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노동뉴스> 기자들은 매일 ‘노동’ 뉴스만 전해야 하는 비극을 겪고 있다는데, 실은 사회운동 활동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스포츠로 ‘매일 노는’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조금은 슬프고 조금은 절망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하려 한다.
“그 사람들 죄를 밝혀 줘”
2020년, 철인3종 경기 최숙현 선수가 감독·팀닥터·선배 선수의 폭력으로 세상을 떠나며 남긴 말이다. 체육계에서는 영웅신화에 가리워진 반인권적인 사건이 반복됐다. 2018년부터 조재범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코치의 성폭력 사건을 비롯해 다양한 스포츠 미투가 이어졌다. 국가인권위원회 스포츠인권 특별조사단이 출범했고, 체육 분야의 구조적 혁신을 위한 민관합동기구 스포츠혁신위원회도 출범했다.
소정의 성과는 있었지만, 체육계는 쉽사리 바뀌지 않았다. 대한체육회와 경기단체 중심으로 짜인 폐쇄적인 체육계는 생각 이상으로 공고했다. 훌륭한 운동선수가 되기 위해선 폭력을 감내해야 한다는 생각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최근 손축구 아카데미 스포츠 폭력 사태에서도, 몇몇 누리꾼들은 비슷한 논리로 가해자를 옹호하곤 했다. 더 많은 폭력과 죽음을 막기 위해 혁신을 외치는 사람들이 고립되지 않도록, 체육계를 넘어 시민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사회운동이 필요했다.
내가 소속된 문화연대 대안체육회에선 이와 같은 배경에서 2021년부터 스포츠 시민운동을 조직하기로 했다. 폭로와 제도 개혁을 넘어, 스포츠 현장 및 시민사회 곳곳에서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동료를 더 많이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그때부터 영웅 서사를 넘어 스포츠를 둘러싼 다양한 주체들의 이야기를 담은 웹진 ‘움직’ 발행, 체육계 시민단체를 넘어 다양한 시민 및 사회운동단체가 함께할 수 있는 네트워크 ‘모두의 운동회 조직위원회’ 조직, 누구나 차별받지 않고 함께하는 스포츠를 위한 ‘모두의 운동회’ 행사를 진행하였다. 대학 청소노동자 스포츠권을 위한 프로젝트 ‘호호체육관’도 같은 문제의식 아래 출발한 사업이다.
스포츠 시민운동 네트워크 초동모임
‘모두의 스포츠’ 밑그림을 그리다
스포츠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하지만, 누군가는 여기서 배제돼 있다. 장애인, 퀴어, 그리고 비인간주체 등 ‘모두의 스포츠’를 실천하기 위해 퀴어여성네트워크·녹색연합·체육시민연대·민변·전국체육교사모임·위밋업스포츠·장애인운동 활동가 등 다양한 단체와 개인이 모였다.
우리가 바라는 대로 ‘모두’의 운동회가 가능할까? 나이·성별·장애와 무관하게. 환경에 전혀 해를 끼치지 않는 행사를 만들 수 있을까?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나을지 모른다. 참고할 사례도 많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깨달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럴듯한 답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향유하는 스포츠’가 가능하게 하는 최소한의 조건을 마련하고 최대한의 조건을 상상하는 일이라는 걸.
그 첫걸음의 일환으로 모두의 운동회 가이드북을 함께 만들었다. ‘모두의 운동회를 위한 선언’부터 시작해 환경을 착취하지 않는, 여성을 차별하지 않는, 장애를 차별하지 않는, ‘LGBTAIQ’를 차별하지 않는 운동회를 위한 방법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몸을 움직이고 마음을 합치는
운동의 본질에 주목하다
누구도 소외되거나 배제되지 않고 참여할 수 있는 운동회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기존 스포츠 종목을 수정하기보다는 놀이와 운동 관점에서 다시 접근했다. 경쟁이 아니라 ‘몸을 쓰는 일’이라는 본질에 초점을 맞췄다. 평소 주민들과 연극 기반의 놀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다양한 운동회를 진행해 온 협동조합 마을온예술의 기획자 노디가 프로그램 기획에 큰 기여를 했다. 다양한 연령대 참여자와 신체활동을 진행해 본 경험을 반영해, 체력과 전문성의 차이를 넘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기획했다.
“원래 놀이나 스포츠는 우승이라는 명확한 목적이 있잖아요. 선의의 경쟁이라 하더라도 승리에 대한 욕구가 생기기 마련이지요. 다만 ‘모두의 운동회’는 운동이라는 것 자체가 어디서부터 출발했을지 그 의미를 소중하게 한번 더 되짚어 보고 이를 담아내고자 해요.”
‘모두의 운동회’를 기획한 노디의 말을 따라, 우리는 ‘모두 선언’으로 시작해 다양한 모둠 활동과 팀 미션 올림픽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빨강팀·파랑팀·초록팀으로 나눠 개인 간 경쟁보다 팀 간의 협동을 중심으로 한 놀이를 배치했다. 프로그램 마지막, 모두를 위한 시상식에선 순위를 매기기보다 좋은 에너지를 나눠 준 참가자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한 참가자는 평소 운동을 잘 못해 하기 싫어했지만, 모두의 운동회에서 잘하고 못하고가 중요하지 않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사회운동을 하다 보면 가끔 응급실에서 일하는 의사가 된 기분이 들곤 한다. 사회 곳곳에서 비극적인 사건은 계속 터지는데, 손은 부족하고 활동가들은 본질적인 문제를 쉬이 해결하지 못하고 더욱 급해 보이는 사건으로 옮겨다녀야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건강을 위해선 가정의학과 같은 사회운동도 분명 필요하다. 나는 모두의 운동회가 스포츠 인권운동에서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대안적이고 민주적인 스포츠를 몸으로 경험하고 동료와 힘을 합쳐 땀을 흘려 본 사람이라면, 그가 인권의 편에 설 것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그게 우리 문화연대 대안체육회가 운동(exercise)을 통해 운동(movement)하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