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진
전국불안정
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박근혜 정부는 고용률 70%를 달성하기 위해 일자리 협약을 체결했다. 민주노총이 빠진 상태에서 진행된 노사정 협약이고, 내용에서도 기업이 성장해야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허구적인 논리에 바탕하고 있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단시간 일자리의 확대’다. 고용률 70%를 달성하기 위해 늘리는 일자리 중 93만개를 시간제 일자리로 만들겠다고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반듯한 시간제 일자리’, 즉 고용불안정도 없고 차별도 없는 정규직 시간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제 일자리가 과연 반듯할 수 있을까.

시간제 일자리는 “여성은 생계부양자가 아니며, 돈도 벌고 아이도 키우고 집안일도 해야 한다”는 논리에 기초해 있다. 보육의 책임을 여성에게 떠넘기고 나서 그 여성에게 일과 가정 둘 다를 지키기 위해 시간제로 일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이다. 설령 시간제 일자리가 안정적이라고 하더라도 시간에 비례해서 임금을 받을 수밖에 없으므로 여전히 저임금 일자리일 수밖에 없다.

대다수 노동자들은 고용이 불안정하고 저임금 상태에 놓여 있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일하지 않으면 생계가 불가능하다. 여성이거나 노인이거나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저임금 불안정노동이 양산되면 그 누구도 안정적인 생계를 보장받기 어렵다.

시간제 일자리가 안정적인 일자리라고 하더라도 문제가 많은데, 사실 시간제 일자리는 안정적인 일자리일 수 없다. 2012년 고용노동부 통계에 의하면 시간제 노동자들의 시간당 임금총액은 전체 노동자의 60%에 불과하다. 4대 보험 중 고용보험·건강보험·국민연금 가입률은 30%대다. 시간제 노동자들 중에 임시·일용직인 노동자가 92.3%이다. 시간제라고 해도 대다수가 기간제이고, 임금과 노동조건이 불안정하며 4대 보험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일하는 것이다. 안정된 일자리라고 이야기하는 상용직 시간제 비중은 7.7%에 불과하다.

정부에서는 이후 시간제 일자리를 안정적으로 만들고 차별도 없앤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제 일자리가 지금처럼 차별받는 일자리가 된 것은 필연이다. 공공부문의 경우 총액인건비제도로 임금총액을 묶어 두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공기관과 지자체들은 시간제 노동자들을 고용하더라도 임금총액이 올라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시간제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떨어뜨린다. 이미 정부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했다고 주장하는 공공부문 무기계약직도 차별적인 임금과 노동조건에 시달리고 있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볼 때 시간제 노동자들을 상용직으로 전환시키더라도 무기계약직처럼 불안정한 구조가 될 것이다. 민간기업의 시간제도 노동자의 필요가 아니라 교대근무 등 기업의 필요로 만들어진 일자리이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권리가 지켜지기 어렵다.

시간제 일자리가 좋은 일자리가 될 수 없는 이유는 또 있다. 정부는 공공부문에서 단시간 제도를 확대하기 위해 ‘시간제 적합 직무’를 개발하겠다고 한다. 이미 단시간 적합직무라는 이름으로 주로 부수적이고 비핵심적인 업무라고 주장하는 업무를 단시간 직무로 만들어 내고 있다. 시간제 노동자들의 직무가 단순 보조직무가 돼 버리면 쉽게 차별에 노출될 것이다. 전일제 노동자들이 자신이 하던 일 그대로 시간제로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 직무로 전환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전일제 노동자들은 시간제로 전환하지 않으려고 한다. 때문에 신규채용 형태로 시간제를 늘렸고, 그 노동자들은 전일제를 원하더라도 전환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정부가 이야기하는 시간제 일자리는 기존 일자리의 전환보다는 사회서비스 영역에서 새로운 형태로 창출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정부는 사회서비스 영역을 시장화하면서 단시간 불안정 일자리를 양산해 왔다. 예를 들어 요양보호사의 경우 자격증을 남발하고 노동자들끼리 일자리를 놓고 경쟁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단시간 불안정노동을 하는 것이다. 보육이나 교육·의료 영역을 시장화해 단시간 노동을 양산하는 것은 일하는 노동자들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것일 뿐 아니라 사회서비스를 공적으로 받아야 할 우리 모두의 권리를 왜곡·축소시키는 것이다.

정부는 ‘반듯한 시간제 일자리’라고 주장하지만 현실에서 시간제 일자리가 반듯할 리 없다. 시간에 대한 노동자들의 주권이 없고, 노동자들의 노동권이 무력화되는 현 상황에서 시간제 일자리는 또 다른 비정규직 일자리일 뿐이다. 공공부문에서 정규직 일자리를 창출하고 직무에 따라 노동자들의 고용형태를 나누는 차별과 분리의 논리를 뛰어넘어야 한다. 시간을 선택하는 권리를 온전히 노동자들이 가지고, 노동권을 보장받아야 ‘반듯한 일자리’도 가능하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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