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정부가 공공기관의 민간경합·비핵심·수요 감소 기능을 축소·조정하겠다고 밝혔다. 민영화를 시사한 셈이지만 여전히 인위적 구조조정이나 민영화는 아니라고 잡아뗐다. 다만 정규직 전환 자회사는 조정 대상에서 제외했다.

31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기획재정부가 지난 29일 발표한 새정부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은 민영화는 없다는 정부 관계자의 지속적인 발언에도 여전히 민영화 요소가 강한 구조조정안이다.

기재부는 공공기관 혁신 추진방향으로 기능, 조직·인력, 예산, 자산, 복리후생 5대 분야를 중점 효율화할 계획이다. 이 가운데 기능 분야에서는 민간·지방자치단체 경합 기능을 축소하고, 비핵심·수요 감소 기능과 기관 간 유사·중복기능을 축소하는 게 뼈대다.

민간과의 경쟁력 따지면서
공공성 평가는 나 몰라라

민간경합 기능 축소는 일종의 민영화를 고려한 조치다. 기재부는 “당초 독점적 공공서비스를 제공했으나 민간부문의 성장으로 민간과 경합하는 기능을 축소”한다고 밝혔다. 이를테면 한국전력공사의 전력판매 같은 기능도 독점적 공공서비스에서 민간전력시장의 활성화로 공공과 민간이 경합하고 있으니 축소 대상이 되는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20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전력도매계약 확대를 통한 한전의 기능 축소를 강조해 왔다.

가이드라인에서 기재부는 숙박시설 운영, 민간이 수행 가능한 검사·인증사업, 지식재산 평가 같은 기능을 민간경합 기능이라며 예시로 제시했다. 기재부는 민간경합성을 공공기관이 스스로 점검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민간경합성 점검 체크리스트도 제시했다. 살펴보면 △제공하고자 하는 재화·서비스를 대상으로 경쟁성 도입이 가능한지 △시장에 해당 재화·서비스 공급 능력과 민간 경쟁업체가 있는지 △공공기관이 공급할 경우 민간에 비해 경쟁력 있는 요소가 있는지다. 해당 서비스가 공공부문이 공급할 필요성이 있는지는 따지지 않는다.

지자체가 공공기관에 위탁한 업무도 폐지하거나 축소하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예시로 든 게 지방하천 수질관리 업무와 지역 활성화를 위한 시가지 조성, 낙후지역 개발 같은 업무다. 애초에 지자체가 해당 업무를 시행하기 어렵거나 비효율적이라서 위탁한 업무인데도 다시 지자체로 이관하라는 것이다. 사실상 지자체 차원의 민간위탁을 활성화하는 우회로를 마련하는 셈이다.

이 밖에도 기재부는 시장수요와 정책방향 전환으로 기능수행 필요성이 감소한 조직과 인력도 축소하라며 △대단위 간척지 조성 △저축은행 부실자산 회수 △일자리안정자금 운영 등을 예시로 꼽았다.

“문재인 정부서 인력·부채 늘어”
사내대출 규제 앞장선 추경호 부총리

기재부는 이런 구조조정의 명분으로 문재인 정부 시절 공공기관 인력과 부채가 늘고 생산성은 감소했다는 이유를 꼽았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29일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서 구조조정안을 발표하면서 공공기관 인력이 2017년 5월 33만4천명에서 올해 5월 44만9천명으로 11만5천명 증가한 새 부채는 2016년 말 499조4천억원에서 지난해 말 583조원으로 83조6천억원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또 2017년 13조5천억원이던 공기업 영엽이익은 지난해 7천억원으로 대폭 감소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6월17일부터 24일까지 한국리서치를 통해 공공기관 인식조사를 한 결과 일반 국민 절반 이상(63.8%)이 방만경영이 심각하다고 느꼈고 강도 높은 개혁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71.8%)고 밝혔다.

정부는 공공기관이 고교 무상교육과 영유아 무상보육 시행 이후에도 교육비와 보육비를 지급하고, 해외파견(영어권) 자녀 학자금이나 사택 관리비를 지급하는 등 과도한 복리후생 제도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민의 상대적 박탈감을 부추기는 모습이다.

핵심은 사내대출이다. 각 공공기관이 낮게는 2%대의 저리로 사내대출 제도를 운영하는 것을 지목한 것이다. 추경호 부총리는 의원 시절인 지난해 7월 공공기관 340곳 중 60곳이 사내대출 제도를 운영하고 대출 잔치를 벌였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이후 기재부가 공공기관운영위를 통해 사내대출을 옥죄는 지침을 마련하면서 노동계와 갈등이 커졌다. 한국노총 공공부문노조협의회는 지난해 10월 기재부가 갑자기 마련한 사내대출 관련 규제지침은 행정권 남용이라며 행정소송을 제기하고 기재부의 공공기관 관련 지침에 대해 헌법소원까지 청구한 상태다. 최근에는 공공운수노조와 한공노협이 각각 국제노동기구(ILO)에 기재부의 공공기관 노사 관계 개입을 문제 삼아 제소까지 했다.

고용불안에 떨었던 공무직, 한숨 돌리나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위해 설립한 자회사는 출자회사 정리 대상에서 제외됐다. 기재부는 핵심업무와 무관하거나 부실한 출자회사 지분 정비를 요구하면서 판단 기준으로 기관의 설립근거 법령 또는 정관상 기능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공공기관으로 지정된 출자회사와 정규직 전환 자회사는 정비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에 따라 설립한 정규직 전환 자회사는 윤 대통령이 대통령직 인수위 시절 110개 국정과제를 설계하면서 줄곧 공공부문 구조조정과 출자회사 정리를 강조해 자칫 사라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컸다. 그러나 이번에 정비대상 제외 회사로 못 박으면서 한시름 덜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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