·해결센터’
매출액 기준으로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대형로펌 율촌은 지난해 노동조사센터를 출범해 직장내 괴롭힘 사건을 수임하고 있다. 직장내 괴롭힘만 다루는 것은 아니지만 비중이 느는 추세다. 조상욱 변호사(법무법인 율촌)는 “법무법인을 통한 직장내 괴롭힘 사건이 많고 노무법인에도 많이 접수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최근에는 연구단체인 한국노동사회연구소도 한국직장괴롭힘조사센터 ‘휘슬’을 개소하기도 했다. 박용철 한국직장괴롭힘조사센터장은 “직장내 괴롭힘 사건은 당사자가 괴롭힘 판단 결과를 수용하지 않거나 조사 담당 공인노무사가 고발당하기도 하는 등 오히려 더 첨예한 갈등을 부르기도 한다”며 “노무법인에만 조사를 맡겨두면 공정성과 객관성이 ‘고객’에 치우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 센터장은 “(직장내 괴롭힘 문제 해결에) 그동안 축적된 연구소의 연구역량과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할 부분이 커 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직장내 괴롭힘 해결 시장의 대체적인 시세도 형성되는 분위기다. 직장내 괴롭힘 신고를 받아 조사를 해야 하는 기업을 대리해 신고조사를 할 때는 기본 단가가 대략 150만원 선이다. 여기에 신고 1건당 50만원을 가산하고, 참고인 조사도 1명당 단가(30만원 수준)가 추가된다. 직장내 괴롭힘 신고 1건에 참고인이 3명이라면 290만원 정도의 비용이 발생하는 셈이다. 물론 노무·법무법인과 개인에 따라 시세는 상이하다.
이처럼 시장이 형성되는 이유는 조사의 어려움 때문이다. 김명진 공인노무사(노무법인 해원)는 “괴롭힘 여부에 대한 판단이 쉽지 않을뿐더러 신고인과 피신고인 양쪽 모두 회사의 조사 결과를 수용하지 못하는 경향도 강하다”며 “법 시행 이후 지난 5년간 노무법인들의 조사기법과 방식이 강화돼 점점 확산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노동위·노동청 사건 ‘패키지’ 상품도
기업의 조사를 대리하는 시장은 커지는 데 반해 직장내 괴롭힘 신고자는 대리인을 찾기가 어려워지는 추세다. 직장내 괴롭힘 입증에 기울이는 대리인의 노력에 비해 수임료는 높지 않아 노무법인들이 꺼리는 편이다. 최근에는 직장내 괴롭힘 신고와 부당노동행위 등 노동위원회 사건을 ‘패키지’로 묶는 상품도 등장하고 있다. 노동청 진정 사건을 대리하면서 사업주와의 화해조정을 통해 위로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모델을 만들기도 한다.
조사 기간은 한 달 내외다. 신고서를 바탕으로 사실확인을 거친 뒤 피신고인과 참고인을 조사하고 조사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드는 시간이다. 김 공인노무사는 “직장내 괴롭힘 사건으로 사실상 일반 업무나 인사운영이 마비된 경우들도 있어 기간 단축을 요청하기도 한다”고 부연했다.
기업 규모에 따라 직장내 괴롭힘 해결 능력의 격차도 커지고 있다. 50명 이상의 규모가 있는 사업장은 고충처리나 신고절차를 고도화해 신고에 대해 초기대응이 가능한 체계를 마련하고 있지만 작은 사업장은 사실상 이런 대응이 불가능해 막대한 갈등비용을 치르는 게 현실이다. 최근에는 기업 내 직장내 괴롭힘 처리절차 컨설팅이나 관련 교육으로 시장이 확산하는 추세다.
하지만 외부기관에 의뢰한다고 직장내 괴롭힘의 원인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여수진 공인노무사(민주노총 서울본부 노동법률지원센터)는 “외부기관 조사 과정에서 괴롭힘 행위 여부만 판가름할 뿐 괴롭힘 예방이나 근절 역량 강화로 이어지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여 노무사는 “직장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갈등을 해결할 경로가 없는 가운데 직장내 괴롭힘 신고사건으로 통칭되는 경향이 있어 조직 내에서 다양한 갈등해결 노력과 의사소통 채널 개발이 병행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