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은 늘었지만…
원내진출 이후 민주노동당에 돈이 생겼다. 우선, 연간 20억원 규모의 국고보조금을 받게 됐다. 여기에 의원과 보좌진이 세비와 급여에서 일부만 받고 나머지를 당에 헌납하는 데서 발생하는 특별당비 수입(2004년의 경우 18억원)이 추가됐다. 총선을 거치면서 늘어난 당원으로 당비 수입 역시 증가했다. 이리하여 원내진출 이전 약 40억원 규모였던 민주노동당의 1년 수입은 불과 몇 달 사이에 3배로 늘어난 것이다(2005년 예산의 경우 122억원).
가계를 유지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했던 ‘활동비’(월 60만원 수준)로 헌신해 온 중앙과 지역의 당직자들에 대한 대우도 현실화시켜야 했고, 정책역량도 강화해야 했다. 물론, 당의 근간인 지역조직사업에 대한 투자도 늘려야 했다. 당의 몸집이 커진 만큼 그에 맞는 사업들도 벌여야 했다. 두툼해진 지갑 두께 만큼 쓸 곳도 많아졌다. 그런데 어디에 더 쓰고, 어디에 덜 쓸지를 정하는 것은 사실 정치적 선택의 문제다.
민주노동당의 전임 지도부의 사무총장인 노회찬 의원은 임기 막바지에 예산 운영과 관련해 3가지 약속을 했다. △당직자 임금체계를 단일호봉제로 운영하겠다는 것(단, 업무에 따른 차이는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음) △지역 상근활동가들의 급여를 지급하겠다는 것 △새로 채용된 보좌관과 정책연구원의 급여를 150~180만원선에서 지급하겠다는 게 그 세가지였다. 이것은 사실상 민주노동당 재정운용의 가이드라인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 가이드라인은 신구 지도부의 교체와 함께 ‘패키지’로 인수인계 되지 않았다. 선거과정에서 이 점이 고려되지 않았고, 공식화되지도 않았다. 전후임 사무총장의 몇 차례 만남을 통해 인수인계 절차를 거치긴 했지만, 노회찬 전 총장과 김창현 신임 총장이 그린 그림은 처음부터 약간 달랐다. 아니, 같다고 했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사태는 ‘보이지 않는 관성’에 의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전임과 신임 지도부가 그린 그림이 달랐다
먼저 노회찬 전 사무총장의 계산법과 김창현 현 사무총장의 계산법이 달랐다. 노회찬 사무총장 체제에서는 예산을 내려보내야 할 지역조직의 숫자를 120여곳으로 봤다. 또한 업무수당에 차등을 두고, 의원실의 보좌관, 정책연구원, 중앙당 상근자, 지역 상근자 순으로 급여가 달라지는 체계를 구상했다. 또한 중앙당 상근자의 수는 새로 채용되는 정책연구원을 제외하고는 늘리지 않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렇게 하면, 의원실 보좌관과 정책연구원의 급여를 150만원~180만원 수준으로 맞춰 줄 수 있다는 계산이 선다. 실제로 보좌관과 정책연구원들은 채용 과정에서 이 액수의 임금을 구두로 보장받았다.
하지만 실제 김창현 사무총장이 짠 예산안은 달랐다. 우선 중앙당이 예산을 내려보내야 할 지역조직을 (50명 이상의 당원이 모이면 구성할 수 있는) 지구당준비위까지로 했다. 그 결과 160곳이 넘는 지역조직에 예산을 내려보내야 했다. 또한 (정책위를 제외한 나머지 부서에서도) 중앙당 상근인력이 10~15명 이상 증가했다. 노 전 사무총장이 계산에 두고 있지 않았던 선출직 및 정무직(20여명)의 임금도 더해졌다.
이 상태에서 보좌관과 정책연구원의 임금을 150~180만원선에서 지급하고, 단일호봉제에 따라 다른 상근활동가들의 임금을 정할 경우, 당 재정으로는 감당할 수 없게 된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결국, 보좌관과 정책연구원들은 당초 채용될 때 구두약속 받았던 급여 수준보다 30만원 이상 낮은 임금을 받는 것으로 예산을 짤 수밖에 없었다.
이들의 불만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이렇듯 빠듯한 가계부로는 당이 만성적인 재정난에 봉착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민주노동당은 들어올 돈이 ‘뻔한’ 조직이다. 갑자기 수입에 변동이 있을 조직이 아니다. 따라서 들어올 돈 대비 나갈 돈을 계산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왜, 김창현 사무총장은 무리한 예산을 짰을까. 김 사무총장은 “이렇게 될 줄 알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인터뷰 참조> 이제 그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들여다보자.
“지역도 중앙도 기대치가 높았다”
“사실 전에 지역에서 상근자를 하나 구하는 것은 일꾼을 뽑는다기보다 ‘미친놈’을 물색한다고 하는 게 적당할 것이다. 차비에도 못 미치는 급여 수준에, 일은 산더미 같았다. 그렇게 살았다. 나도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선거 치르고, 지역조직 운영하면서 빚이 적지 않게 쌓였다.” 충남도당 사무처장으로 일하다 원내진출과 함께 의정지원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재기 행정지원실장의 말이다. 중앙당 상근자도 지역 활동가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원내 진출 이전에 (당대표단을 제외하고 봐도) 중앙당 조직만 40명, 지역조직 책임자 및 상근활동가 250여명. 배우자의 수입이나 다른 ‘자금원'이 없다면, 줄잡아 300여명에 이르는 민주노동당 활동가들에게 ‘활동비’는 사실상 거의 유일한 생계수단이었다. ‘야만적인 수준’의 저임금에 시달리던 이들이 원내진출 이후 ‘기대치’가 높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원내진출 이후 예산안이 통과되는 7월까지는 폭발적으로 불거져 나오는 ‘기대치’를 조율해야 하는 시기였다. 첫번째로 걸린 것이 지역준비위에 지원을 할지 말지에 대한 문제였다. 전임 지도부는 이 부분을 계산에서 빼고 있었지만 지역의 정서는 달랐다. ‘어려운 지역일수록 더 지원해야 한다’, ‘당의 기본정신을 봐도 지역에 더 투자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게 제기됐다.<상자기사1 참조>
신임 지도부는 이런 지역의 정서를 외면할 수 없었고, 결국 지원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파이의 크기는 이미 정해져 있었음에도. 보좌관과 정책연구원에게 구두로 약속한 급여수준을 맞춰주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했다. 또한 전임 지도부는 단일 호봉제 안에서도 중앙과 지역 상근자가 새로 채용된 사람들보다 적은 급여를 받는 것을 전제로 예산안을 짰다. 그러나 기존 상근자들의 심리적 반발도 적지 않았다. “단일호봉제와 신규채용인력(보좌관·정책연구원)의 급여수준을 150~180만원으로 맞추겠다는 약속은 상호 충돌됐다.” 김창현 사무총장의 이 말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 말이다.
신규채용인력의 급여를 낮춘다 해도, 늘어날 지출이 수입보다 적을 것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었다. 이에 대해 신임 지도부와 지역조직 주요 책임자들은 “과감한 당원확대 전략을 통해 재정을 늘려서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의견을 모았다. 지난해 7월25일 열린 2004년 임시당대회 예산안에는 “공격적인 수입예산 편성”을 해야 한다는 구절이 있다. ‘10만 당원 확대사업’을 주요 모토로 내세우며, 당원배가 운동을 통한 재정확충을 시도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돈은 아직 수중에 들어오지 않은, 남의 것이었다.
당겨쓴 5억, ‘돌려막기’의 시작
계산보다 늘어난 인건비 폭증과 이로 인한 재정수요 증가를 당 재정은 감당해내기 어려웠다. 결국 김 사무총장은 ‘돌려막기’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민주노동당에는 분기별로 5억원 가량의 국고보조금이 나온다. 이 돈을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보조금을 받은 다음에 지출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늘어난 재정수요를 단기적으로나마 해결하기 위해 아직 받지 않은 분기 국고보조금을 토대로 예산을 편성하고, 지출을 해야 하는 상황이 돼 버렸다. 만성적인 유동성 위기 상황에 빠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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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을 거치면서 당원은 기존에 3배로 확대됐다. 이미 지역조직에선 늘어난 당원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다. 당원을 더 늘리는 것은 목표로 한 사업을 기조로 잡을 시점이였다기보다, 늘어난 당원을 안착시키는 것에 주력하는 조직적 선택이 필요했다.” 박권호 노회찬 의원실 보좌관(전임 중앙당 총무실장)의 말이다. 그는 준비위에 대한 재정지원에 대해서 비판적이었다. “지역조직의 숫자를 늘리는 것에 치중할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의 말을 종합해 보면 “당의 재정적 위기는 공고화 전략을 썼어야 할 시점에서 확대전략을 쓰면서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런 비판에 대해 오재영 조직실장은 “공고화와 확대 전략은 반드시 따로 가는 것은 아니”라면서 “예를 들어 준비위의 경우 지원을 하고, 안정적으로 일할 사람을 만들어 주는 것이 공고화 전략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역조직에 대한 지원을 결정한 순간, 지원대상 지역조직의 숫자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노회찬 의원의 말을 들어보자. “10만당원 시대를 이야기 하지만 당원배가사업이 ‘과학적 운동’이 되지 못했다. 당원 수 늘리기보다 당원 교육 등을 강화하면, 어떤 사람이 당원인지에 대해 합의했어야 할 시점이었다.” 결국 덩치를 키울 시점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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