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은 신의 개입이 아니다. 원·하청 노사관계의 물꼬를 틀 뿐 그 물줄기가 원·하청 노동자의 사회적 양극화와 경제적 불평등 해소로 직결하진 않는다. 노조법 2·3조 개정이 가시화한 시점, 노조법 바뀐 세상의 노사관계는 결국 ‘노조하기 나름’이다.
22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노조법 개정 이후 초기 노사관계가 현재보다 더욱 사법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법률 개정의 고갱이인 ‘실질적 지배력’을 사용자가 소송을 거치지 않고 수용할 수 있도록 법률에 조문화하는 것이 쉽지 않은 탓이다.
실질적 지배력이란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결정하는 사용자가 ‘진짜’ 사용자라는 의미다. 수직계열화한 국내 산업현장에서 하청사 노동자의 노동조건은 하청사용자가 아니라 원청이 결정하기 때문에 원청이 진짜 사용자라는 것이다. 기업의 비핵심 부문을 외주화해 노무관리 부담을 덜고 고용관계상 의무를 삭제한 신자유주의적 관행에 제동을 거는 법리다. 사법부는 고용관계를 판단할 때 최근 일관적으로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 여부를 차치하고 노동자 업무와 임금·복리후생·해고 등에 영향력을 행사했는지를 토대로 심리해 판단했다.
입법의 언어는 다르다. 행정부가 집행 가능하도록 구성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실질적 지배력을 법률에 담자면 마치 도급비의 일정 비율 이상 혹은 간접고용 노동자 임금 결정의 절차와 원청 영향 등을 일일이 적시해야 한다. 불가능하다.
정기호 민주노총 법률원장은 “법률에 구체적인 실질적 지배력의 표지를 담는 것은 가능하지 않고 성문법 체계상 일부 추상성이 가미될 수밖에 없다”며 “법률 개정에 따라 노사관계의 관행이 바뀌고 그 안에서 교섭의 대상을 확정하면서 적응하는 기간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하청 노조-원청사용자 교섭
복잡한 교섭창구 단일화 방안
문제는 노조법 개정 이후다. 노사관계 관행을 바꾸려는 적극적인 노사의 개입과 노력이 없다면 노사관계는 실질적 지배력을 가진 사용자냐 아니냐를 두고 다시 법원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일부 불가피하게 법원에 판단을 받더라도 노사 이해당사자의 적극적인 적응과 안착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법률적으로 반드시 재정비해야 할 대목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교섭창구 단일화다. 하청 노조가 원청에 교섭을 요구할 때 원청은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밟아야 하느냐가 쟁점이다. 현행 노조법상 교섭요구가 있으면 교섭요구 사실을 공고한 뒤 다른 노조의 교섭 참여 여부 등을 기다린다. 이후 과반수노조를 확정하는 등 절차를 진행한다. 이때 개정 노조법 아래라면 하청 노조가 교섭을 요구했을 때 원청 노조와 과반수노조 여부를 다퉈야 하는지가 모호하다. 현재 입법안 가운데 이를 규율한 대목은 없다.
여러 방법이 제기된다. 사회적 양극화와 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위한 법률 개정 취지를 고려해 원청과 교섭하자는 하청 노조 요구에 한해 창구단일화 절차를 적용제외 하는 방안도 꼽힌다. 혹은 하청 노조 간 과반수노조를 따지고 교섭창구를 단일화하는 방안, 원청 노조와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거치는 방안 등이 제기된다. 실제 집행 과정에서 쟁점이 될 수밖에 없는 사안이지만 검토되지 않고 있다.
또 다른 쟁점은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관련 심판과 쟁의조정을 해야 하는 노동위원회가 실질적 지배력을 검증할 수 있느냐는 대목이다. 현행 노동위는 기업별 노사관계에 익숙한 전문가로 구성돼 있다. 원·하청교섭에 대한 조정 경험은 사실상 전무하다.
이밖에도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제도 등 기업별 노사관계 관행에 갇힌 현행 법제도가 원·하청을 넘나드는 순간 혼란에 빠질 우려가 크다. 노조법 개정 이후 노사관계의 혼란을 최소화하려면 이런 제반 법제도의 정비도 필수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노조법 개정 뒤 발생할 제도적 충돌이나 관행의 변화 지점 등에서 정돈할 대목이 많다”며 “사회적 대화를 통해 노사가 함께 이런 대목을 논의해야 실제 집행력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노동계 질서 있는 대응에 “관행 정착” 달렸다
무엇보다 노동계가 노조법 개정 이후 세상을 구성할 준비가 됐느냐도 따져야 한다.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은 “원청과 하청노조의 교섭에서 어떤 것들을 교섭하고 관행으로 안착시킬 것인지 고민하고 노동계가 교섭전략을 구축해 질서 있게 대응할 필요가 있는데 미흡한 모양새”라며 “노동안전과 관련해 원·하청 공동대응이 필요하다는 차원에서 원청이 하청 노조의 교섭에 응해야 한다고 노동위를 중심으로 인정하는 추세가 있으니 노조법 개정 이후 더 강력한 추진동력으로 삼을 수도 있는 등 진지한 대응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노동계 일각에서는 이런 위기감에 따른 대응 검토에 나선 모양새다. 한국노총은 노조법 대응 TF를 구성했다. 류제강 대응TF팀장은 “노조법 개정 이후 원청사업주에 대한 단체교섭 요구가 커지겠으나 이들에게 전면적으로 사용자 책임이 부과되는 것이 아니라 일정 기간 갈등과 혼란이 상존할 것”이라며 “노동계는 원청 사업주에 대한 단체교섭 요구안을 전략적으로 정비하고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 등 대응방안을 수립하면서 특수고용·플랫폼 업종의 선도적 조직화와 교섭 요구로 사회적 의제화도 시도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