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는 교섭단체와 비교섭단체가 있었다. 6월5일, 17대 첫 국회가 열리던 날 아침, 민주노동당 의원단은 당대표실에 모여서 ‘작전회의’를 했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원구성’과 관련해 취할 입장들을 추론하며 민주노동당이 주장할 바를 최종점검 했다.

“부의장 한 석과 상임위원장 한 석을 요구해야 한다”는 말도 나왔고, “회의 규칙을 몰라 창피를 당해선 안 된다”는 다짐도 나왔다. 30분 남짓의 회의를 마치고, 당사에서 길 건너 국회까지 가는 길.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의원들은 국회 정문을 거쳐 본청으로 향했다.


이미 전날인 4일에는 본청 계단 앞에서 수십명의 당직자들과 함께 국회 ‘입성’을 기념하는 기자회견도 위풍당당하게 했다. 그 자리에서 단병호 의원은 “우리편 국회의원이 한 명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며 눈물까지 보였다.

정말 오래 동안 기다린, 역사적인 민주노동당의 첫 등원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민주노동당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민주노동당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그 무엇이었다.

12시간의 기다림

같은날 밤 자정, 민주노동당 10명의 국회의원들은 ‘반탈진’ 상태로 국회 본청을 나왔다. 거의 12시간을 본회의장에서 앉은 채로 보냈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원구성 협상이 끝나지 않아 본회의가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날 하루 동안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상황에 대한 통보도 양해도 받지 못했다. 비교섭단체의 설움이 시작된 것이었다.<상자기사1 참조>

이날 민주노동당은 3번의 입장발표를 하며 거대 보수양당의 밀실협상에 항의했지만 그들은 별반 신경을 쓰지 않았다. 민주노동당은 교섭단체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국회운영 및 논의구조에 들어와 있지도 않을 뿐더러, 10석은 299석의 3.3%, 그러니까 ‘극소수’였을 뿐이었다. 그날의 ‘왕따’는 신참이자 향후 자신들의 ‘다음’을 만들어낼 민주노동당 의원단에게 보수양당이 ‘기합’을 넣은 것이기도 했다.


5일 본회의는 예정시간인 오전 10시를 무려 12시간30분이나 넘긴 밤 10시30분에 시작됐다. 개의가 되면서 의원들에게 돌려진 안건 세 가지는 △국회의장 선출 △상임위 위원정수 조정에 관한 규칙 개정을 위한 11인 특위 구성 △국회개혁특위 구성 등이었다. 보수양당에게는 반나절이 넘는 협상과 토론의 결과물이었겠지만, 민주노동당에게는 던져진 안건이었을 뿐이었다.

첫 안건 통과로 선출된 김원기 국회의장이 두번째 안건인 ‘상임위원 정수조정에 관한 규칙개정을 위한 11인 특위 구성’을 상정하자, 조승수 의원이 “이의 있다”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몇몇 보수양당 의원들이 힐끔거리며 쳐다봤을 뿐, 표결은 그대로 진행됐다.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반대에 8명, 기권에 2명이 기표했다. 민주노동당에게는 찬성이든 반대든 기권이든 ‘당론’을 정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어진 ‘국회개혁특위 구성’ 안건 처리과정에서 노회찬 의원이 반대토론에 나섰다.

“김원기 의장은 인사말을 통해 의장으로서 교섭단체와 국회개혁특위 설치를 위해 협의를 했다고 했다. 하지만 전 방금 당선되신 의장님이 교섭단체와 협의를 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몇시에 누구와 어떤 내용에 대해 협의를 했는지를 밝혀 달라. 국회개혁특위가 어떤 내용으로 무슨 문제를 다루는지에 대한 아무런 설명도 없이 안건이 제안됐다. 이 자리는 교섭단체 구성원들만의 자리가 아니다. 비교섭단체 의원들이라고 자격이 없는 것이 아니다.”

이에 대한 김원기 의장의 답변은 “토론이 종결됐으니 투표하자”는 것이었다. 강기갑 의원의 “노회찬 의원의 질문에 답하라”고 다시 소리를 질렀지만, “질문이 아닌 토론이었으니까 답하지 않겠다”는 답만 돌아왔다.


“비민주적인 국회운영에 동의할 수 없다”

본회의를 마친 뒤 민주노동당 의원들의 항의발언이 쏟아졌다.

“개원 첫 국회에서 앉은 자리에서 소리를 질러서 유감이다. 역사적 자리라는 의미를 아는데 결례를 무릅쓰고 그런 행동을 했다. 철저히 교섭단체 위주로 국회가 운영되고 있다. 만족하는가? 민주노동당은 차별과 억압받는 많은 사람들의 염원을 모아서 역사적인 원내진출을 했다고 감히 자부한다. 민주노동당은 국회의 룰과 틀을 존중하겠다. 하지만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계속 국회운영을 독점한다면 우리는 분명한 판단과 새로운 모색을 하겠다. 참고하라."(조승수 의원)

“민주노동당이 이 자리에 오기까지 반세기가 걸렸다. 50년 동안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으면서 여기까지 왔다. 설레는 마음으로 국회 문을 들어섰다. 하지만 노동자 농민 서민의 희망은 오늘 무너졌습니다. 오늘 비교섭단체 의원들은 12시간을 기다렸다. 이런 식으로 의안처리가 돼도 되는 것인가? 이걸 바꾸는 것이 바로 국회개혁이다. 교섭단체끼리의 밀실야합을 고쳐야 한다."(권영길 의원)

“농사에 아침 일이 절반이라는 말이 있다. 처음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우리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하루종일 기다렸다. 교섭단체 회의가 언제 끝나 본회의가 시작될지 인내를 갖고 기다렸다. 하지만 두 당만 협상하고, 비교섭단체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지금 상황이 상생인가? 설명이 있어야 한다. 그게 예의다. 비교섭단체까지 끌어안고 가는 국회가 되길 바란다.”(강기갑 의원)

이틀 뒤인 7일. 이날도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텅 빈 본회의장을 지키고 있어야 했다. 의원단은 국회의장을 방문해 항의했고, 5일과 7일의 사건은 여러 언론매체의 지면을 채웠다. 이후 교섭단체가 협의 중이면, 최소한 민주노동당 의원들에게 통보가 되기는 했다. 타당 수석원내부대표들이 심상정 수석의원단부대표에게 협의 내용을 알리고, 양해를 구하는 제스추어를 취하게 된 것도, 실은 개원국회 첫날의 일이 배경이 되었다.


“당신 법사위로 가!”

‘대형사곤’는 상임위원 배정 과정에서 터졌다. 당초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자당이 배정한 상임위에 10명의 의원들이 들어가는 것을 크게 의심하지 않았다. 어차피 17개의 상임위(이 가운데 3곳은 겸임이 가능하다) 숫자보다 민주노동당 의원의 수가 적었고, 한 상임위에 한명밖에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을 보수양당들도 이해해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미 당 정책위는 해당 상임위와 관련한 현황 파악과 이슈들을 잡아가고 있었고, 각 의원들도 해당 상임위와 관련된 전문가들을 보좌관으로 영입하며, 개원국회를 준비해 왔다. 당은 상임위 배정과 문제를 “'협상'의 대상이 아닌 반드시 관철돼야 할 사항”으로 여기고 있었다.

또한 개원국회 이전에 이미 각 상임위에 해당되는 정부부처에서 각 의원실로 업무보고를 하면서 민주노동당의 10개 상임위는 사실상 공식화 돼 있었다.

하지만 상임위 배정은 민주노동당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17대 국회의 전반기 상임위 배정(상임위 배정은 2년마다 하게 되어 있다)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지루한 협상 끝에 7월5일에야 결정됐다. 그 결과 노회찬 의원이 당초 배정을 원했던 정무위에서 법제사법위로 배정됐다. 민주노동당은 의원 전원이 국회의장실을 항의방문 했고, 본회의 불참을 선언하며 저항했지만 결정을 뒤집지는 못했다.

비교섭단체 상임위 배정은 국회의장이 교섭단체 대표와 협의해 선임하도록 되어 있다. 교섭단체의 횡포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불만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불만은 뒤에 ‘생존을 위한 공조’냐 ‘공조를 위한 생존’이냐라는 보이지 않는 갈등을 당내에 부르는 원인이 된다. 

<상자기사 ①> 국회 교섭단체란?
교섭단체란 국회에서 의사진행에 관한 중요한 안건을 협의하기 위해 일정한 수 이상의 의원들로 구성된 의원단체를 뜻한다. 현재 국회법에 의하면 20인 이상의 소속 의원을 가진 정당을 교섭단체로 규정하고 있다. 17대 국회의 경우에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만이 교섭단체를 이루고 있다.


교섭단체를 이룬 정당만이 국회 내 발언자의 수를 정하는 문제, 각 상임․특별 위원회의 위원을 결정하는 문제(선임은 의장이 하도록 돼 있지만 사실상 교섭단체의 협상에 의해 결정된다) 등 국회 운영과 관련된 문제에 공식적인 참여가 가능하다. 그래서 “교섭단체의 협상이 사실상 상원 역할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또한 교섭단체냐 아니냐는 정당에 지금되는 국고보조금에서도 현격한 차이를 나타낸다. 정치자금법 18조는 ‘보조금 총액의 50%를 원내교섭단체에 우선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원내교섭단체는 (의원수가 많은 만큼) 나머지 50% 보조금도 상당 부분을 가져가게 된다. 이 셈법에 따르자면 민주노동당이 교섭단체가 됐을 경우 현재 20억원 수준의 국고보조금이 67억원으로 증가하게 된다.


민주노동당이 주장하는 교섭단체 요건은 5석, 5%(정당득표)다.

<상자기사 ②> “교섭단체에 대한 집착은 ‘하소연 정치’”
“사실상 교섭단체가 상원 역할을 하고 있다.” “교섭단체의 전횡이 의회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의원단이 자주 하는 말이다. 개원 국회 초창기부터 민주노동당은 교섭단체 요건완화와 폐해 극복을 위해 목소리를 높여 왔다.


하지만 “어차피 원내 3% 정당이 교섭단체에 들어가도 영향력은 3%다”라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한 민주노동당 의원들의 답은 이렇다. “국회의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말.”(천영세 의원단대표) “운영과 관련한 모든 결정이 교섭단체들에서 만들어진다. 그 속에 들어가서 말도 3% 만큼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단병호 의원)


물론 심상정 의원의 말처럼 “민주노동당 국회개혁 과제의 일환으로 교섭단체 요건 완화를 외치고 있는 것이지, 그것만 해 온 것은 아니다.” 분명, 교섭단체의 폐해는 존재하며, 원내 정치활동을 직접 해야 하는 의원들의 입장에서는 답답함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도대체 민주노동당에게 ‘원내정치’란 어떤 의미가 있는가에 대한 부분이다.


“거대한 소수정당론이란 무엇인가? 거대한 소수정당론은 그 무엇보다도 민주노동당이 전체 의석수 중 3%에 불과한 10석의 의석을 갖고 있는 소수정당이라는 자기한계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하는 것이었다. 즉,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라는 거대 보수양당이 주도하는 국회 운영 전반에서 ‘왕따’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정확한 판단을 내린 것이었다.”(<진보정치> 185호, 김윤철 당시 정책위원 기고)


개원국회가 시작되고 불과 한달이 지났을 따름이었다. 하지만, 진보정당식 의정활동에 대한 이견과 경보 메시지는 이미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김 정책위원의 지적처럼, 민주노동당은 국회 안에서 부족한 힘을 밖에서 끌고 와야 한다는 원칙 아래 의정활동 방향을 세웠다. 하지만 이 원칙은 원칙일 뿐이지, 경로와 방법론, 조직방침은 사실 ‘사막에서 피라미드를 세우는’ 작업이었다.


“선거를 통해 국회로 들어온 순간 원내 운영원리 자체를 부정할 순 없는 일이다. 그걸 부정하면 우리가 국회로 들어온 의미가 없어진다. 우리한테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한 민주노동당 의원이 한 말이다. 사실 이 말은 당위라기보다 논쟁의 지점이다. 아래 이어지는 김 정책위원의 지적은 이후 의정활동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나온다. 과한 욕심일까? 아니면 현실정치를 모르는 평론일까? 진보정당의 ‘야(野)성’ 상실에 대한 경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냉정히 평가하기엔 시간이 좀더 필요할 것이다.


“원내교섭단체이지 못해 받는 설움에 빠져 있는 ‘하소연의 정치’만이 보였을 뿐. 이런 와중에 진보야당론과 거대한 소수정당론 그 모든 것이 그저 단 한 번의 기자회견을 위한 정치적 수사로 잊혀져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되씹어볼 일이다.”

<상자기사 ③>

노회찬 의원은 정무위를 택하면서, 경제 전문가를 보좌관으로 영입하고, 재벌개혁, 주한미군기지 문제의 타점을 잡으면서 개원 국회 이전부터 준비를 착실히 해 왔다. 갑자기 상임위가 바뀌면서 당연히 당황했다. 또한 법사위는 노회찬 의원의 표현대로 “'라이센스'(자격증)를 가졌느냐 여부에 따라 나뉘는 전문 영역”이다. 율사 출신 보좌관을 영입하는 것은 당시 당 상황에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어진 노회찬 의원의 말이다.


“보좌관 임면은 당에서 한 것이다. 상임위가 변경돼서 안 맞는 것이 있다면 빼거나 조정해야 하는데 아무 이야기가 없다. 사표를 내고 나가든지 옮기든지 개인의 문제로 맡겨져 있는 것이다. 하다 못해 인턴 한 명 채용하면서도 당에서 임명되지 못하면 보좌관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면서 이 문제에서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는 것이 일관성이 없는 것이다. 내 사무실에는 금융만 아는 전문가가 2명 있다. 이들을 어떻게 옮겨서 당의 금융개혁 분야를 강화할지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당사자의 고민으로 떨어져 있다.”


이 인터뷰는 당시 소속 의원이 자당의 의원단에 던진 최초의 ‘쓴소리’였다.


“10명 모두가 아니면 안 된다는 입장만 갖고 있었을 뿐이다. 지금은 올 오어 낫싱(all or nothing)만 있다. 올은 안 되니 낫싱밖에 남는 것이 없다. 썸싱(something)이 없는 것이다. 의원단이 모여서 정치적 대응보다 비정치적이고 행정적인 문제로 회의시간의 절반 이상을 쓰고 있다. 이게 어쩔 수 없는 문제라고 해도 어느 팀에선가는 '정치'를 하고 있어야 한다.”


이 말들은 사실 상임위 배정과 관련한 불만의 표시였다기보다, 민주노동당식 정치로 자리 잡고 있던 한 흐름에 대한 경고였다. 또한 ‘지고지순한 민중의 대표’로서 ‘협력과 단결’로만 일관할 것 같았던 민주노동당 의원들 내부에서도 경쟁이 시작될 것임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했다.


‘민주노동당의 장점 중 하나가 의원단 내부의 경쟁이 없다는 것’이라는 말을 자주 하곤 한다. 이 말이 맞는 말인지는 뒤이어 천천히 살펴보자. 사실 이 문제는 ‘당론’이라는 것의 ‘실체’와 직접 연관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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