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코 포항제철소 전경. <포스코>

철강 바닷길에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미국에 이어 유럽연합(EU)이 자국 철강산업 보호에 나서면서 관세를 올리기로 했다. 당장은 정부의 협상력 외에 기댈 곳도 마땅치 않다.

9일 문신학 산업통상부 차관은 인천항을 방문해 철강 수출현황을 점검한 자리에서 “철강기업, 금융권, 정책금융기관이 함께 4천억원 지원 효과를 낼 철강 수출공급망 강화 보증상품 신설을 포함해 철강 수출기업 애로 해소 방안을 발굴하겠다”고 말했다.

“철강산업 경쟁력 회복” EU 철벽 강화

최근 발표된 EU의 철강관세를 의식한 행보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7일(현지시각) 모든 수입산 철강 제품에 대해 연간 무관세 할당량(수입쿼터)을 기존의 절반가량인 1천830만톤(2024년 대비 47%)으로 줄이고, 수입쿼터를 초과한 물량에 대한 관세를 25%에서 50%로 인상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용해·수조 원산지 규정도 도입했다. 실제 철강 제품이 생산된 국가를 확인하겠다는 것으로, 물량쿼터를 우회하기 위해 제3국 가공 뒤 EU에 수출하는 수입을 가려내겠다는 취지다. 미국의 보호관세에 대응하면서, 역내 침체한 철강산업을 지원하는 게 목적으로 보인다. 다만 입법 절차가 남았다. EU 각 회원국의 승인과 유럽의회를 거쳐야 해 시행까지는 시간이 남았다. 현행 EU 철강 세이프가드 조치가 만료하는 내년 6월 말 도입이 전망된다.

EU가 이런 조치를 강구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확인됐다. 한국무역협회는 지난 5월 EU가 수입산 철강 유입 증가에 대응해 철강산업 경쟁력 회복을 추진한다고 전했다. 미국의 관세 부과 조치 이후 EU로 유입되는 철강이 증가할 것으로 보고, 이에 따라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정책을 고심한다는 내용이다. EU 내 30만명가량이 철강산업에 종사하고 있을 뿐 아니라 타 산업과의 연관성도 높다는 점이 지적됐다. 보호관세 가능성이 이미 읽혔던 셈이다.

사실상 무관세에서 가격 인상 불가피

우리 철강업계는 비상이다. EU는 우리나라 철강 수출 1번지다. 지난해 기준 EU 철강 수출액은 44억8천만달러로, 전체 수출액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은 13.5%로 가장 많다. 43억5천만달러(13.1%)를 기록한 미국보다 근소하게 많았다. 유럽과 북미시장은 우리나라 철강 수출길 1·2위를 다퉈왔다.

공교롭게도 두 곳 모두 관세를 현행 수준에서 두 배로 올린 셈이라 타격은 불가피하다. 특히 EU가 이번에 수입쿼터를 47% 수준으로 감축하기로 한 대목에 타격이 크다. 그간 우리 기업은 EU와 직접 협상을 통해 확보한 무관세 쿼터로 유럽시장에 철강을 팔았다. 지난해 수출량 380만톤 가운데 263만톤이 협상으로 따낸 무관세 쿼터다. 나머지 117만톤은 수출품에 모두 적용하는 수입쿼터로 거래해 실질적으로는 무관세 수출을 해왔다.

수출에 직접적인 타격은 불가피하다. 업계에 따르면 미국의 관세가 영향을 발휘하기 시작한 올해 5월 이후 대미 수출량은 지속해서 감소했다. 지난해 5월과 비교해 올해 5월 수출량은 12.4% 감소했다. 6월 -8.2%, 7월 -3%, 8월 -15.4% 등 감소세가 뚜렷했다. EU 수출도 유사한 영향을 겪을 수 있다.

당장 기댈 곳은 정부다. EU의 조치는 내년 6월 만료하는 세이프가드 조치에 맞춰 이뤄질 전망이라 반년가량 시간이 남았다. 이 기간 동안 최대한 협상력을 발휘해 우리나라에 개별적으로 배분되는 물량을 확보해야 한다. 산업부는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조만간 EU 통상 담당 집행위원을 만나 의견을 개진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다만 조선산업처럼 내세울 카드가 있었던 미국과의 협상과 비교해 훨씬 어려운 협상이 될 여지가 적지 않다. 미국은 철강 관세를 부과한 뒤 자국 내 철강 가격이 올라 관세인상을 일부 잠식하는 영향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EU도 같은 길을 걸을 것으로 전망하기는 미지수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EU 집행위는 연간 67% 수준인 EU 철강산업 평균 가동률을 “건강한” 산업 수준인 80% 달성을 위해 수입쿼터 축소가 불가피하다고 내다보면서 “역내 공급 부족 및 가격 급등 우려는 크지 않다”고 평가했다고 전했다.

‘탄소중립’ 후진국 한국, 협상 잘해도 ‘먹구름’

게다가 관건은 탄소대응이다. 각종 그린정책을 선도하는 EU는 철강에서도 그린스틸(녹색철강) 정책을 펴고 있다. EU가 추진 중인 청정산업 협약에 따라 그린스틸 공공조달과 의무 구매 할당 등이 검토되고 있다. 이에 대한 보조금도 지급한다. 탈탄소 생산 초입인 우리나라의 굵직한 철강업체가 대응하기에는 이미 격차가 크다. EU가 이미 도입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에 따라 기껏 무관세 물량을 확보해도 탄소세 때문에 가격 경쟁력이 저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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