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16일이면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근로기준법 76조의2) 시행 5년이다. 편 가르고 따돌리고 뒤에서 수군대던 행위들이 비로소 괴롭힘이라는 이름으로 수면 위로 드러났다. 그저 아랫사람이란 이유로, 나만 예민한가 싶어서 숨죽여 참았던 행위에도 빨간 딱지가 붙었다.

그렇게 5년, 이대로 좋을까. 직장의 테두리를 묻고 지시의 정당성을 묻고 이것도 괴롭힘이냐 묻는 목소리도 묻어난다. <매일노동뉴스>는 시행 5년을 맞은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의 현재와 미래를 들어봤다.
<기획취재팀=제정남·이재·강예슬 기자>

▲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갑질을 당한 증거는 없어요. 그래도 인터뷰를 해도 괜찮은 건가요?”

아파트 경비노동자로 일했던 김정주(67·가명)씨의 목소리가 조심스러웠다. 5개월을 일하는 동안 아파트 동대표는 갑질을 일삼았지만, 증거를 모을 생각은 못 했다. 익명으로 보도한다고 하자, 겨우 이야기를 토해 냈다.

올해 2월 첫 출근날부터 조짐이 있었다. 동대표는 경비실을 자주 들러 김씨 이전 근무자를 흉봤다. 관리소장은 동대표가 경비원을 자꾸 내보내는데, 먹는 것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넌지시 던졌다. 일흔이 가까운 나이, 새 일을 찾긴 쉽지 않았다. 눈치껏 10만원이 넘는 식사를 동대표에게 대접하고, 신용카드 대출을 받아 현금을 건넸다. 넉넉잖은 형편에 상납을 관두자 동대표는 그 뒤부터 여러 트집을 잡아 괴롭혔다. 김씨는 결국 일터를 떠나야 했다. 그를 고용한 위탁업체와의 근로계약이 8개월 남았지만, 회사에 피해가 되니 자진퇴사를 하는 게 어떻겠냐는 말에 고개를 숙였다.

명백한 괴롭힘으로 보이지만, 현행 근로기준법으로는 입주민과 관리소장을 처벌하기 어렵다. 민사상 손해배상이 가능할 뿐인데, 경비노동자의 단기계약 구조는 이조차 어렵게 한다.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이라 불리는 근로기준법 조항이 5년간 시행됐다. 그 결과 직장내 괴롭힘에 대한 인식은 높아졌다. 하지만 법의 사각지대는 여전하다. 김씨와 같이 고용구조·노동조건상 열악한 환경에 놓인 노동자의 목소리는 소리 없는 아우성에 그친다.

신고사건 4년 전보다 2배 증가
“괴롭힘 인식 확대 효과”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은 간호계 ‘태움’, 지도교수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대학원생 갑질 행위가 사회적 논란이 되자 2019년 1월 국회 문턱을 넘었다. 근로기준법에 직장내 괴롭힘을 정의·금지하고, 괴롭힘 발생 예방·대응 조치를 사업장에 맡겼다. 하지만 사용자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처벌조항이 없는 탓에 실효성 논란이 있었다. 이를 반영해 △사용자 및 사용자의 친족인 근로자가 괴롭힘을 하는 경우 과태료 부과 △사용자의 객관적 조사 의무 추가 △사용자 의무 미이행시 과태료 부과 등의 내용을 담아 2021년 4월 추가 개정됐다.

이후 직장내 괴롭힘 신고는 증가 추세다. 2019년 7~12월 2천130건이었는데 지난 한 해 1만28건으로 급증했다. 2020년 5천823건과 비교해도 두 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갑질이 늘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직장갑질119가 직장갑질 경험률을 설문한 결과 2019년 44.5%로 나타났지만 올해 4월 30.5%로 감소추세다.

직장내 괴롭힘에 대한 인식 확대 효과로 풀이된다. 김근주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법 제정으로) 괴롭힘 행위를 판단할 구조가 만들어졌고, 그를 통해 인식이 개선됐다”며 “성희롱 같은 경우에 과거 (특정 행동이나 말이) 성희롱인지 아닌지 이런 것이 많이 논란이 됐지만 10년, 15년 시간이 지난 뒤 성희롱에 대한 인식이 개선된 것처럼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도 긴 맥락에서 보면 긍정적인 효과가 크다”고 해석했다. 김명진 공인노무사(노무법인 해원)는 “술 먹자며 회식을 강요하는 조직문화가 달라졌고, 현재는 반존대도 조심하는 문화”라고 말했다.

▲ 편집 김효정 기자
▲ 편집 김효정 기자
편집 김효정 기자
▲ 편집 김효정 기자

피해자·가해자 모두에게 불신받는 제도

우리나라 직장내 괴롭힘 제도는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비판받는다. 근로기준법 76조의2는 직장내 괴롭힘을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라고 규정하지만, 사용자 혹은 노동청의 직장내 괴롭힘 행위 조사·판단 과정은 결국 무엇이 괴롭힘이냐는 논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직장내 괴롭힘 신고가 오·남용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무엇이 업무상 지시로 가능한 행위인지, 괴롭힘인지에 대한 판단이 현장에 정착되지 않은 탓이 크다. 우리 사회에서 직장내 괴롭힘 정의에 대한 공감대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황을 방증하기도 한다.

신고인 입장에서는 괴롭힘 피해를 인정받기가 여간 쉽지 않다. 피해자가 직장내 괴롭힘을 호소해도 노동부의 개선지도, 과태료 처분, 기소의견으로 검찰 송치가 이뤄지는 사례는 2023년 기준 9.7%에 불과하다. 10건 중 66.7%는 법 위반 없음 혹은 법 적용 제외 등 기타 사건으로 종결된다. 전체 사건 중 노동부 개선지도율은 2020년 15.4%에서 지난해 7.1%로 감소했다. 직장내 괴롭힘을 신고했지만, 괴롭힘을 인정받지 못했다면 피해자는 구제받았다고 생각할 수 없다. 이 같은 통계는 직장내 괴롭힘 조사나 처벌이 잘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배가영 직장갑질119 활동가는 “노동청이 사건 처리 과정에서 괴롭힘을 인정하는 기준을 보수적으로 잡고 있다”며 “근로감독관이 사용자 괴롭힘 사건조차 직접 조사하지 않으며, 회사의 조사 결과에 의존하고 있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직장내 괴롭힘 조사 주체였던 사용자, 혹은 가해자가 된 사용자가 노동부의 과태료 처분에 불복해 노동부에 이의를 신청하는 사업장이 늘고 있는 점도 지목했다.

서유정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연구위원은 노동부의 개선지도율이 낮은 이유로 “신고는 크게 증가했는데, 담당 근로감독관의 수는 그만큼 증가하지 못했기 때문에 인력부족으로 과태료 처분만 하고 장기적 관찰을 요하는 개선지도를 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과, 개선지도가 필요하다고 판단될 만큼 심각한 신고보다 그렇지 않은 신고의 비중이 높기 때문일 가능성이 둘 다 있다”고 해석했다.

괴롭힘 경험률 줄었지만, 정도는 심각해져
보복 두려워 신고 못하는 노동자 파악 안 돼

현재 법 시행 5년을 앞두고 있지만 제도에 대한 평가와 제도가 나아가야 할 방향 모두 사회적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가야 할 길이 멀단 뜻이다. 하지만 목표는 명확하다. 직장내 괴롭힘 근절이다. 경비노동자 김정주씨의 사례처럼 열악한 환경의 노동자에게 가해지는 심각한 괴롭힘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 필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열악한 노동자의 권리 구제 필요성은 숫자가 뒷받침한다. 직장내 괴롭힘 피해는 사업장 규모가 작을수록 많다. 노동부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직장내 괴롭힘 신고는 8천901건으로, 이 중 약 60%(4천974건)가 50명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반면 300명 이상 기업은 15.1%(1천347건)에 그쳤다. 50명~300명 미만은 25%를 차지했다.

직장내 괴롭힘 경험률은 감소추세지만 괴롭힘 수준이 심각하다는 응답은 되레 증가했다. 직장갑질119가 지난 4월 직장인 1천명을 설문해 발표한 결과 직장내 괴롭힘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 중 45.6%는 괴롭힘 수준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2019년 38.2%보다 증가했는데, 비정규직·저임금 노동자인 경우가 많았다.

배가영 활동가는 “심각성의 경우 비정규직·비사무직·저임금 노동자 등 일터 약자들에게서 높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며 “신고를 하기 더 어렵고, 피해자가 신고 이후 조사 과정을 버틸 만큼의 조력을 받기 어려운 경우 더 심각한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유정 연구위원은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 이후 전체적인 피해율은 줄어들었지만, 일부 사례에서는 피해가 극단화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이미 피해자를 괴롭히고 있던 가해자가 신고를 당하지 않기 위해 쓸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신고할 생각도 못할 만큼 심각하게 괴롭혀서 공포를 느끼게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고를 감수해야만 피해를 알릴 수 있는, 보복이 두려워 신고를 주저하는 이들은 지금도 숨죽여 산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그 규모조차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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