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16일이면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근로기준법 76조의2) 시행 5년이다. 편 가르고 따돌리고 뒤에서 수군대던 행위들이 비로소 괴롭힘이라는 이름으로 수면 위로 드러났다. 그저 아랫사람이란 이유로, 나만 예민한가 싶어서 숨죽여 참았던 행위에도 빨간 딱지가 붙었다.

그렇게 5년, 이대로 좋을까. 직장의 테두리를 묻고 지시의 정당성을 묻고 이것도 괴롭힘이냐 묻는 목소리도 묻어난다. <매일노동뉴스>는 시행 5년을 맞은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의 현재와 미래를 들어봤다.

<기획취재팀=제정남·이재·강예슬 기자>

▲ 정기훈 기자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은 ‘사업장 스스로 해결’을 기본원리로 삼고 있다. 누구든지 직장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신고할 수 있고, 접수 주체는 사용자다. 조사와 조치의 주체도 사용자다. 사업장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사용자가 조사, 조치 역할을 충실히 해야 작동하는 시스템이다. 직장내 괴롭힘 신고 처리절차는 ‘사건접수→상담→조사→괴롭힘 사실 확인 및 조치→점검’의 다섯 과정으로 이뤄진다.

이런 원리를 가진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은 효과가 있었을까. 전문가들은 직장내 괴롭힘이 해서는 안 되는 행위라는 인식을 확산했다는 점에서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고용노동부 통계에서 직장내 괴롭힘 신고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두고, 괴롭힘이 줄지 않았다는 의견과 괴롭힘이 문제라는 인식이 확대한 결과라는 주장이 엇갈린다.

서유정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연구위원은 “전반적인 인식 수준이 높아졌다”며 “하지만 실제 괴롭힘을 예방하고 있는지 의문이 남는다”고 짚었다.

한국노총 조합원 10명 중 6명 직장내 괴롭힘 경험
… 법으로 해결 14.2% 그쳐

한국노총이 지난해 6월 조합원 1천6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직장내 괴롭힘 실태조사를 보자. 최근 3년간 직장내 괴롭힘을 경험한 비중은 61.5%였다. 괴롭힘 경험률은 민간부문(59.3%)보다 공공부문(71.2%)이 더 높았다. 응답자의 71.3%가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사실을 알고 있다”고 답했지만 사업장의 규모가 작을수록 모른다는 비중이 높았다. 실제로 괴롭힘 유경험자 중 법·제도를 통해 대응한 사람은 14.2%에 그쳤다. 조합원 대다수는 대처하지 못하거나 이직·퇴사를 고려했다고 응답했다. 장진희 한국노총 전략조정본부 국장은 “직장내 괴롭힘을 금지하고 피해자를 구제하는 법·제도가 있어도 현장에선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크다”고 평가했다.

법 작동 원리 ‘사업장 스스로 해결’
실효성 논란 일어 변화 갈림길

시행 5년을 맞는 직장내 괴롭힘금지법은 무엇이 직장내 괴롭힘이냐는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정부는 괴롭힘 신고의 오남용 문제를 가장 주목한다. 괴롭힘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 현장에서 오남용을 비롯한 갖가지 갈등이 발생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지난해 11월1일 청년 간담회에서 “직장내 괴롭힘에 대한 노동위원회의 조정·중재, 판단 절차 도입 등 실효성 있는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며 “괴롭힘 기준도 더 구체적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근로기준법은 직장내 괴롭힘을 “직장의 지위·관계 등 우위를 이용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규정한다. 괴롭힘을 판단할 때 지속성과 반복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얘기다.

서유정 연구위원은 “가해자를 찾아 입증해 처벌하는 현재의 사후구제식 방식은 장기적으로 어마어마한 행정력과 비용을 소모하지만 정작 괴롭힘 예방에는 큰 효과가 없다”고 딱 잘라 말한다. 노동자와 사업주 모두 직장내 괴롭힘을 악용할 수 있게 제도가 설계돼 있다는 얘기다.

“직장내 괴롭힘 개념부터 사회적 합의 필요”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괴롭힘을 판단할 때 반복성·지속성을 따지게 되면 제도 도입 취지가 훼손될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한 번만 피해를 입어도 직장내 괴롭힘일 수 있고, 같은 행위가 여러 번 반복돼도 괴롭힘으로 볼 수 없는 등 상황에 따라 판단을 달리할 수밖에 없다”며 “법 시행 5년이 되면서 괴롭힘이냐, 아니냐는 기준이 자연스레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준희 광운대 교수(법학과)는 “오남용은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 형성 이후 발생한 새로운 문제가 아니고 우려도 과장됐다”며 “직장내 성희롱·성폭행 금지법이 도입됐을 때도 유사한 논란이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무엇을 성희롱·성추행으로 보는지 사회적 합의가 형성되면서 자연스럽게 해결됐다”고 밝혔다. 직장내 괴롭힘 기준을 구체적으로 정하면 가해자 혹은 사용자가 법망을 빠져나가는 가이드라인으로 역할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 때문에 직장내 괴롭힘 정의를 ‘1주에 한 번 이상 괴롭힘 행위가 1~3개월간 지속했을 경우’ 같이 구체화 하는 방식은 전문가 내에서도 의견이 팽팽하다.

노동위서 괴롭힘 판단? ‘대체로 동의’
“인력·예산 없으면 되레 부작용”

노동위원회 역할을 높이자는 제안에는 대체로 찬성하는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기업 자체 조사에 대한 부실함·편향성 논란이 되면서 객관성을 높일 장치로서 노동위가 주목받고 있다. 게다가 현행은 피해자 보호조치 의무 위반과 신고자·피해자에 대한 사용자의 불리한 처우 금지 위반에 대해 과태료 벌칙만 규정돼 있다. 정작 피해자에 대한 직접적·실효적 구제 수단이 없다는 문제가 나온다. 노동위가 직장내 괴롭힘 구제신청을 담당하고, 조정·중재 등 분쟁해결 방법을 활용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까닭이다.

우려는 있다. 김근주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인력과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노동위에서 제대로 사건을 조사하지도, 구제하지도 못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며 “최악의 경우 (직장내 괴롭힘) 업무 과중으로 인해 부당해고 사건 등 노동위가 기존에 하던 피해자 구제 업무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고 공무원 증원에 한사코 반대하는 윤석열 정부의 기조 변화 없이는 효과를 낼 수 없거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와 노동계 등에서 공감하는 개선방향도 있다. 대표적으로 5명 미만 사업장, 특수고용직·플랫폼 노동자, 하청노동자 등에 대한 사각지대 해소 필요성이다. 직장내 괴롭힘을 신고하려면 먼저 근로기준법에서 정의가 내려져야 한다. 아파트 경비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입주민 갑질, 대리운전기사를 대상으로 하는 고객 갑질, 학원장의 갑질에 노출된 프리랜서 강사, 하청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원청 관리자 갑질 등을 처리 못하는 이유다. 노동계와 정치권은 3자에 의한 괴롭힘 발생시 사업자의 조치 의무를 규정하고, 3자에 의한 괴롭힘에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은 사용자를 처벌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대안으로 꼽는다. 21대 국회에서 여야 모두 발의한 만큼 22대에서 통과 가능성이 크다.

“경영진의 각오와 자세
괴롭힘 예방에 가장 중요”

정부의 역할을 높이자는 의견도 공감대가 크다. 직장내 성희롱 방지를 위한 예방교육처럼 직장내 괴롭힘 예방교육을 의무화하자는 제안이다. 국제노동기구(ILO) ‘일의 세계에서 폭력 및 괴롭힘 금지 협약(190호)’도 직장내 괴롭힘 예방과 피해자 보호 방안으로써 교육훈련과 인식 제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괴롭힘 사건이 발생하면 피해자 퇴사로 곧장 이어지는 소규모 사업장은 정부·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지원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를테면 공공이 운영하는 고충처리위원회 설치 등을 통해 갈등을 조정하는 식이다.

정부가 지난 5년간 축적한 괴롭힘 인정·불인정 유형을 정리해 가이드라인 등의 형식으로 구체화하자는 제안도 여러 전문가가 제시했다. 이승협 교수는 “5년간 여러 조사와 사례가 충족돼 있고 이를 사업장 규모나 행태 등 유형별로 나눠 범주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주미옥 한양대 겸임교수(산업융합학부)도 “사업, 규모, 조직 연혁 등 사업장 환경에 따라서 나타나는 괴롭힘 선례를 모아 체크리스트 형식으로 만들면 제도가 순항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직장내 괴롭힘 범주를 좁히자는 의견을 낸 전문가들도 국가 차원의 예방 정책을 펼치고, 전문인력을 통해 사업장 점검과 피해자 구제를 선행해야 한다는 입장은 같다. 문제는 정부가 인력과 예산을 투입하지 않으면 현실화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사업주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 박점규 운영위원은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의 목적은 조직문화 개선이지 처벌이 아니다”며 “경험하지 못한 법으로 인해 경영활동이 어렵다는 주장은 이해되지만, 오남용 문제를 침소봉대하면서 빠져나가기보다는 기업 스스로 자정능력을 키우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주미옥 교수는 “일터 안에서 경영진의 말 한마디는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며 “경영진의 각오와 자세가 직장내 괴롭힘을 예방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임은 확실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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