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삼성전자에서 14년 동안 일한 노동자가 급성 백혈병에 걸려 숨진 지 8년 만에 산재를 인정받았지만, 근로복지공단이 상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반올림은 26일 “8년 동안 산재 인정만을 기다린 유족의 고통을 외면하고, 대법원에 상고를 제기한 근로복지공단을 규탄한다”고 비판했다.

사건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1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한 고인은 2015년 2월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고, 진단 10일 만에 숨을 거뒀다.

유족은 직업병을 의심했다. 영상사업부에 속해 평면TV 소프트웨어 개발 업무와 불량검사 작업을 수행한 고인은 100대가 넘는 대형 PDP·LCD TV가 둘러쌓인 곳에서 일하면서 극저주파자기장에 노출됐다. 제품을 섭씨 50도 이상 가열하는 고온테스트 설비에 들어가는 작업도 했다 . 유족은 이 과정에서 포름알데히드에 노출됐을 것으로 봤다. 반올림은 “포름알데히드와 백혈병의 의학적 관련성은 명확하게 밝혀졌고, 극저주파 자기장도 그 관련성을 인정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족은 2016년 5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했다. 2년여가 지난 2018년 5월 돌아온 공단의 답은 ‘불승인’이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현장조사를 한 결과 고인은 포름알데히드나 극저주파 자기장에 노출된 수준이 높지 않았고, 고인의 상병은 업무관련성이 낮다고 봤다.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서울행정법원의 판단도 공단과 같았다. 유족은 항소했고 지난달 20일 서울고등법원은 유족이 청구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 취소 소송에서 1심을 뒤짚고 산재를 인정하는 판결을 했다.

서울고법은 “극저주파 자기장 노출수준이 높을수록 백혈병 발병률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가 다수 보고됐다”며 “단 한 차례 이뤄진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측정결과가 해당 사업장에서 14년간 근무한 망인의 누적 노출 수준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라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이어 “과로와 스트레스가 백혈병 발병에 기여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판결했다.

고인이 숨진 지 8년 만의 산재 인정이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이 상고하면서 유족의 기다림은 더 길어지게 됐다.

고인의 아내는 “이번 판결은 저희 가족에게는 단순히 승소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정의가 실현될 수 있다는 희망의 증거였다”며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이 판결에 따르지 않고 상고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8년이라는 길고 긴 싸움 끝에 또다시 시작되는 불확실의 연속으로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며 “공단은 자신들이 존재하는 이유와 목적, 즉 일터에서 아프고 병들고 죽은 노동자를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라고 강조했다.

반올림은 “2007년 고 황유미 사건으로 시작된 삼성전자 노동자들의 업무상 질병 인정투쟁은 숱한 법정 싸움으로 이어졌지만, 공단이 고등법원의 패소 판결에 불복해 사건을 대법원까지 끌고 간 것은 처음있는 일”이라며 “공단의 판결 불복을 규탄한다”고 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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