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화물노동자 박원호(62)씨의 FH540 볼보트럭 차량에서 오류 메시지가 떠있다. <박원호씨 제공>

스웨덴 자동차 제조업체 볼보가 최근 출고한 화물 트럭·트랙터가 비가 오면 일부 기능이 정상 작동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볼보 공식 정비사업소는 해당 문제에 대해 “스웨덴에서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라는 답변을 내놨다.

“3억짜리 화물차에서 물이 뚝뚝”

지난해 6월22일 출고한 볼보 신형 트럭 FH540을 모는 부산 화물노동자 박원호(62)씨는 지난 1년간 차 문제로 마음이 편할 날이 없었다. 박씨가 구매한 트럭은 출고가가 3억3천858만원인 신형 화물차였다. 이런저런 할인을 받아 최종 구매가는 2억6천884만원에 부가세를 더해 3억원 가까운 돈을 지불했다. 4년 전보다 가격이 무려 1억원 가까이 올랐는데 운전자 안전을 위해 각종 기능이 추가됐다는 이유 때문이다.

새 차를 구매했다는 기쁨도 잠시 차량 출고 직후부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천장에서 비가 새는 일은 예사였다. 비가 조금이라도 오는 날에는 일부 기능이 작동하지 않았다. 이어 계기판에 기능이 오작동한다는 경고 메시지가 반복됐다. 오류가 난 기능은 차선을 넘지 않도록 도와주는 좌우측 레이더와 전방추돌장치, 무시동 에어컨, 차선이탈시 핸들제어 장치 같은 운전자 안전과 긴밀한 것들이었다.

곧장 부산 정비사업소를 찾은 박씨는 사업소 관계자에게서 뜻밖의 답을 들었다. 스웨덴 현지에서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라 오류를 완전히 잡아내려면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었다. 시동을 켜지 않고 에어컨을 작동하는 무시동 에어컨 기능은 차 퓨즈박스를 열어 전선을 수동으로 연결해 보라는 조언도 함께였다. 차를 구입할 당시에는 전혀 듣지 못한 안내였다.

출고일부터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박씨는 볼보트럭코리아의 책임 있는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하루 일을 포기하고 정비사업소를 수없이 찾았지만 오류는 1년 전과 똑같다. 최근 무상수리 보증기간 1년이 만료되면서 박씨는 더욱 초조하다. 그는 “볼보가 이걸 알면서도 차량을 계속 출고하고 있다는 건 큰 문제라고 본다”며 “화물노동자를 상대로 사기친 것이나 다름없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얼마든지 구현 가능한 일반 기술인데 오류”

7일 <매일노동뉴스> 취재 결과 볼보 신형 화물차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박씨 차량에서만 나타나는 문제가 아니었다. 경남 진해에서 사는 화물노동자 권영민(50)씨는 지난해 3월 신형 볼보 트랙터 FH500모델을 구매했다. 권씨의 차 역시 박원호씨 차량 같이 좌우 레이더, 무시동 에어컨 등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 비가 올 때 천장에서 누수현상이 발생하는 것도 같았다. 권씨는 “작은 보슬비만 내려도 오작동이 날 정도”라며 “우리 안전을 위해 비싼 돈을 지불하고 산 건데 비오는 날 아무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 아니냐”고 반문했다. 권씨 역시 볼보 정비소를 찾았으나 수리가 되지 않았다. 권씨가 지불한 차량 값은 2억1천여만원. 매달 지불하는 할부가 만만치 않아 정비소를 찾는 일도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권씨는 “볼보 고객들은 자기 차량만의 결함인 줄 알고 수리 받으면 될 것이라 기대하거나 혹은 수리조차 쉽지 않은 상황에 놓여 있을 것”이라며 “차값에 비하면 얼토당토 않은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진해 화물노동자 권영민(50)씨의 FH500 볼보트랙터 차량에서 오류 메시지가 떠있다. <권영민씨 제공>
진해 화물노동자 권영민(50)씨의 FH500 볼보트랙터 차량에서 오류 메시지가 떠있다. <권영민씨 제공>

볼보 화물차에서 나타나는 문제는 무엇 때문일까. 오류가 난 기능들이 현재 구현이 쉽지 않은 고난이도 기술이라서일까. 자동차 전문가들은 “그렇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임경채 호원대 교수(미래자동차공학)는 “무시동 에어컨 같은 경우 작은 트럭에도 보급될 정도로 일반적인 기술이고 차선이탈 핸들제어 장치도 나온 지 10년은 된 기능”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볼보는 우리나라 수입 상용차 시장에서 점유율 1위다. 협회는 6개 브랜드사의 상용차 신규등록 통계를 매달 공개하는데 지난 1월부터 5월까지 볼보는 최저 31.3~최대 40.6%의 비중으로, 6개 수입 상용차 브랜드 중 압도적이다. 매달 평균 150대 수준의 상용차가 신규 등록된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선 출고 후 정비’에도 우려를 표했다. 최용식 자동차정비 명장은 “국내 제조사들은 소프트웨어가 개발되지 않은 시스템에 대해서 (차량을)출시하지 않는다”며 “미리 사용해 보고 검증을 거쳐 (기능이) 장착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매일노동뉴스>와 인터뷰한 화물노동자들은 볼보사가 차량 결함을 공개하고 사과와 보상 등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화물노동자 입장에서는 하루 일감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에 정비소를 자주 드나들기도 쉽지 않다. 또 일정 기간 차를 타다 중고차로 매매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기 때문에 차량 문제에 대해 공론화하는 일을 꺼린다. 따라서 제조사인 볼보가 프로그램 미개발 등을 이유로 화물차에서 오류가 발생하는 문제를 알고 있다면 해당 옵션에 대해 환급하든지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해결 방안을 약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볼보트럭코리아 “프로그램 최적화 통해 개선 중”

이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이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매일노동뉴스>는 지난달 28일 볼보트럭코리아에 △볼보 트럭·트랙터에서 발생하는 오류를 인지하고 있는지 △차량 결함 원인이 프로그램 미개발 때문인지 △오류를 안내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신차를 출고해도 되는지에 대해 물었다.

볼보트럭코리아는 지난 4일 “문제된 차량에 대해 개선소프트웨어를 설치했다”며 “계기판 오류 메시지 빈도수가 현저하게 감소했다”고 답했다. 오류가 개선됐다는 의미다. 하지만 5일 박원호씨는 <매일노동뉴스>와 통화에서 “볼보측 답변과 달리 오류는 전혀 개선되지 않았고 최근 며칠 작은 가랑비에도 오류 메시지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볼보측 답변을 이해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볼보트럭코리아는 프로그램이 개발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관련 소프트웨어를 개선 중이라고 밝혔다. 사실상 일부 차량에서만 나타나는, 운전자로 인해 발생한 결함이 아닌 제조·출고 과정에서 발생한 차량 결함이라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볼보트럭코리아 관계자는 “해당 상황은 관련 장치의 구동소프트웨어 최적화를 통해 개선 중인 사안으로 출고시 운행프로그램이 개발되지 않아 차량 일부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고도 답했다. 이어 “차량 신차 출고시 구동프로그램을 가장 최신으로 업데이트해 출고 중이며 출고 이후 개선된 프로그램이 있을 경우 볼보트럭 정비사업소를 방문하면 최적화된 프로그램으로 추가 업데이트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또 “사이드 레이더 작동 및 무시동 에어컨 관련 개선 사항 확인시 가능한 신속하게 적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임경채 교수는 “비가 올 때 그런 문제가 반복된다는 건 방수와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샤워 테스트라고 해서 차량 사방에서 물줄기를 뿌리는 방수 테스트를 하는데 방수가 안 돼 에러가 반복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볼보측 답변은 사실상 프로그램 미개발과 다르지 않은 말로 들리고 글로벌 기업으로서 문제가 있다고 본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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