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화물노동자에게 적정 운임을 보장해 과로·과속·과적을 막는 안전운임제가 지난해 1월 없어진 지 1년 반. 화물운송시장에서 최저임금제 역할을 했던 안전운임제가 사라지자 화물노동자들은 초장시간 고강도 노동에 내몰렸다.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가 안전운임제 일몰 뒤 화물노동자 노동조건 변화를 관찰한 실태조사를 <매일노동뉴스>가 입수했다. 화물노동자들은 제도가 없어진 뒤 과속과 과로가 늘고 과적이 재발했다고 증언했다. 질서가 사라진 화물운송시장에서 정부가 안전운임제 대신 추진하려는 표준운임제는 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도로를 공유하는 모든 플랫폼 노동자에게 안전운임제를 보장하자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일까. <매일노동뉴스>가 안전운임제와 표준운임제를 둘러싼 쟁점을 살펴봤다. <편집자>

2022년 6월과 11월,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는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와 품목확대를 내걸고 두 차례 파업했다. 다단계 운송구조와 덤핑으로 오랫동안 실질소득이 감소해 온 화물노동자들은 최저임금제나 다름없는 안전운임제가 시행되자 노동시간이 줄고 소득이 높아졌다. 파업은 안전운임제 취지를 공감하는 비조합원에게까지 번졌다. 6월, 8일간의 파업 끝에 본부와 국토교통부는 “안전운임제 지속추진과 품목확대에 대해 논의한다”는 데 합의했다.

11월 파업은 더욱 절박했다.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화물자동차법)에 따라 2020년부터 시행된 안전운임제가 일몰조항에 근거해 2022년 12월31일자로 사라질 위기였기 때문이다. 6월의 합의에도 국토부가 안전운임제 논의를 미루자 본부는 일몰 한 달을 앞두고 파업을 예고했다. 이후 사상 초유의 업무개시명령이 내려졌고 16일 만에 본부는 파업을 종료했다. 하지만 정부와 국민의힘은 파업 전 추진하기로 했던 ‘품목확대 없는 3년 연장안’조차 철회했다. 화물노동자의 20년 숙원이었던 안전운임제는 이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화주 운임 안 줘도 제재 없는 ‘종이호랑이’

국토부는 일몰 두 달 뒤인 지난해 2월 ‘화물운송산업 정상화 방안’을 발표했다. 일몰된 안전운임제 대신 ‘표준운임제’라는 이름의 운임체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표준운임제는 “차주를 보호”하겠다던 정부 발표와는 달리 안전운임제보다 훨씬 후퇴한 안이었다. 안전운임제는 화주-운송사-화물노동자로 이어지는 운임 지급 구조에서 화주가 운송사에게 주는 운임과 운송사가 화물노동자에게 주는 운임을 모두 강제했다. 화물시장 이해관계자들이 모인 ‘화물자동차 안전운임위원회’에서 산정한 운임대로 지급하지 않으면 5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됐다. 반면 정부가 내민 표준운임제는 화주가 운송사에게 지급하는 운임은 규제하지 않는다. 운송사가 화물노동자에게 주는 운임에 대한 제재는 약해졌다. 건당 과태료가 아니라 시정명령을 내린 뒤 두 번째 걸리면 100만원, 세 번째 걸리면 200만원을 물리는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공익위원 4명·화주 3명·운송사 3명·화물노동자 3명으로 구성했던 안전운임위원회를 공익위원 6명·화주 3명·운송사 2명·화물노동자 2명으로 재배치했다. 화주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이 만들어진 것이다. 정부는 표준운임제를 안전운임제와 동일한 품목인 시멘트·컨테이너에 3년간 일몰제로 적용하겠다고 밝혔지만 해당 품목의 소득이 기준을 넘을 경우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도 덧붙였다. 정부 발표대로라면 지난 4월 첫 회의를 시작한 표준운임위원회는 상반기 중 ‘가이드라인’ 형식으로 운임체계를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표준운임제가 도입되면 안전운임제가 견인했던 운임 상승효과는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충남 서산시 대산석유화학단지를 출입하는 화물노동자들은 안전운임제 미적용 품목인 위험물 탱크로리를 운행한다. 이들은 안전운임제가 시범 운영한 2020년 안전운임제 모델로 운송사와 교섭해 20년 동안 제자리였던 운임을 14~20%가량 인상했다. 하지만 표준운임제 도입을 앞두고 산단 안팎에서 운임 인하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양동우 화물연대본부 충남지역본부 서부지부 탱크로리지회장은 “화주사에서 법적 근거가 없어졌기 때문에 운송비를 내리겠다고 할 것 같아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물류 안정을 위해 가이드라인이 아닌 법적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화물연대본부는 표준운임제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박연수 화물연대본부 정책기획실장은 “표준운임제가 안전운임제 재입법으로 가는 경로이거나 운임 인하로 현재 고통받는 화물노동자에게 지푸라기가 될 수 있다면 찬성한다”며 “하지만 정부 정책 기조를 봤을 때 표준운임제는 안전운임제 재도입을 막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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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력 없는 표준운임제는 무용지물

화주에 대한 규제가 없어진 표준운임제는 정부 공언대로 화물노동자를 보호, 즉 적정임금을 보장할 수 있을까. 14년 전 한국교통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답은 ‘아니다’에 가깝다.

정부는 이미 ‘표준운임제’라는 이름의 운임체계를 한 차례 시험한 바 있다. 1997년 화물자동차법이 제정되면서 화물자동차 운임은 완전히 시장에 내맡겨졌다. 그만큼 화물노동자 저임금 문제는 오래된 문제다. 2002년 결성된 화물연대본부는 이듬해부터 화주에 의해 일방적으로 정해지거나 최저입찰제·덤핑으로 매겨지는 운임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표준요율제, 표준운임제 도입을 요구한 것이다. 지속적인 표준운임제 도입 요구에 따라 정부는 마침내 2010년 10월부터 2011년 9월까지 컨테이너와 철강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벌였다. 운행시간과 거리에 따라 산정되는 원가에 관리비, 이윤, 통행료 등을 더해 부산~수도권 같은 주요구간마다 최소한의 운임을 공표했다. 표준운임에 대해 5%씩 더하고 빼는 하한선과 상한선도 함께 제시했다. 하지만 운임은 시장에서 기능하지 못했다. 한국교통연구원의 표준운임제 시범사업 운영 및 평가에 따르면 “컨테이너의 경우 표준운임 하한 허용치보다 적게는 13%포인트, 많게는 20%포인트 낮게 거래되는 것으로 나타나 허용치보다 상당 부분 낮게 운임이 거래”됐다. 표준운임을 100%로 볼 때 화주가 운송사에 주는 운임은 평균 82%, 운송사가 화물노동자에게 지급하는 운임은 75% 수준에 머물렀다. 표준운임대로 주지 않아도 처벌하는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사업에 참여한 화물노동자들은 “표준운임을 위반할 경우 정부가 직접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운송사도 “강제조항이 없다면 표준운임제 실효성이 없다”는 의견을 냈다. 대기업 화주만이 “시장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답했다.

운임 높을수록 화물차 사고율 낮아져

안전운임제가 궁극적으로 목표했던 교통안전을 방기한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 표준운임제는 운임과 안전의 상관관계를 부정하고 운임을 위반해도 화주를 규제하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운임이 높으면 화물차 사고가 줄어든다’는 명제는 이미 국내외 연구를 통해 입증됐다. 2017년 발표된 ‘한국 화물운송 노동자의 노동환경이 교통사고에 미치는 영향 분석’ 연구에 따르면 운임이 1만원 상승하면 사고 발생횟수가 3.19% 줄어들었다. 연구자는 “높은 운임을 지급할수록 사고위험이 준다는 기존 연구와 상통하는 결과”라며 “운임의 수준이 높을수록 과도한 노동, 노동조건이 불량한 운송을 떠맡는 행위가 줄어들어 사고위험이 감소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데이비드 피츠 호주 그리피스 대학교 명예교수도 1979년부터 안전운임제를 운영한 뉴사우스웨일즈주의 교통사고 사망사고를 분석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뉴사우스웨일즈주와 그 외 지역을 비교할 때 제도 도입 후 1년에 0.1%포인트씩 사망사고 비율이 감소했고 결과적으로 이 제도가 205명의 생명을 구했다.

전문가들과 운송산업 관계자들은 정부의 표준운임제가 화물노동자에게 적정소득을 보장하지 못하는 실효성 없는 제도로 전락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윤영삼 부경대 교수(경영학)는 “안전운임제는 시장을 바로잡아 사고를 줄이고 노동자 건강 문제도 챙길 수 있는 파급력이 큰 제도”라며 “표준운임제가 화물노동자를 보호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데도 국토부가 만들려는 이유는 화물운송시장의 저임금 문제가 그만큼 심각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도로 안전과 지속가능한 화물운송산업을 위한 최소운임 모델의 법적 강제는 국제노동기구(ILO)도 강조하는 대목이다. ILO는 지난 2019년 ‘양질의 일자리와 도로안전 증진 관련 지침 채택을 위한 전문가 회의’에서 운임 모델 원칙으로 △구속력 있는 최저운임 법제화 △고정비 및 변동비에 대한 완전한 비용 회수 △비운행시간 포함 모든 노동시간 보상 △모든 차종과 품목에 적용을 꼽았다. 운임 산정에 노조 참여를 보장하고 ‘책임사슬 원칙’에 따라 정부가 적절하게 감시·단속할 것과 위반시 제재하는 조항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책임사슬 원칙은 화물운송시장의 이해관계자인 화주·운송사·화물노동자 모두가 안전한 도로환경을 만들기 위해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임월산 국제운수노련(ITF) 전략정책국장은 “정부 가이드라인 형태라면 화주에 비해 교섭력이 약하고 지불능력도 없는 운송사는 운임제를 지킬 가능성이 낮다”며 “안전운임제는 화주 입장에서도 비용의 예측 가능성을 보장하고 쟁의행위를 막아 산업을 안정화하는 효과가 클 것”이라고 강조했다.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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