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후폭풍으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시계’가 빨라지고 있다.
윤 대통령이 지난 3일 밤 기습 선포한 비상계엄령은 6시간 만인 4일 새벽 5시께 국무회의에서 해제됐다. 앞서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을 가결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윤석열 대통령이 직면한 현실은 야당이 국회에 제출한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다.
“요건 갖추지 못한 비상계엄 선포”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개혁신당·진보당·기본소득당·사회민주당 등 야 6당은 이날 오후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탄핵소추안 발의에는 국민의힘 의원을 제외한 야 6당 의원 190명 전원과 김종민 무소속 의원이 참여했다.
탄핵 사유로, 윤 대통령은 전날 선포한 비상계엄이 헌법이 요구하는 어떤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는데도 헌법과 법률을 위반해 원천 무효인 비상계엄을 발령함으로써 국민주권주의와 권력분립의 원칙, 군인 등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 등 헌법을 위반했다는 점을 담았다.
또 비상계엄 발령권의 요건이 갖춰지지 않았는데도 남용했고, 계엄령 선포 전 국무회의 심의를 고의 누락했으며, 국회의 계엄 해제에 지체없이 응할 의무를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김용현 국방부 장관이 계엄을 건의했다고 하지만 한덕수 총리를 거쳐 보고했는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면서 의문을 제기했다.
이들 야당은 “윤 대통령이 초헌법적 비상계엄 발령을 통해 군을 동원해 정치무기화한 행위는 오랜 기간 군사독재 시절의 고통을 안고 있는 국민을 정면으로 배신한 국민주권주의 위배행위이자 헌법수호책무를 저버린 행위”라고 규정했다.
“부부 범죄행위 단죄 회피 위한 내란죄”
윤 대통령이 계엄사령관을 통해 포고한 포고령 1호 역시 위헌이자 무효라고 강조했다. 포고령 1호는 △국회·정당 등 일체의 정치활동 금지 △가짜뉴스 여론조작 허위선동 금지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가 통제 △파업·태업·집회행위 금지 △이탈 전공의 등 모든 의료인 24시간 이내 본업 복귀, 위반시 계엄법에 의해 처단 등을 담았다.
야당은 “위헌적인 계엄령 선포를 넘어 헌법과 법률에 따라 계엄 발동시 지체 없이 국회에 계엄을 통고하게 돼 있음에도 통고 절차를 무시하고 포고령 1호를 포고했다”며 “이로 인해 국회의 계엄해제 요구안 심의·표결권을 침해하고 다수 여야 국회의원이 군경의 국회 봉쇄로 본회의 출석이 무산됐다”고 밝혔다.
또 ‘형법상 내란’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윤 대통령은 본인과 배우자의 범죄행위에 대한 국민적 진상규명과 단죄 요구를 회피하고자, 부하 김용현 국방부 장관 등의 불법적 군대 동원을 지시해 헌법기관을 마비시켜 헌정질서 중단을 도모했다”며 “이를 통해 사실상 권력의 영속적 찬탈을 기도한 내란미수를 범했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의원 8명만 이탈해도 탄핵소추안 가결
김용민 민주당 의원은 이날 탄핵안 제출 후 기자들과 만나 “어제오늘 있었던 위법한 계엄과 그 과정에서 있었던 내란 행위를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며 “더 이상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것을 방치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탄핵안을 발의했다”고 밝혔다.
탄핵소추안은 “5일 0시1분 본회의에 (탄핵소추안을) 보고하고 6일 0시2분부터 표결이 가능한 상태가 된다”고 설명했다. 6~7일 중 표결이 가능하다.
박성준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원내에 공지를 띄워 “우선 5일 본회의를 자정이 지난 시점에 개의해 윤 대통령 탄핵안을 보고할 예정”이라며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에 의결을 해야 하니 7일까지는 비상대기를 해야 한다”고 전했다.
대통령 탄핵소추는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의 발의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가결된다. 이때 표결은 무기명 비밀투표다. 야당 의원은 총 192명이다. 국민의힘에서 8명의 이탈표가 나온다면 가결될 수 있다.
민주당 “또 계엄 가능성” 계엄상황실 설치
민주당은 윤 대통령 탄핵 추진을 서두르는 이유 중 하나로 “또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꼽았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날 정오 국회 본청 계단에서 개최한 ‘윤석열 대통령 사퇴촉구 탄핵추진 비상시국대회’에서 “계엄은 상황이 정비되고 호전되면 또 시도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무력을 동원한 비상계엄 조치가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순간에 저는 그들이 국지전이라도 벌일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경고했다.
강유정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탄핵안을 발의하고, 보고(하고), 의결하는 과정을 서둘러야 하겠다”며 “또 비상계엄 선포가 불가능하게 하는 방안을 국회가 마련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은 이날 당내에 ‘계엄상황실’을 설치했다. 이재명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계엄군이) 원래 3명(이재명·한동훈·우원식)을 체포하러 (국회에) 왔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10여명이었다”며 “김민석 최고위원과 정청래 의원이 (체포 대상에) 있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조국혁신당과 개혁신당은 이날 윤 대통령 등을 내란죄로 각각 국가수사본부와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고, 정의당·노동당·녹색당도 윤 대통령과 김용현 국방부 장관·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서울중ᄋᆞᆼ지검에 내란죄로 고발했다. 민주당도 내란죄 고발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여당·정부, 내각총사퇴·국방장관 해임 의견 모아
국민의힘은 이날 오전 8시께부터 4시간 동안 의원총회를 열고 내각 총사퇴와 김용현 국방부 장관 해임을 요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한동훈 대표는 의총이 끝난 뒤 기자들에 “의총에서 많은 난상토론이 있었는데, (내각 총사퇴와 김 장관에 이은) 세 번째 제안(윤 대통령 탈당 요구)에 대해선 여러 의견이 있어서 계속 의견을 듣기로 잠정 결론을 냈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에서는 이날 오전 정진석 비서실장, 성태윤 정책실장, 신원식 국가안보실장과 수석비서관 전원이 윤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한덕수 총리는 이날 오후에는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대통령실·국민의힘과 비공개로 회동했다.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내각 총사퇴 등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비공개 회동을 마친 뒤 용산 대통령실로 이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을 만나 논의 결과를 보고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날 오후 6시 현재까지 윤 대통령은 침묵을 이어 갔다.
야당은 국민의힘을 향해선 윤 대통령 퇴진과 탄핵 추진에 동참하라고 압박했다. 강유정 원내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정치·경제·외교 할 것 없이 나라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윤석열에게는 이제 단 하루도 나라를 맡길 수 없다”며 “더 늦기 전에 국민의힘도 빨리 동참 의지를 밝혀라. 그것이 국민의 진짜 힘으로 거듭나기 위한 마지막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연윤정·강한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