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7일 감사원은 민주노총 공무원노조 법원본부(본부장 이성민) 간부들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법원행정처장에게 “사실상 전임자”로 활동해 온 간부 8명에게 지급된 임금 11억6천만원이 부당하다며 적절한 조치를 하라고 통보했다.

법원본부 간부 8명이 휴직하지 않고 공무원 신분을 유지한 채 법원에게 보수를 받으며 노조활동을 했기에 “사실상 전임자”라는 것이다.

2022년 개정 전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공무원노조법)은 공무원의 근로시간 면제(타임오프)를 규정하지 않았다. 노조간부들은 공무원노조법에 따라 휴직을 하거나, 휴직하지 않고 기관과 맺은 단체협약 등에 따라 노조활동을 해 왔다. 사용자와의 암묵적 혹은 명시적 합의로 공무원 신분을 유지하면서 노조활동을 한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대법원 국정감사에서 한 국민의힘 의원이 문제 삼으면서 감사원이 감사에 나섰다. 대법원 윤리감사관실과 대법원장이 환수를 결정하면 1명당 최소 1억원에서 2억4천만원의 보수를 법원에 돌려줘야 한다. 8명의 간부들은 노조 창립 이래로 20년 가까이 한 번도 문제된 적 없이 보장받아 온 노조활동 때문에 임금을 토해 낼 위기에 놓이게 됐다.

감사 결과 발표 이후 법원 내에선 “박봉에 시달리는 공무원에게 임금 환수는 살인”이라며 “노조탄압”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이성민(51·사진) 본부장은 지난달 18일 감사원 감사와 대법원에 항의하며 삭발한 뒤 17일 동안 단식 투쟁을 했다. 이후 12·3 내란사태가 터지며 본부는 헌법재판관 임명에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법원본부 사무실에서 이 본부장을 만나 이번 감사와 윤석열 정부 이후 노사관계 변화에 대해 물었다. 이 본부장은 “이번 감사는 노사자치주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윤석열 정부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공무원 노조가 기관과 맺은 단체협약에 시정조치를 추진하기도 했다. 서울교통공사는 지난 3월 1·2노조 간부들이 노조활동으로 무단결근했다며 32명을 집단해고했다. 감사원의 이번 감사가 노조를 폭력집단이나 부패에 비유했던 윤석열 정부의 노조탄압 기조와 달리 보이지 않는 이유다.

“단협으로 노조활동 위한 보직배려 받아 왔는데”

- 단식 이후 건강은.
“3·5일째가 특히 힘들었고 10일 이후부터도 고비였다. 단식하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정말 없다는 걸 깨달았다. 삭발하고 밥을 굶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더라. 그래도 하루도 빠짐없이 연대단체가 찾아왔고 법원 내부망에 (단식)사진이 계속 올라갔다. 법원도 상당히 부담이었을 거다. 법원은 단일노조인 데다가 직렬 간 갈등도 없다. 임금 환수 조치에 대한 조합원 반발이 거셌다.”

- 법원 감사 결과는.
“지난 6일 감사위원회가 열렸고 바로 결과가 나올 줄 알았는데 2주가 다 되도록 통보가 없다. 대법원 윤리감사관실이 감사한 내용을 감사위에 보고하면 대법원장이 결정해 집행하는 구조다. 아직 대법원장이 결정을 못 내린 것 같다.”

- 단협을 통해 노조활동을 보장받아 왔다고.
“법원본부는 대법원장 권한을 위임받은 법원행정처장과 단협을 맺는다. 2018년과 2021년 단협에 ‘조합 활동 보장’이라는 내용을 명문화하고 ‘근무시간 중 조합 활동을 보장한다’는 내용을 규정했다. 단협 이전에는 노사 간 암묵적으로 노조활동이 보장됐었다.

노조활동 보장은 인사발령에서도 알 수 있다. 본부 소속 간부들은 지역법원에 있다가도 수도권법원으로 발령이 난다. 수도권은 수요가 많아 발령이 어려운데도 그렇다. 또 노조 선거가 끝나고 당선자가 결정되면 정기 인사가 끝나도 추가 발령을 낸다. 조합활동 보장을 위해 보직배려를 받아 온 것이다.”

“법원행정처 대신해 조합원 고충처리”

- 현행법상 노조전임을 하려면 휴직을 하게 돼 있는데.
“감사원은 ‘사실상 전임’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표현을 썼다. 노조 전임자면 전임자이지 사실상 전임은 무슨 의미인가. 우리는 단협을 통해 노조활동을 보장받고 보직배려를 받아온 것이다.

단협 전문에 ‘상호 신의성실’이라는 표현이 있다. 노사가 단협을 맺었다면 이 내용을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거다. 차라리 단협이 무효라고 주장하든가 소송을 걸든지 해야지 살아 있는 단협을 어떻게 파기할 수 있나. 만약 법원이 환수 조치를 하면 사법부 이미지는 크게 실추된다고 본다. 또 이번에 선례가 만들어지면 노조활동하는 전국 공무원단체에 영향을 미칠거다. 법원본부 피해를 줄이는 차원일 뿐 아니라 다른 노조활동에도 피해를 막고 싶었다.

노조간부들도 일정부분 법원 업무를 한다. 그리고 기자회견 같은 일정은 개인 휴가를 소진한다. 법원행정처 노조 담당자와 수시로 만나고 조합원 복리후생과 관련된 일을 논의하고 고충처리를 해결해 왔다.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때도 이런 부분을 건들지는 않았다. 노사자치주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노사법치주의를 이야기한다. 기가 막힌다.

물론 휴직하고 전임자로 활동할 수도 있다. 그런데 전임자에게 급여를 지급할 수 있는 여력이 노조에 없다. 또 사용자도 어느 정도 노조가 법원행정처의 일을 함께한다고 봤기 때문에 이 같은 노조활동 보장이 가능했다고 본다. 최근 판사 정원을 370명 늘리기 위한 각급 법원 판사 정원법(판사정원법) 개정안을 통과하기 위해 노조가 국회를 수도 없이 방문했다. 업무양에 시달리는 판사와 직원들, 나아가 국민들이 신속한 재판을 받기 위해 노조가 나선 거다.”

- 이번 감사가 감사원법에 위배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감사원은 대통령에 소속돼 있다. 감사원법 24조에 따르면 감사원은 법원이나 헌법재판소 소속 공무원의 직무를 감찰할 수 없다. 회계감사만 가능하다. 삼권분립에 따라 대통령 소속기관이 법원의 독립성을 훼손하지 못하게 한 거다. 이게 윤석열 대통령이 말하는 법치주의인가.”

- 최근 국민의힘이 추천한 조한창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대해 반대성명을 냈다.
“판사 정원을 늘리는 문제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문제에도 노조는 역할을 하고 있다. 조한창 후보자는 양승태 대법원장 당시 국정농단에 관여한 사람이다. 사법부와 행정부가 재판을 거래해 재판 결과가 뒤바뀌었다. 사법부 독립성을 훼손했다. 이런 사람을 윤석열 내란사태 재판 자리에 앉혀도 될까. 조 후보자는 대법관 후보로도 세 번 추천됐지만 임명제청되지 못했다.

본부는 현 조희대 대법원장 임명 전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해서도 임명을 반대했다. 사법부는 국민과 국가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국민의 삶도 노조가 안고 가야 한다. 우리나라는 정치인들이 정치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를 손쉽게 사법부로 던진다. 사법부는 사법부대로 판단 부담을 안고 대법원이 판결을 확정하면 정치적 논쟁은 끝난다. 법원은 마지막 보루다. 판결은 역사에 남고 국민 삶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조합원도 이런 역할을 하는 노조를 바랄 것이다. 우리는 주요 인사가 나면 전국의 조합원에게 해당 후보자에 대한 평가를 받는다. 이를 바탕으로 성명을 낸다. 우리나라는 상고·항소율이 유독 높다. 판사 시선이 국민 시선에 안 맞는 데 이유가 있다고 본다. 국민 정서에 맞는 판결문이 나오지 않아서다. 법원 구성원이자 국민으로 사회적 역할을 하는 거다.”

-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애가 4명 있다. 공무원을 20년 넘게 했는데 돈이 안 모였다. 사교육비는 부담이고 안 굶긴 정도다. 노조를 하면서 항상 생각하는 게 있다. 아이들이 살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만하게 만들어 주는 것. 나쁜 일은 제 세대에서 끝나면 좋겠다. 다음 세대를 위해 우리 세대가 할 일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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