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우조선해양을 지키는 모임’ 카카오톡 단체대화방 갈무리

“하퀴벌레들아. 우리는 그래도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대학교 자본주의 교육을 받았고 공정 공평하게 선의에(선의의) 경쟁을 통해서 DSME(대우조선해양) 입사를 했단다. (…) 현재 불법파업은(으로) 우리 회사를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떨어뜨리고) 있는 것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여기 모인 것이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 22일째던 지난달 23일 카카오톡 익명 단체대화방 ‘대우조선해양을 지키는 모임’에 올라온 글의 일부다. 이 방은 같은달 18일 하청노동자 파업에 반대하기 위해 개설됐는데 하청노동자를 바퀴벌레와 결합해 ‘하퀴벌레’로 부르는 글이 여럿 게시됐다.

최초 여론을 주도한 쪽은 원청 직반장(현장 관리직)과 협력업체 관리직으로 추정되지만 파업이 길어지자 많은 정규직들이 파업 반대 여론에 동조하는 모양새다. 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가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의 파업을 지지하자 금속노조 탈퇴 목소리도 나온다.

87년 이후 일터에서 차별을 없애기 위해 이어진 비정규직의 노동기본권 보호운동에 균열이 가고 의식의 보수화가 심화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금속노조 탈퇴 여론도”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은 지난달 3일 임금인상 30%를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같은달 22일부터는 유최안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1도크에서 건조 중인 대형 원유운반선(VLCC) 5495호선 바닥에 가로·세로·높이 각 1미터의 철 구조물 안에 몸을 가두고 농성 중이다. 두 팔과 두 발을 뻗을 수도 없는 공간에서 2주 넘게 버티고 있지만 정규직으로 추정되는 이들의 발언은 저주에 가깝다. 단체대화방에는 “도크장에 물 채우자” “이번에 하퀴들 개별로 다 고소 진행해 주세요” 같은 말들이 오간다. 비극으로 끝난 2009년 쌍용차 옥쇄파업을 소환하며 하청노동자들에 압박을 가하자는 글도 있다.

불행히도 이 같은 현상이 일부 정규직 노동자의 일탈로만 보기 어렵다. 원청 정규직 노동자 A씨는 “과격한 발언을 하는 것은 일부가 의도적으로 하는 발언 같다”면서도 “생계와 직접 연결되다 보니 현장 여론은 좋지 않다”고 전했다. 점거농성이 길어지면서 내업쪽은 2주 전부터 특근과 잔업을 멈춘 상태고, 이날부터 전체 공정이 잔업·특근을 중단했다. 기본급보다 변동급 의존도가 높은 정규직 임금체계에 불리하다.

대우조선지회 집행부를 향한 원색적 비난을 넘어 상급단체에 대한 부정적 여론도 커지고 있다. 지회와 금속노조 모두 하청노동자 파업을 지지하고 있어서다. 지난 6일 일부 대의원들의 요청으로 지회는 이달 11일 ‘하청지회 문제 해결에 대한 대책건’으로 대의원대회를 연다. 지회쪽은 “아마 금속노조 탈퇴 이야기도 나올 듯하다”고 전했다. 지난해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 문제를 막지 못한 정규직 노조 집행부가 조합원 76%의 동의로 탄핵된 사건을 연상하게 한다.

“개개인 불만 자극,
집단화하는 흐름 주목해야”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을 둘러싸고 나타나는 원·하청 노동자의 갈등의 본질은 2018년 일명 인국공 사태부터 최근 연세대 학생이 농성하는 청소노동자를 업무방해로 고소한 사건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10여년 전에는 비정규직 차별이나 고용불안 해소를 자기문제로 인식하고 불평등 해소에 대한 의견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시장경제 논리와 이해관계 중심으로 의견이 표출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자본가의 비용절감, 사용자성 회피 같은 구조적 원인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탈각하고 단체대화방에서 일탈적 글쓰기가 이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노동은 상품이 아니라며 1987년 이후 지속된 일터에서 차별과 배제를 벗어나기 위한 움직임들이, 의식의 보수화로 침탈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개개인의 불만을 자극하고 집단화하는 흐름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활동가는 “누구나 자신에게 손해가 오면 불만을 가질 수 있지만, 이 불만이 자극되고 집단화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며 “대우조선 같은 경우도 많은 노동자들은 불만이 있어도 참고 지나가지만 원청 직반장(현장 관리직)들이 사실상 구사대로 동원되면서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개개인의 문제로 환원하지 말고 결과적으로 회사가 이것을 통해 이득을 얻고 있다는 진실이 드러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엄재연 금속노조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회사측에서 1%밖에 안 되는 하청노동자가 대우조선해양을 위기로 몰고 있다고 여론몰이를 하고 조장하는 측면이 있다”며 “결국 소통이 필요해 보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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