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로드 협력업체인 한빛방송 고객센터에서 팀장으로 근무하는 양재걸(39)씨는 지난 3일 오후 업무를 하기 위해 사내전산망에 접속했다. 그런데 로그인이 되지 않았다. 전산기록 자체가 삭제된 것이다. 전산망을 통해 팀원들에게 업무를 배분하고, 신규장비를 등록하는 그의 업무는 올스톱됐다. 협력업체 사장에게 항의하자 “파업을 하지 않겠다고 하면 아이디를 풀어 주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태광그룹 계열 종합유선방송사업(MSO) 업체 (주)티브로드홀딩스와 도급계약을 맺은 고객센터·기술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 중 상당수가 최근 양씨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대부분 노조간부들이다. 임금·단체협약 체결과 원청업체로의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부분파업에 나섰다가 낭패를 본 것이다.

이들의 전산기록을 삭제한 주체는 협력업체가 아닌 티브로드다.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쟁의행위 수위를 높여 가자 원청업체가 직접 이들에 대한 근로수령을 거부하고 나선 것이다. 쟁의행위에 대한 사용자의 대응이라는 측면에서 일종의 직장폐쇄로 볼 만하다. 컴퓨터와 개인용휴대단말기(PDA)로 업무지시를 받는 서비스부문 노동자들에 대한 직장폐쇄가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공장’에서 근무하지 않고 가정방문 AS서비스가 주를 이루는 업종에서 전산망 차단은 생산시설에 대한 접근권을 차단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사용자는 노동자들의 이윤창출 도구인 PDA의 접속을 끊어 버리는 방법으로 파업 참여 노동자에 대한 응징에 나선 것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파업 노동자들과 근로계약을 체결한 협력업체가 아니라 원청업체가 직접 나섰다는 점이다. 하청업체노조의 파업동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원청이 ‘지배·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실제로 티브로드는 하청노동자들이 쟁의행위에 돌입하자 대체인력 투입에 나서는 등 파업의 효과를 최소화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런 경우 원청의 부당노동행위가 문제가 된다. 간접고용 상태에 놓인 하청노동자들이 원청 사용자를 상대로 부당노동행위 책임을 물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은 지난 2010년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관련 사건에서 “원청업체가 하청업체의 근로조건 등에 실질적인 영향력과 지배력을 가질 경우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원청업체 사용자를 하청노동자에 대한 노조법상 사용자로 인정한 판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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