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통첩이다. 최희선(55·사진)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민주노총 차원에서 진행되는 24일 노조 총파업을 앞두고 정부에 20일까지 2021년 9·2 노정합의 이행을 위한 실질적인 계획을 가져올 것을 요구했다고 했다.
참을 만큼 참은 까닭이다. 2020년 느닷없이 세계를 덮친 코로나19 창궐에 맞서 이른바 K-방역을 구축한 것은 보건의료 노동자다. 2022년 의료기관 기준 5.2%에 불과한 공공의료 비율을 보유한 나라에서 공공병원은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됐다. 그러나 터널을 빠져나와 보니 마주한 것은 공공의료 예산삭감과 임금체불이다.
최 위원장은 지난 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실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나 “더 이상 바빠서 밥도 못 먹고 힘들다는 이야기는 하고 싶지도 않다”며 “정부는 보건의료체계 개혁과 보건의료 노동자의 생존과 삶의 질 개선을 위한 9·2 노정합의 이행계획과 의지를 20일 전까지 가져와야 한다”고 단언했다.
병원 노동환경 개선이 의료의 질 개선
- 다시 총파업이다.
“매번 하진 않았다(웃음). 2021년 총파업을 예고했다가 철회했고 2023년에 했다. 2021년 9·2 노정합의를 체결했는데 이후 이행이 되지 않았다. 이행을 요구하고 있다. 보건의료 노동자의 가장 큰 요구는 인력이다. 인력 기준을 마련하라는 것이다. 감염병 대응체계 마련도 포함했는데 역시 안 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코로나19 이전부터 신종플루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등 인수공통감염병 등이 주기적으로 유행하고 있다. 기후 변화로 발생한 문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 말고 제대로 감염병 체계를 마련하라는 것인데 이행이 안 된다. 코로나19 과정에서 헌신한 공공병원 노동자들은 임금체불을 계속 당하고 있다. 공공병원 자체가 죽어 간다. 이 때문에 새 정부는 9·2 노정합의를 다시 이행하고, 이행협의체를 재가동하겠다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 의료의 질 개선을 위한 주 4일 근무제 요구도 있다. 잠시도 쉴 틈이 없는 병원 업무 가운데 하루를 더 쉬는 것은 노동자뿐 아니라 환자돌봄에 긍정적 영향이 있다. 노동자만을 위한 게 아니라 의료정책의 일환이다. 5월14일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통령선거 후보와 정책협약을 했다. 거기에도 9·2 노정합의 이행 등이 포함돼 있다.”
- 준비 상황은.
“24일부터 이틀 파업을 목표로 한다. 127개 사업장에서 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을 신청했다. 병원 간접고용 노동자를 조직화한 새봄지부는 이 일정에 맞추긴 어렵다. 또 일부 지부들은 지난해 교섭이 타결되지 못한 곳도 있어 127곳이다. 지부별로 조정신청 보고대회를 통해 분위기를 끌어올리고 있다. 일부 병원은 아침 선전전만 해도 보건의료 노동자 400명이 참여한다. 열기가 높다. 5년간 참을 만큼 참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3년 반, 의정갈등으로 1년반 꼬박 5년동안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다. 그런데 처우가 개선된 건 없다. 박탈감이 크다. 인력 기준 마련 등이 다소 간접적이지만 이런 중요한 정책적 의제를 해결해야 처우개선 같은 노동조건 개선도 이뤄진다는 판단 아래 예년보다 참여 열기가 높다. 이를 토대로 이틀간 파업하면서 상경투쟁을 전개하고 이재명 정부와 국민의 정서를 고려할 계획이다. 보건의료 노동자는 병원을 유지해야 하는 책무가 있어 필수유지인력이 많다 보니 참여는 약 6만4천명 이상 정도로 본다. 상경투쟁에는 2만명가량이 집결할 수 있다.”
정부·노조 간 역사적 합의, 반드시 이행해야
- 9·2 노정합의 이행부터 짚어봐야 한다. 어떤 합의였고, 이행은 어떤 상황인가.
“멈춰 있다. 2021년 산별 총파업을 걸고 정부와 교섭했고 13차례 만나면서 체결했다. 역사적 합의였다. 정부가 노조와 협약서에 서명한 것은 처음 아닌가. 내용은 노동조건보다 보건의료정책과 사회연대적인 대목을 많이 담았다. 단순한 합의가 아니라 이행협의체 회의도 명시하고 총리가 추진상황을 점검한다는 내용까지 포함한 완벽한 합의였다. 실제 이행협의체 회의도 8차례나 진행됐다. 그러다 정권이 바뀐 뒤 무산됐다.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가 2022년 대정부질의에서 9·2 노정합의는 정권이 아니라 정부의 합의라며 이행해야 한다고 말한 기록까지 남았는데 열리지 않았다. 지금 이야기하는 필수·공공·지역의료 개선 등이 모두 망라돼 있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 확대 등 국민 의료 질 개선과 부담 완화 등이 포함돼 있다.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
- 보건의료 노동자 처우와 노동문제를 다시 강조한다면.
“위원장으로서 조합원들이 밥을 먹거나 화장실 갈 시간도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안타깝다. 그만 말하고 싶다. 그런데 개선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몇 년째인가. 업계에서 하는 이야기인데, 자녀가 간호사 합격하면 대부분 부모가 자랑스러워하는데 (부모가) 그 병원에 입원하면 그만두라고 한다고 한다.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 보이니까. 노조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 시간 이상 연장근로가 22%, 30분 이상은 56%다. 인력이 부족하다는 인식은 74%가 공감했다. 노동강도 높다고 62%가 호소한다. 임신과 출산이 어려워 쉬운 업무로 옮기길 원하는 비율이 78%에 달한다. 인력 충원을 요청해도 듣지 않는 게 64.4%다. 5년 이내 이직을 고려한다는 응답은 65%다. 참담하다. 도대체 뭘 더 해야 바뀌나. 어느 자리에서든 이런 이야기를 하면 국내 수가체계로는 돈을 못 벌어 처우개선이 어렵다고 한다. 그러면서 의료비 올려야 한다고 사용자들은 말한다. 그런 사용자들, 여기저기에 병원을 추가로 짓고 있다. 돈이 없다면서 그렇다. 5년간 억눌리고 억눌렸다.”
“약속 이행에 총파업 걸어야 하는 슬픈 상황”
- 정부와의 관계는 어떤가.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광장의 힘으로 생긴 정부이나 광장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많다. 9·2 노정합의도 이행을 하면 되는데 미지근한 태도다. 답답하다. 이재명 정부의 노정관계는 문재인 정부처럼 돼선 안 된다는 우려가 있다. 문재인 정부는 처음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했지만 실제로는 비정규직이 더 늘었다. 이번에 결정한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도 역대 정부 첫해 인상률 중 가장 낮다. 이재명 정부의 숙제가 많은데 기대감은 높지 않다. 장관을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으로 지명했지만 정부가 답할 것이 많다. 약속을 이행하라는 것에 총파업을 걸어야 하는 슬픈 상황이다.”
- 초기업교섭 같은 공약은 의미가 있지 않을까.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한다는 모양인데 전망이 쉽지 않다. 우선 사용자단체를 강제하는 것은 헌법상 어려움이 있다고 정리됐다. 그러면 어떻게 단체교섭 효력확장 제도를 구축하고 5명 미만 사업장의 노동조건을 개선할지, 대표산별노조의 역할을 어떻게 할지 방법을 찾아야 한다. 보건의료노조는 2022년부터 5명 미만 사업장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대한의사협회와 병원협회 등에 교섭을 요청하고 있다. 이런 대목의 물꼬라도 틔워줘야 한다. 개원의 중심의 의협은 노동조건에 대해서는 악덕사업주다. 심지어 병원급도 간호사가 최저임금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산별노조가 개입해 이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주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