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02년 4월 세광기계라는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업체에 경리로 입사했다. 2007년 말 업체 사장은 새로운 업체로 교체된다면서 폐업을 통보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사장에게 물어보니 직원들의 고용은 승계되니 걱정하지 말라 했다. 정말 세광기계는 폐업했고 해강테크라는 간판으로 바뀌었다. 사장도 바뀌었지만 일하던 직원들은 자기 공정에서 그대로 근무했다. 새로운 사장은 현대차 관리자 출신이었다. 해강테크도 시간이 지나 SJ기업으로 간판과 사장이 바뀌었다. 현대차 모든 사내하청이 이런 구조로 운영됐다. 사내하청 업체가 폐업하고 사장이 교체되는 것은 고생한 관리자들에게 한몫을 챙겨주는 현대차의 ‘룰’이라고 했다.
이처럼 현대차 모든 사내하청은 폐업과 창업을 반복한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고용이 승계돼 현대차에서 일을 계속했다. 현대차에서 사내하청 업체는 ‘억센 노동과 더 낮은 임금’으로 하청노동자들의 고혈을 착취하는 일개 부서의 역할을 해왔다. 사내하청 운영과 관련된 핵심 권한은 원청인 현대차가 쥐고 있었다. 하청업체의 생산계획, 공정 증감, 심지어 노동자 개개인의 임금과 이윤까지 ‘현대차의 인당 도급 시스템’에 의해 결정됐다. 이는 현대차 사내하청은 현대차에 종속돼 있어 독립된 운영이 불가함을 증명한다. 그래서 현대차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현대차는 이러한 불법파견이라는 범죄를 수단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그런데 그 누구도 현대차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을 엄정하게 묻지 않았다. 검찰은 2004년 현대차 사내하청 127개 업체, 9천234개 공정의 불법파견 범죄를 불기소처분했다. 형사법원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제기하는 소송을 10년 넘게 끌어주더니 고작 3천만원의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피해자가 1만명에 달하고, 미필적 고의에 의한 범죄사실을 판결문에 적시했으면서도 처벌은 너무도 가벼웠다.
현대차는 이렇게 불법파견에 항의하며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사내하청 노조활동을 매번 폭력으로 짓밟아왔다. 노조활동을 위축시키기 위해 노조간부들을 납치하기도 했다. 2010년 대법원에서 불법파견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뒤 사내하청 노조는 매주 수요일에 집회를 했다. 그때마다 구사대가 나서서 폭행을 하니 노동자들은 ‘수요일은 처맞는 날’이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이런 폭력은 ‘노조활동에 앞장서면 두들겨 맞는다’라는 공포감과 트라우마를 남겼다. 이 때문에 비정규직 노조활동은 시간이 흐를수록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9월 현대차는 내가 마지막으로 일하던 이수기업을 폐업했다. 늘 고용승계되던 관행과 달리 모두가 해고됐다. 우리는 이 해고가 불법파견 소송에 대한 보복이자 은폐라고 생각했기에 투쟁할 수밖에 없었다. 올해 3월과 4월, 현대차 구사대가 집회 중에 해고자들과 연대시민들을 또 폭행했다. 그런데 우리 조합원들은 회사 책임자들을 고소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합법적으로 신고된 집회장소에 난입하며 천막을 뺏고 폭력을 행사한 일은 심각한 폭력이었지만, 늘 이런 일을 당했기에 우리도 모르게 폭력에 둔감해졌던 것이다. 인권단체와 법률단체가 ‘현대차 이수기업 구사대폭력 진상조사단’을 구성하고, 현대차식 노무관리의 폭력성과 잔혹성을 폭로하면서 우리도 ‘이런 폭력은 허용되면 안 되는 것이었구나’를 느꼈다. 그래서 현대차를 고소하고, 고용노동부 특별근로감독도 요구했다.
적어도 이 사회가 조금은 상식적이었으면 좋겠다. 수십 년간 비정규직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차별에 시달려온 것도 모자라 불법파견이라는 범죄 아래 수십 년을 일해온 우리 이수기업 노동자들이 도대체 무엇을 그리도 잘못해서 폭행까지 당해야 한다는 말인가. 우리 이수기업 해고자들은 잘못된 상식을 바로잡는 그 날까지 절대 투쟁을 멈출 수 없다. 또다시 두들겨 맞는 한이 있더라도 죽기 살기로 다시 일어서서 싸워나갈 것이다. 현대차도 진정성 있게 이수기업 해고노동자들과의 교섭에 임하길 바란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연대를 호소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