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차기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원자력발전 확대와 한국전력공사 민영화로 드러나면서 반발이 거세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한전 민영화는 아니라고 반박했지만 공기업 분할 매각 방식이 아니라 시장개방 방식의 민영화 추진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다만 재생에너지 산업 발전을 위해 문재인 정부도 전력구매계약(PPA) 범위를 확대한 만큼 유사성이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인수위는 지난달 28일 에너지정책 정상화를 위한 5대 정책방향을 발표했다. 우선 탄소중립은 시간표 변화 없이 추진한다. 다만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재개하고 원전의 계속 운전과 이용률 조정을 통해 2030년 원전발전 비중을 상향하는 게 뼈대다. 재생에너지는 주민수용성과 경제성, 국내 재생에너지 산업생태계를 고려해 보급을 추진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석탄·액화천연가스(LNG) 발전 감축도 큰 틀에서 조정은 없을 전망이다. 대선 기간 동안 지속해서 주장한 원전 중심의 탄소중립을 선언한 셈이다.

석탄·LNG·수소·원자력발전
민간 도매업자 허용 시사

문제는 시장을 기반으로 수요를 효율화하겠다며 내건 정책이다. 인수위는 산업부문은 온실가스 감축 기술개발 속도와 소요비용, 적용 가능성을 고려해 감축 시나리오를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2030년과 2050년 큰 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는 변하지 않더라도 구체적인 실행계획에서는 속도조절이 이뤄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와 함께 논란이 되는 게 전력구매계약 허용범위 확대다. 전력구매계약은 발전 5사를 비롯한 발전사업자와 재생에너지사업자 같은 공급자가 실제 수요자인 기업과 고객에게 전력을 파는 구조다. 현행은 한전이 전량을 매수해 기업과 고객에 공급하는 체계다. 최근 재생에너지시장 활성화를 위해 재생에너지 공급자는 한전을 거치지 않고 기업에 재생에너지를 팔 수 있도록 한 전기사업법 개정안이 통과해 시행 중이다. 인수위는 이 범위를 더욱 확대해 석탄·LNG·수소·원자력 같은 에너지원별 공급자가 직접 소비자와 만날 수 있도록 시장장벽을 허물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민간 전기 도매업자가 나타날 전망이다. 한전을 쪼개지 않고도 시장 자체를 허물어 민영화하는 방식으로, 은밀한 민영화 수법 중 하나로 간주된다. 앞서 정부는 2001년 한국가스공사를 민영화하려다 실패하자 LNG 직수입 권한을 재벌기업에 허용하면서 시장을 민영화한 사례도 있다.

전기요금 ‘원가주의’ 강조, 민간사업 수익 걱정?

인수위는 또 전기요금을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올해도 한전의 대규모 적자가 예고된 가운데 전기요금 인상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많지만, 앞선 민영화 계획과 묶어서 해석하면 시장사업자가 수익구조를 만들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도로도 읽힌다. 구준모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기획실장은 “인수위는 원가주의를 원칙으로 요금을 인상하겠다고 했는데 결국 민자 발전사 지원 구조를 만들겠다는 이야기”라며 “이번 발표는 정상화라는 탈을 쓴 민영화 계획”이라고 비판했다.

다만 일부 반론은 있다. 현재 한전의 독점적인 에너지 조달 방식으로는 재생에너지 발전에 제약이 있으므로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서는 전력구매계약 확대가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재생에너지 사용량을 늘리는 RE100(Renewable Electricity 100%)을 확산하면서 재생에너지에 좀 더 높은 요금을 내는 그린 프라이싱을 정착하려면 전력구매계약 확대가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력구매계약 확대를 일부 좋게 해석할 수 있더라도 원전 확대 같은 내용으로 점철된 차기 정부 에너지 정책에 대한 환경단체의 입장은 싸늘하다.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은 “탄소중립에 대한 고민이나 줄기가 없는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와 안철수 인수위원장의 근거 없는 원전 사랑만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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