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안전보건공단이 직업적 특성상 발암물질에 노출된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직업성암을 조기에 발견해 치료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건강관리카드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공단은 올해에만 2만2천여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카드 발급을 안내했는데 올 1~9월 카드를 발급받은 노동자수는 201명에 그쳤다. 카드 발급 대상물질 15종 중 5종은 지난 5년간 발급 건수가 전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건강관리카드 본래 취지와 목적에 부합하도록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카드 발급 안내 사업장수 3.8배 늘었는데,
실제 발급 현황은 차이 없어
20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김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받은 ‘2019~2024년 건강관리카드 안내 현황’을 보면 2019년 카드 발급 안내 사업장은 5천929곳에서 2024년 2만2천604곳으로 3.8배가량 늘었지만 실제 발급 현황은 매년 제자리걸음이다. 지난 5년간 안내 사업장 대비 발급 현황을 보면 2019년 5천929곳(256명), 2020년 1만6천664곳(434명), 2021년 2만7천142곳(642명), 2022년 1만4천975곳(1천189명), 2023년 9천253곳(730명), 2024년 2만2천604곳(9월까지 201명)으로 공단이 카드 발급을 안내한 사업장에 비해 실제 카드 발급으로 이어진 경우가 굉장히 드물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그래프 참조>
건강관리카드 제도는 작업 중 노출된 발암물질에 의한 직업성암을 조기에 발견해 치료와 보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마련된 제도다. 산업안전보건법 137조에 따라 건강관리카드 발급 대상 업무에 종사하거나, 종사했던 자에게 건강관리카드를 발급하고 카드 소지자에 대해 이직 후 연 1회 특수건강진단을 무료로 지원한다. 카드 소지자가 요양급여를 신청할 경우 해당 재해에 관한 의학적 소견을 적은 서류 제출을 카드로 대신할 수 있다.
공단은 직전년도 작업환경측정·특수건강진단 DB를 토대로 카드 발급 안내 대상 사업장을 선정해 연 1회 발급 안내를 한다. 그런데 발급대상자가 아닌 발급 대상 ‘사업장’에만 홍보를 하는 탓에 정작 카드 신청 주체인 작업자는 발급 대상인지조차 모르는 문제가 발생한다.
15종 중 5종은 발급 실적 ‘0건’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에 규정된 카드 발급 대상물질 15종 가운데 5종은 지난 5년간 발급 건수가 없는 것도 문제다. 공단이 제출한 ‘2019~2024년 9월 건강관리카드 발급 대상물질별 발급 현황’에 따르면 △베타-나프틸아민 △벤지딘 △베릴륨 △비스-(클로로메틸)에테르 △삼산화비소 5종은 발급 실적 자체가 없다.
이미 현행법상 취급 금지 또는 제한 물질로 규정돼 있어 국내에서 취급하는 사업장이 드물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삼산화비소는 2003년 산업안전보건법에 허가대상 유해물질로, 나머지 4종은 1982년에 산업안전보건법 등에 금지물질 또는 허가대상 유해물질로 지정됐다. 공단측은 김주영 의원실에 해당 5종의 발급 실적이 없는 이유에 대해 “취급 금지 또는 허가 대상 물질로서 국내에서 해당 물질을 취급하는 것이 제한돼 있다”며 “이러한 이유로 해당 물질을 연구·분석 등 한정된 용도로 취급하며 실제 사용량이나 빈도가 극히 낮은 관계로 건강관리카드 발급 기준(종사기간 등)에 해당되지 않아 발급 신청을 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건강관리카드는 1992년 도입했는데 30년 넘게 발급 대상물질은 11종에서 15종으로 4종이 늘어나는데 그쳤다. 이 기간 두 차례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개정으로 2005년 3개 물질(니켈, 카드뮴, 벤젠)이 추가됐고, 2017년 비파괴 검사(X선) 1개 물질이 추가됐다. 급식실 종사자들의 폐암 원인으로 지목된 조리흄을 비롯해 최근 새로 드러난 직업성암 사례나 연구는 반영되지 않고 있다.
2년 전 연구보고서에도 지적된 내용
이러한 문제는 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2022년 10월 발표한 ‘건강관리카드제도 정비 및 이용 활성화 방안 연구’ 보고서에도 지적된 내용이다. 연구진은 “현행 카드발급 대상 요건은 근로자 개인이나 사업주가 이해하기 어렵고 증명하기도 어려운 내용”이라며 “신청주체는 근로자 개인이나 사업주(혹은 사업주의 의무)로 하되 공단이나 작업환경측정기관, 특수건강진단기관의 전문가들이 대상자를 선정해 발급을 안내받게 하는 것도 방안”이라고 밝혔다. 대상물질에 대해서도 “국제암연구소에서 1군 발암물질로 지정돼 있고 국내에서도 사용하고 있지만 카드 대상인자에 포함되지 않은 물질이 있다”며 “지속적으로 대상인자를 확대할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공단측도 안내 사업장 대비 카드 발급 건수가 지나치게 적다는 문제의식에는 공감하고 있다. 공단 관계자는 “안내 사업장수에 비해서 발급 건수가 저조하다는 점을 한계점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카드 발급을 어떻게 활성화할 것인지에 대해 고용노동부와 대책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대상물질을 취급하는 종사자가 이직을 했는지, 퇴직을 했는지, 사망했는지 등에 대한 정보를 확인해야 연 1회 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밀착해서 관리할 수 있는데, 개인정보 접근에 제한이 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제도 개선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제도개선 속도가 지나치게 더디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건강관리카드 제도개선은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인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에도 포함돼 있다. 정부가 2022년 11월 발표한 로드맵에는 “직업성암의 조기 발견·치료를 위해 발급되는 건강관리카드 대상 확대(예: 조리흄에 장기 노출된 은퇴 근로자 등)”라고 명시돼 있다. 로드맵이 발표된 지 2년 가까이 지났는데도 대상물질 확대를 포함한 제도개선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김주영 의원은 “‘직업병 조기발견 및 지속적인 건강관리’라는 법의 목적과 취지와 달리, 발급 대상물질이 15종으로 국한돼 있는 데다 이마저 2019~2024년 9월까지 5종에 대해 발급 실적이 없어 제도적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건강관리카드 대상 확대는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인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에도 포함된 만큼 신속한 제도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