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변호사

수도권 일극 집중은 부동산 가격 급등, 긴 출퇴근 시간, 과도한 경쟁 등으로 인한 삶의 질 저하를 초래하고 있다. 불평등과 격차를 심화시키는 근본 요인이기도 하다. 소득격차보다 자산격차가 더 심각하다는 점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이 같은 구조는 국민의 행복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발간한 ‘2025년 세계행복보고서(WHR)’에 따르면 한국의 주관적 행복도는 조사 대상 137개국 가운데 57위에 그쳤다.

수도권 집중은 초저출생의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전 세계에서 합계출산율이 1 이하인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출산은 개인의 선택이지만, 한 사회 전체의 출산율이 급격히 하락한 것은 구조적 문제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17개 시도 가운데 출산율이 가장 낮은 곳은 서울이다. 서울의 합계출산율은 0.58명으로, ‘빠져나오기 힘든 함정’에 빠져 있음을 보여준다.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도시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다는 사실은 저출산 문제가 현재의 사회·경제 구조로는 해결되기 어렵다는 점을 방증한다.

반대로 합계출산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지역은 세종시를 제외한 비수도권 도(道) 지역이다(세종시를 제외하면 그렇다). 전남·경북·충남·충북·강원 등에서 출산율이 비교적 높다. 226개 기초지자체 중 합계출산율이 가장 높은 5곳은 지난해 기준 전남 영광군(1.70명), 전남 강진군(1.51명), 강원 화천군(1.50명), 경북 청송군(1.35명), 전남 장성군(1.34명)이다.

이 같은 통계는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고 인구를 분산시키는 정책이 저출산 문제 해결의 전제임을 시사한다. 사람들의 의식이 변화하려고 해도, 정책의 변화가 먼저 필요하다.

무엇보다 수도권 집중을 더욱 심화시키는 사업부터 중단해야 한다. 말로만 ‘수도권 일극집중 해소’를 얘기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지금보다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 일부터 중단해야 이후를 모색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업이 바로 용인 반도체 국가산업단지다.

윤석열 정부가 2023년 3월 발표한 용인 반도체 국가산업단지는 수도권 집중을 가속화할 대표적 사업이다. 단지 반도체 공장이 용인에 들어서는 문제만이 아니다. 용인으로 원전 10기 이상의 전력을 공급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 전남·전북·충남·강원 등 비수도권 지역에 초고압 송전탑을 대거 세워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비수도권 지역의 ‘삶의 질’을 높이고, 일자리를 만들고, 환경을 잘 보전해도 모자랄 판이다. 그런데 일자리가 생기는 반도체 공장은 용인에 짓고, 거기에 전기를 보내기 위해 전남, 전북, 충남, 강원 등에는 송전탑만 세우겠다는 것이다. 지역 간 형평성 차원에서도 문제가 너무 심각하다.

게다가 이런 식의 사업이 과연 문제없이 추진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지금도 수도권으로 전기를 송전하는 송전망은 복잡하기 짝이 없다. 비수도권에서 생산한 전기를 장거리 송전하다보니 송전망의 신뢰도나 안정성이 취약한 것이다. 송전망을 건설하기 위한 경제적 비용도 어마어마하다. 한전에 따르면 2038년까지 73조원을 송·변전 시설에 투자해야 한다고 한다.

따라서 용인 반도체 국가산업단지는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수도권 집중 완화, 장거리 송전망 최소화, 에너지 전환이라는 관점에서 모두 재검토가 필요하다. 반도체 공장의 입지는 재생가능에너지를 활용하기 용이한 비수도권으로 조정하는 것이 옳다. 전력수요를 분산시키는 것이야말로 지속가능한 에너지 전환의 방향이다.

이재명 정부가 윤석열 정부의 잘못된 결정을 그대로 이어받을 이유는 없다. 용인 반도체 국가산업단지는 ‘대왕고래 프로젝트’만큼이나 졸속으로 추진된 사업이다. 지금이라도 바로잡는 것이 당연하다.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변호사 (haha96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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