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우리나라가 국제노동권지수 최하위 등급을 받았다. 2014년 관련 지표가 처음 발표된 이후 11년 연속 5등급이다.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에 대한 정부와 사용자 위반사례를 조사해 169개국을 대상으로 등급을 매기는데 공교롭게도 우리나라는 현재 열리고 있는 ILO 총회에서 의장국으로 단독 추천됐다.

13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국제노총(ITUC)은 12일 글로벌 권리지수 보고서를 발표하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38개국을 5등급으로 분류했다. 5등급은 법·제도적으로 노동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수준이라는 의미다. 한국과 같은 등급을 받은 나라는 중국·온두라스·이라크·러시아·베네수엘라·짐바브웨 등이다. 우리가 속한 아태지역 평균 등급은 4.13등급으로, 한국의 노동권지수는 아태지역 평균보다도 하회한다.

국제노동권지수 최하위 등급인데
이정식 장관 “ILO 협약 이행·노동개혁 국제 인정” 자평

국제노동권지수가 공개된 12일 공교롭게도 ILO 총회에서 한국이 차기 의장국으로 사실상 내정돼 대조를 이뤘다. 총회에 참석 중인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ILO가 추구하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노동기본권을 신장시키고 사회적 대화를 활성화한 부분을 보여준 결과”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변이 없는 한 총회가 끝나는 15일부터 의장국으로 활동한다.

우리나라는 2021년 4월20일 ILO 기본협약 가운데 29호(강제노동 금지)·87호(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 협약)·98호(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협약)을 비준해 이듬해 4월20일부터 발효했다.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지닌다.

이 장관은 “기본협약 비준에 맞춰 노동관계법을 바꿨고 이후 (윤석열 정권에서) 후속조치로 약자 보호와 사회적 대화, 노동개혁을 추진한 것에 대한 국제적 인정”이라며 “노동기본권 신장과 사회적 대화 활성화 등을 구체적으로 보여줬고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정과 기대가 종합해 이런 성과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이병훈 중앙대 명예교수(사회학)는 “국제기구에 대한 국가적 위상이 높아진 점은 환영할 일이나 윤석열 정부 들어 추진한 노동정책이 의장국 선출에 걸맞은 성취를 보여줬는지 의문”이라며 “도리어 노동기본권 확대나 산업재해 같은 대목에서 후진국에 머물러 있는데 앞으로라도 걸맞은 활동을 하길 바라나 기대감이 크진 않다”고 말했다.

양회동 지대장 분신 등 노정관계 파탄에
국제노동계도 우려와 비판

이정식 장관 평가와 달리 노정관계는 윤석열 정권 들어 평행선을 긋고 있다. 취임 첫해인 2022년 화물노동자 대규모 파업과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사내하청지회 파업으로 갈등을 빚었고 지난해에는 건설노조를 ‘건폭(건설폭력배)’으로 몰아 대규모 구속과 수사에 나서면서 윤석열 정권 퇴진운동까지 벌어졌다. 이후에도 노조회계 공시와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갈등 등으로 노정관계가 경색됐다. 사회적 대화 역시 포스코 하청노동자 교섭을 지원하던 김준영 금속노련 위원장을 곤봉으로 구타해 구속한 것을 계기로 한국노총이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 중단을 선언하는 등 굽이쳤다. ILO는 지난해 11월 우리나라에 87호·98호 협약에 대한 이행 검토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지현 한국노총 대변인은 “차기 ILO 이사회 의장국의 부끄러운 이면”이라며 “1등급은 바라지도 않는다. 5등급을 벗어나기 위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 등을 통해 적어도 노동탄압으로 죽는 사람은 없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전했다.

특히 건설노조를 향한 수사는 국제노동권지수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보고서에서 국제노총은 “한국정부는 계속해서 노조를 표적으로 삼아 공권력을 불법적으로 이용하고 노조활동을 범죄화했다”며 “시위는 경찰에 의해 방해받았고 참여자들은 폭행을 당했다”고 지적했다.

고 양 3지대장의 분신은 자세히 소개됐다. 보고서는 “양 3지대장은 노조탄압 피해자 중 한 명으로 그 괴롭힘으로 인해 슬프게도 세상을 떠났다”며 “윤석열 정부에서 경찰은 정상적인 노조활동을 하는 간부와 회원 950명을 소환해 조사했다”고 지적했다.

양대 노총 “자화자찬 볼썽사납다”

노동계는 정부의 자화자찬을 경계했다. 한국노총은 “의장국 선출을 비하할 것도 아니나 지나치게 의미를 부풀리는 것도 볼썽사납다”며 “윤석열 정부 들어 사회적 대화가 파탄나고 노사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은 게 불과 얼마 전인데 대한민국이 ILO 이사회 의장국이라는 위상과 명예에 부끄러운 수준이 아닌지 돌아보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 등 노동기본권을 바로 세우라”고 촉구했다.

민주노총도 관례적 선출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은 “지역별로 돌아가며 의장직을 맡는데 이번 차례는 아태지역 상임이사국인 일본·중국·인도를 제외한 한국(동아시아태평양)·부르나이(동남아시아)·방글라데시(서아시아)·오만(중동) 중 한국이 맡은 것”이라며 “노동약자와 미래세대를 위한다는 말로 도리어 노조를 탄압하는 이중적 행태를 멈추고 노동자 시민의 생명과 삶의 보호가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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