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용노동부의 하반기 고용노동정책은 '고용 70% 로드맵'의 세부 추진계획 마련에 초점이 맞춰졌다. 정기훈 기자

임금체계 개편이 올해 하반기 정부 고용노동정책의 ‘태풍의 눈’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통상임금 산입범위 조정과 임금피크제 도입 여부를 둘러싼 노사정의 줄다리기가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은 2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열린 ‘2013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에서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된 하반기 고용노동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방 장관은 “고용률 제고는 국민행복의 전제조건이자 지속가능한 복지를 위한 성장-복지 선순환의 열쇠”라며 “하반기는 고용률 목표 달성을 위한 초석을 다지는 중요한 시기인 만큼 고용률 70% 로드맵을 철저히 이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간제 일자리 창출·확산=이달 4일 발표된 고용률 로드맵의 핵심은 시간제 일자리 확대다. 근무시간이 짧은 파트타임 일자리를 늘려 육아나 교육 등을 이유로 경제활동을 포기한 여성과 청년을 노동시장으로 불러내겠다는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올해 하반기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 확산을 위한 구체적인 추진계획을 마련한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공공기관을 중심으로 고용이 안정되고 근로조건이 좋은 상용형 시간제 일자리를 창출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7월 관계부처 협의체를 꾸려 내년부터 채용할 7급 이하 시간제 공무원에 대한 운용방안을 논의한다. 법률직·회계직·통역직·번역직 등 공공부문 시간제 적합직종 발굴에도 나선다. 시간제 채용실적은 각급 공공기관의 업무평가에 반영된다.

하지만 이 같은 정부 방침에 대해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노사·사회정책본부장은 “시간제 공무원을 별도로 뽑는 방식으로 해당 인원의 고용을 보장할 수는 있지만, 임금이 낮은 직군이 고착화하거나 해당 근로자들의 전일제 전환요구가 터져 나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배 본부장은 시간제 적합직종을 분리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특정 직무를 분리하는 방식이 아니라 모든 직군에서 ‘파트타임에서 풀타임으로’ 또는 ‘풀타임에서 파트타임으로’ 이동이 가능해야 진정한 의미의 양질의 일자리를 실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정부는 하반기 중으로 시간제근로자 보호 및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시간제법) 제정을 추진한다. 제정안에는 △근로시간 비례보호 원칙(전일제와 시간당 임금 같게) △초과근로 제한 △임신·육아, 교육훈련, 점진적 퇴직에 따른 근로시간단축 청구권 부여 △시간제 적합직종 지정·권고 등의 내용이 포함된다.

이명박 정부 당시 추진됐던 시간제법과 비슷한 내용이다. 당시 정부가 낸 법안은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가늠하는 핵심 지표인 ‘시간제의 전일제 전환’에 대해 추상적인 내용을 담는 데 그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 뒤 “열악한 비정규직만 양산할 것”이라는 노동계와 정치권의 비난에 부딪혀 법률 제정이 무산됐다.

◇임금체계 개편 본격화=노사정이 주목하는 핵심 의제는 임금체계 개편이다. 특히 통상임금 산입범위를 둘러싼 노사정 기싸움이 예상된다.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전국 100인 이상 사업장 9천580곳 중 135곳(1.41%)에서 통상임금 관련 소송이 진행 중이다. 기업 규모별로는 한국지엠이나 현대자동차 같은 대규모 사업장의 비중이 크다. 업종별로는 운수업(92곳·68.1%)과 제조업(34곳·25.2%)의 비율이 93.3%에 달한다. 노동부가 지방관서를 통해 파악한 노동조합 중심 소송건수가 이 정도이고, 개별소송은 집계조차 되지 않고 있다. 정기상여금까지 통상임금으로 본 대법원과 하급심의 판결이 잇따르는데도 청와대가 통상임금 제도를 손보겠다는 시그널을 보내면서 산업현장에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실제 노동부는 이달 21일 전문가들로 구성된 ‘임금제도개선위원회’를 발족하고 구체적인 논의에 들어갔다. 임종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가 위원장으로 참여하는 임금제도개선위는 통상임금 논란을 계기로 심각성이 부각된 우리나라의 복잡한 임금체계를 재점검하고, 2016년 정년 60세 시행에 맞춰 고령자의 고용안정을 위한 임금체계를 모색한다. 임금체계 간소화와 통상임금을 대체할 새로운 기준임금의 정립, 정년연장에 대비한 직무급제·임금피크제가 주요 의제로 다뤄질 전망이다.

임금제도개선위의 논의가 법·제도로 정비되기 위해서는 노사정 사회적 대화가 필수다. 하지만 노동계는 “통상임금은 판례를 따르고, 임금결정은 노사가 자율적으로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임금 문제에 있어 공세적 제스처를 취하기보다 수세적 대응이 유리하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반면 경영계는 “통상임금 판례를 변경하고, 임금체계는 성과연동형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년연장에 앞서 임금피크제 도입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집단적 노사관계 ‘실종’=노동부가 발표한 하반기 고용노동정책 방향에는 집단적 노사관계가 빠져 있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표방하며 반노조 정서를 드러낸 이명박 정부의 국정기조가 박근혜 정부로 이어져 고착화하는 모양새다.

노동부가 이날 밝힌 노사관계 정책의 기조는 ‘일자리를 위해 협력하는 노사관계’다. 지난달 30일 체결된 노사정 일자리 협약에 따라 60세 정년 연착륙과 근로시간단축, 임금체계 개편 등 후속논의를 추진한다. 이 중 "장시간 근로를 개선하고 탄력적 근로시간제도를 활성화하기 위해 노사정 협의를 거쳐 근로기준법 개정을 추진한다"는 대목이 눈에 띈다.

노동부는 근기법 개정안에서 휴일근로를 연장근로 한도에 포함하되, 기업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병행 추진할 방침이다. 예컨대 법 시행시기를 2015년 또는 2016년으로 유예하고, 기업규모별로 단계적으로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이어 연장근로 12시간과 휴일근로 16시간까지 가능한 근기법을 바꿔 ‘연장근로 12시간(휴일 포함)+예외적 연장근로 8시간’까지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이와 함께 노동부는 다음달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 노사정 합동점검단을 설치해 일자리 협약 이행상황을 점검한다. 또한 다음달부터 적용되는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개정 고시가 산업현장에 안착할 수 있도록 지도를 강화할 방침이다.

반면 노동부는 해를 넘겨 가며 계속되는 노사분규에 대한 해결책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이날로 431일째로 접어든 사무금융노조 골든브릿지투자증권지부의 파업을 비롯해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339일)와 KEC지회(36일), 공공운수노조 삼성종합물류지회(22일)의 파업이 노사갈등을 동반하며 장기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나 사업장 구조조정 문제가 배경이 된 현대차 사내하청 철탑농성(253일째)과 재능교육 학습지교사 종탑농성(142일째), 보건의료노조 진주의료원지부 본관농성(35일째)도 이어지고 있다. 노동부는 노사교섭을 중재해 달라는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의 요구에 대해서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이에 대해 노동계 관계자는 “정부는 노사갈등에 대한 합리적 조정자 역할을 방기한 채 노동계를 정책 추진수단으로 이용할 생각만 하고 있다”며 “지금의 상태가 계속되면 정부는 각종 정책에서 추진동력을 잃고, 더욱 심각한 갈등국면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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