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조선소에서 같이 일했던 분한테서 며칠 전에 연락이 왔어요. 다시 올 생각이 없느냐고. ‘눈에 흙이 들어가면 간다’고 이야기했어요.”

정진한(47·가명)씨는 스무 살 초반 조선소에서 용접 일을 배웠다. 15년 넘는 세월 동안 거제와 울산을 오가며 일했다. 기술은 쌓였고 2012년 당시 그는 하루 품삯으로 13만3천원을 손에 쥐었다. 당시 최저시급 4천580원에 비하면 ‘괜찮은 수준’이었지만 그해 그는 조선소를 떠났다. 정씨는 현재 고향인 경북 포항에서 건설플랜트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임금이 올라도 현재로서는 다시 조선소로 갈 생각이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2016년 수주절벽 이후 침체됐던 조선업이 되살아나고 있다. 현장에서는 즐거운 비명이 나올 법한데 한숨이 깊다. 인력난 탓이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는 올해 9월이면 지난해 대비 9천509명의 노동자가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지만 인력을 끌어들일 유인책은 없다. 이대로면 생산차질은 불가피하다. 조선소를 떠난 노동자는 왜 돌아오지 않을까. 6일 <매일노동뉴스>가 한국 조선업이 처한 상황을 살펴봤다.

“동료 죽음에 떠날 생각”

정진한씨를 조선소에서 떠나게 한 것은 동료의 죽음이었다.

“같이 일하는 동료가 사고로 다치는 모습을 많이 봤어요. 생활이 안 될 정도로 다친 분도 있었고, 사망한 분들도 있고…. 내가 실수를 하지 않아도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는 걸 보며 ‘아 이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조선소와 산업재해는 한 몸처럼 붙어다닌다. 조선업 중대산업재해 국민참여 조사위원회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7년 9월까지 10년 동안 조선업에서 1만6천343명이 떨어지고, 넘어지고, 물체에 맞아 재해를 당했다. 매일 22명의 노동자가 업무 중 재해를 입는 것이다. 정씨는 “조금이라도 더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겠다 싶어서 찾은 곳이 건설플랜트”라고 말했다. 고향이 포항인 터라 정착이 수월했다.

플랜트업계에서 10년째 일하는 정씨의 일당은 16만7천원이다. 그의 임금은 플랜트업계에 종사하는 기능공 중 낮은 축이다. 서효종 건설플랜트노조 포항지부 노동안전보건국장은 “포항은 (임금이) 적은 편이고 울산·여수·충남·대산 석유화학단지에서 일하면 20만원의 일당이 보장된다”며 “보통 플랜트 노동자들은 하루 8시간 근무 기준으로, 연장근로수당이 지급된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조선소 노동자에게 이 같은 근무조건은 그림의 떡이다. 2016년 수주절벽과 함께 찾아 온 조선업의 위기는 대규모 실업과 함께 노동자 처우 하락을 가져 왔다. 피해는 하청노동자에 집중됐다. 2015년 13만명이 넘던 하청노동자는 2020년 5만4천명으로 동강이 났고, 임금 30%가량이 삭감됐다.

노동강도가 세고 사고위험도 높은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버틸 유인이 없는 셈이다.

2016년 수주 절벽에
하청노동자 임금은 수직하락

2018년 조선업에서 건설플랜트쪽으로 옮겨 간 한서정(40·가명)씨는 “조선소 오면 돈 많이 번다고 하는데 막상 가 보니 일은 고되고 생각보다 돈은 안 되니 떠나는 이들이 많았다”며 “노동강도에 비해 임금 자체가 떨어진다”고 귀띔했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가 “이대로 살 수 없지 않느냐”며 한 달 넘게 파업을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2016년 7월 대우조선해양 ㄷ하청업체의 ‘사내협력사 임금체계 개편 추진 설명회’ 자료를 보면 사내 하청업체들은 당시 1년 이상 근속노동자에게 매년 지급하던 상여금 550% 중 300%는 2017년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기본시급 인상분에 산입하고, 명절상여금 100%는 지급하되 나머지 상여금 150%는 회사 정상화시까지 삭감을 추진하겠다고 계획을 세웠다. 그렇지만 이후 상여금 400%가 기본급에 산입되고, 상여금 150%가 삭감됐다.

한 달 넘게 파업을 하는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가 사내협력사협의회 대표단에 임금 30% 인상을 주장하는 배경이다. 요구안에는 일당 지급 기준시간을 1일 8시간으로 할 것과 근로기준법에 따라 초과노동한 만큼 연장노동수당을 지급하라는 요구도 담겼다.

이김춘택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사무장은 “시급제 노동자들의 경우 대부분 업체에서 설·추석·여름휴가 때 20만원씩 받는다”며 “하지만 취업규칙에 규정돼 있는 것이 아니라 사장이 못 주겠다고 하면 그만”이라고 설명했다. 일당직은 상여금이 없다. 임금이 높은 축에 속하는 파워공의 일당은 하루 17만원 정도다.

협력업체 인력난에 조금씩 오르는 임금
업체 간 출혈경쟁도

현장에서는 인력난이 현실화하고 있다. 전남 영암군 대불공단에 위치한 삼호중공업에는 인력난에 하청업체가 일감을 반납하는 상황이 생기고 있다. A조선사 관계자는 “전남 영암의 경우 인구고령화가 심각하고, 인구감소 속도도 빠르다 보니 지역 협력사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력난은 갈수록 심해질 공산이 크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는 내국인이 기피하는 기능직(용접·전기·도장·비계 등) 인력이 올해 9월에는 지난해 대비 9천509명 부족하고, 내년 6월에는 1만1천99명 부족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임금은 깍였던 만큼을 회복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오름세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공정마다 다른데 협력업체 기성단가는 매년 평균 3.3% 올랐다”며 “협력업체는 5.5~7% 인상했다”고 설명했다.

윤용진 노조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사무장은 “(최근 현장에) 시급제 본공이 줄고 물량팀이나 단기업체로 가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시급제 본공은 시간당 임금을 받는 협력업체 정규직을 뜻한다. 물량팀보다 고용이 안정적이지만 임금이 적다. 노동자들이 인력 수요가 넘치는 상황에서 고용안정 대신 고임금을 택하는 것이다. 지회는 하청노동자들의 시급은 1천원, 일당은 5천~1만원가량 오른 것으로 보고 있다.

인력난에 업체 간 출혈경쟁도 벌어진다. 새로 유입되는 인력이 없으니 협력업체 사이에 임금을 더 주고 인력을 빼 가는 일이 일어난다. 윤 사무장은 “올해 봄쯤에는 현대중공업에서 협력업체에 어떻게든 사람을 구하라고 하는 바람에 일당이 20만원을 넘기도 했다”며 “협력업체 간 출혈경쟁이 심해지니 다시 임금을 낮추라고 했고 현재는 17만~18만원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조선업 인식 개선 시급해” 한목소리

인력난에도 급격한 임금인상은 당분간 쉽지 않아 보인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이익이 남고 순이익이 발생하면 당연히 그 이익을 나눠야겠지만, 지난해 1조2천억원의 적자가 났고 상반기에도 4천600억의 적자가 났다”며 “수주가 잘 되고 있지만 내년부터 배가 만들어지고, 내년 말이나 돼야 영업이익이 날 수 있다고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최근 원자잿값이 급상승했다”며 “배를 만드는 기본 원자재인 철판이 톤당 70만원에서 120만~130만원 수준으로 상승했다”고 덧붙였다. 배는 수주 후 설계 작업을 거쳐 1년 뒤에야 건조에 들어가는데, 상승한 원자잿값을 반영해 오른 선가로 수주한 배는 내년에야 생산된다.

이은창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실적이 개선된 뒤 임금을 올려주는 기반이 조성될 것이라고 보는데, 임금을 안 올려주면 일을 못하겠다는 사람이 늘고 있어서 조선소도 적자를 보며 임금을 조금씩 올려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지 않을까 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숙련공이 부족한 상황이라서 정부는 외국인 노동자를 확대했는데 장기적으로 보면 우수인력을 지킬 수 있는 적절한 제도개선이나 조선업 인식 개선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종식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현재 한국 조선업은 임금 및 전반적 근무환경이 열악하다”며 “노사가 임금을 포함해 전반적인 업무환경 개선을 통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 부연구위원은 “작업환경이나 작업장 문화 개선 없이는 외국인 노동자가 들어와도 오래 버티기 힘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업계 스스로 해야 할 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이미지 개선”이라며 “산업 패러다임이 스마트화·친환경쪽으로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조선업도 전통적인 이미지를 벗어나 정보기술을 통해 진화하고 작업환경도 안전하게 일하는 있다는 방향으로 이미지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기능인력 부족 문제가 나타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기술력도 분명 문제가 될 것”이라며 “친환경이나 스마트화가 가미된 첨단선박으로의 전환에 대응해 설계나 연구개발하는 기술인력을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