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 수준 이상의 운송료를 주지 않으면 화주와 운송사를 처벌했던 안전운임제가 사라지자 대부분의 운송사에서 화주에게 받는 운송료가 줄어든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는 화물운송시장 정상화를 위해 화주가 운송사에게 주는 운송료를 규제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규제 없이는 적정 수준의 운송료가 시장에서 책정되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다.
최저입찰제 부활로 일감 잃는 운송사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위원장 김동국)는 12일 오후 국회 도서관에서 ‘안전운임제 확대와 화물운송산업 안전 증진을 위한 정책대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이날 대회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윤종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함께 주최했다.
김종인 본부 정책교섭위원장은 이날 안전운임제가 2022년 말 일몰된 뒤 운송사를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 결과를 전했다. 전국화물자동차운송사업연합회 컨테이너분과와 직접운수사업자협의회가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7일까지 운송사 148개를 대상으로 실시했다. 조사 결과 운송사의 98%는 안전운임제 일몰 뒤 화주가 지급하는 운송료가 감소했다고 답했다. 감소 이유로는 “화주가 삭감을 요구했다”(45.5%)는 답이 가장 많았다. 24.8%는 “최저입찰제가 도입”된 것을 이유로 꼽았고 26.9%는 “물량(일감) 확보를 위해 불가피했다”는 답을 선택했다. 이로 인해 “운송사가 차주에게 지급하는 운송료도 줄었다”는 답이 86.5%나 됐다. 최저입찰제가 부활하면서 95.17%의 운송사가 일감을 잃은 경험을 했다.
화물운송시장은 화주가 운송사에게, 운송사가 화물노동자에게 일감과 운임을 지급한다. 그런데 운송사끼리 일감을 넘기면서 수수료를 챙기는 다단계 거래 구조가 고착화돼 있어 화물노동자에게 돌아가는 운임은 적다. 직접 운송서비스를 하지 않으면서 일감 소개만으로 수수료를 챙기는 운송사가 있는 탓이다. 안전운임제는 ‘화주→운송사→화물노동자’로 이어지는 운임 지급 구조에서 각 단계마다 최저 운임기준을 정한다. 화물노동자가 받아야 하는 최소한의 운임이 정해지기 때문에 운송사가 챙길 수 있는 수수료도 한정돼 자연스레 다단계 구조가 줄어든다. 일감을 확보하려고 최저입찰을 감행하면서 화물노동자의 운임을 깎던 관행도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안전운임제가 지난해 1월1일부터 사라지면서 화물운송시장의 고질적 병폐가 되살아난 것이다.
“화물노동자 노동시간, 임금노동자의 2배”
정부 역시 화물운송시장의 기준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일명 ‘표준운임제’가 안전운임제를 대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표준운임제를 발표하면서 화물운송산업과 시장을 정상화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런데 표준운임제는 안전운임제와 달리 가이드라인에 불과한 데다가 화주가 운송사에게 정해진 운임을 주지 않아도 처벌받지 않는다. 안전운임제가 사라지자마자 화주가 운송사에게 지급하는 운송료가 깎여 나갔다는 이번 조사 결과를 고려하면 표준운임제가 화물운송시장 정상화에 기여할 가능성은 낮다.
안전운임제가 시범도입됐던 2020년부터 2022년 사이 제도 효과를 검증하는 연구를 수행한 백두주 부경대 전임연구원(글로벌지역학연구소)은 “화물노동자의 초장시간 노동·저임금 문제를 해결할 거의 유일한 방안은 운임과 소득을 연결한 안전운임제뿐”이라며 “안전운임제를 제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 연구원은 “2022년 기준 화물노동자는 월평균 320시간을 일하는 것으로 드러나 전체 임금노동자의 2배가 넘는 시간을 일하는 것으로 밝혀졌다”며 “안전운임제 시행 뒤 노동시간이 줄고 과적·과로·과속 문제가 해결될 뿐 아니라 운송 거래 단계가 줄어든 것은 분명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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