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노조와 보건복지부 간 교섭이 진통 끝에 노조가 예고했던 총파업 시간을 5시간가량 남기고 2일 새벽 극적으로 합의안을 마련했다. 공공의료 확충과 의료인력 충원에 대한 근본적 문제 해결을 위한 기틀이 노정교섭을 통해 마련됐다. 그런데 합의문이 현실화되기까지 예산 확보·법 개정을 위한 당정협의, 국회 논의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아 이행 여부에 이목이 쏠린다.
코로나19병동 인력기준 마련·생명안전수당 제도화
노조와 복지부가 마련한 합의문을 보면 공공의료 강화, 감염병 대응체계 구축, 보건의료인력 확충에 대한 개선방안이 담겨 있다.
당장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는 코로나19 병동 인력기준 마련과 생명안전수당 제도화였다. 노조와 복지부는 인력기준에 대해 ‘노조가 제시한 인력기준’을 참고해 이달까지 배치기준을 마련하기로 했다. 세부적인 실행방안은 10월까지 마련한다. 노조가 제시한 간호사 대비 환자비율 기준은 최중증환자 전담병상은 2 대 1, 준중증환자의 경우 전담병상 일대일·회복기 병상 1 대 2, 경증환자의 경우 요양 등 일대일·일반병상 1 대 5다. 1년8개월간 인력을 ‘갈아 넣는’ 수준으로 버텨 온 전담병원 의료진에게 적정의료를 수행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된 셈이다. 생명안전수당도 법 개정을 통해 내년 1월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노동계 일각에서는 인력기준 시행시기를 늦췄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복지부는 3월 코로나19 병동 간호사배치 현황을 조사한 뒤 이를 바탕으로 간호인력기준 검토안을 논의한 바 있다. 대구시는 감염병동의 중증도별 간호인력기준을 마련해 시행 중이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관계자는 “지난달 31일 서울시 보건의료정책과 담당자와 면담 자리에서 복지부 안을 기다린다고 했는데 이번 합의안은 인력기준이 발표된 것도 안 된 것도 아니어서 오히려 기존 논의를 중단시키는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했다.
간호사의 업무부담을 덜기 위해 핵심 쟁점이 됐던 간호등급제 기준 개선은 미흡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노조와 복지부는 전체 간호사수 대비 전체 환자수 기준인 현행 간호등급제를 ‘간호사 1명당 실제 환자수 기준’으로 개편해 2023년까지 시행하기로 했다.
노조는 간호등급제 기준을 간호사 1명당 환자수에서, 근무조별 실제 환자를 간호하는 간호사 1명당 환자수로 전환해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관철하지 못했다.
당정협의 사안, 이행 여부 지켜봐야
예산이 투입돼야 풀리는 문제는 이행이 현실화되기까지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이번 합의를 통해 △2024년까지 4개 권역 감염병전문병원 설립 및 세 곳 추가 확대 노력 △2025년까지 70여개 중진료권마다 1개 이상의 책임의료기관을 조속히 지정·운영하기로 한 점은 특히 예산이 뒷받침돼야 현실화가 가능하다. 생명안전수당은 국고로 지원하기로 명시했기 때문에 예산 충원이 필요한 사안이다. 감염병 대응인력 기준 마련에 따른 인력충원 비용, 교육전담간호사 민간병원 확대에 따른 지원, 교대근무제 시범사업에 따른 예산 투입도 재정적 문제가 얽혀 있다.
노조와 정부는 이번 합의문에 “생명안전수당과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교육전담간호사제, 총액인건비 적용 제외, 공익적 적자 지원 관련 내용은 당정협의를 통해 추진한다”고 못 박았다. 이날 오전 국회에서 진행된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보건의료노조의 면담 자리에서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감염병 대응인력 기준을 새로 마련하고 생명안전수당 지원 등 국회에서 해야 할 일을 빠짐 없이 하겠다”며 “합의문에 반영한 내용들 역시 차질 없이 뒷받침하겠다”고 밝혔다.
합의문 내용과 별개로 노정교섭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점은 좋은 평가를 받는다. 그간 보건의료인력 확충 문제는 노사 교섭을 통해 사업장별로 푸는 방식이었는데 정부와 교섭을 통해 제도개선 모멘텀이 마련됐다는 것이다. 국민적 지지와 조합원 동참을 이끌어 냄으로써 노정교섭 가능성을 열었다는 평가다.
한편 합의와 별도로 노조 11곳 지부는 파업에 들어갔다. 보건복지공무직지부·SRC지부·전남대병원지부·조선대병원지부·호남권역재활병원지부·광주시립요양병원지부·건양대병원지부·부산대치과병원지부·부산대병원지부·고대의료원지부·한양대의료원지부가 파업했다. 노조는 7일까지 집중교섭기간으로 정하고 합의에 나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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