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에 몰입해 있으면 계속 그것만 생각나는데, 점심 때든 저녁 때든 30분~1시간씩 탁구 치고 오면 환기가 돼더라고요. 나중에 업무에 더 집중되는 것도 있고요.”
김보경 고용노동부 사무관(45)이 탁구와 만난 건 2017년. 본부에서 근무를 시작해 강도 높은 업무에 지쳐 가던 때다. 업무와 스스로를 분리시킬 뭔가를 찾았고 직장 동료를 따라 홀린듯 탁구에 입문했다. 탁구를 쳤던 기억이라곤 고교 수업시간이 전부였지만, 그는 어느새 탁구에 빠졌다. 일주일에 두 번 점심시간에 짬을 내 탁구 레슨을 받고, 치는 게 일상이다. K직장인이자 엄마인 그에게 저녁시간은 자신만의 것이 아니다.
탁구는 그의 삶을 바꿨다. “세종과 청사를 오가다 2020년 세종에 이사를 왔어요. 직원들 말고는 교류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탁구를 치면서 탁구 지역 네트워크를 통해 지역 사람들과 알게 되고 10대부터 50·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직업층을 가진 사람들과도 교류하게 돼서 좋았죠.”
그렇게 좋은 탁구를 잠시 멈춰야 할 때도 있었다. 코로나19로 온 사회가 거리두기를 하던 때다. 공무원 신분이다 보니 더 엄격하게 거리두기를 지켜야 했고, 그는 집과 회사만을 오가야 했다. 요가 같은 홈트레이닝으로 탁구의 아쉬움을 달랬다.
2년간 긴 기다림 끝 2022년 4월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됐고, 청사 체육관이 다시 문을 열었다. 그해 김보경 사무관은 새로 문을 열게 된 탁구동호회 ‘오늘 탁구나~!’의 총무를 맡았다. 기존 탁구동호회 이름은 ‘스매싱’이었는데, “오늘 탁구나 칠래?” 동료에게 가볍게 건네는 말처럼 동호회 문턱이 낮아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새 이름을 지었다. 이후 탁구를 쳐 본 경험이 없었던 여성들의 동호회 가입이 늘었다. 동호회에서는 이들을 ‘새싹’이라 부른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기 때문이다.
총무를 맡게 된 뒤 김 사무관은 사설 탁구장을 찾았다. “이렇게 미진한 실력으로 총무를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설 탁구장에서 재야의 고수인 ‘탁구 환자’들과 경기를 치르는 것은 또 다른 재미였다. 탁구 환자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탁구장을 찾는 이들을 일컫는다.
‘탁구가 운동이 돼?’라고 질문하는 이들도 있지만 운동량이 상당하다는 게 김 사무관의 설명이다. “저는 원래 땀을 잘 안 흘리는데 15분만 쳐도 땀을 엄청 많이 흘려요. 주변에는 탁구를 친 뒤 10킬로그램 빠진 분도 계시고요.” 탁구는 공이 오는 방향에 따라 몸을 움직이며 라켓에 공을 맞추는 운동이다. 높은 순발력과 반사신경을 요한다. 다만 탁구에 막 입문한 ‘새싹’들은 한 자리에 서서 탁구라켓으로 탁구공을 맞추는 연습을 주로 하기 때문에 운동량이 많지 않다.
매년 열리는 크고 작은 경기들은 동호회 회원들의 큰 기쁨이다. 지난해부터 동호회는 리그전을 치르고 있다. 종목마다 선수들의 기량을 겨루는 ‘세계선수권대회’가 있듯이 노동부 탁구동호회 회원 간 탁구 기량을 겨루는 대회다. 매월 마지막 주 화요일에 치러진다. 규정은 다소 유연하다. 회원 2명 이상만 모이면 무조건 경기를 진행하고, 당일 모이는 인원에 따라 토너먼트 방식을 결정해 단식·복식 경기 등을 치른다.
리그전에서 우승한 이에게는 주는 상품은 소박하지만, 대회에 오는 이들 중 추첨해 주는 경품은 푸짐하다. “우승은 매번 하는 사람이 할 수도 있으니, 우승상품은 약간의 동기부여가 될 수 있는 1만원 수준의 커피쿠폰·탁구공 등을 주고 대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추첨으로 주는 경품은 좀 푸짐하게 정하자고 회원들과 정했죠.” 경품은 값나가는 탁구 유니폼, 탁구라켓에 씌우는 고무(러버)다. 1만원이면 살 수 있는 러버도 있지만 좋은 러버는 10만원을 넘기도 한다.
노동부 장관배 탁구대회도 매년 열린다. 본부를 포함해 지방노동관서 등이 참여하는데 올해는 서울·중부·대전·부산·광주 지방고용노동청, 산업재해보상보험심사위원회 등 7곳이 참여했다.
동료의 권유에 이끌려 동호회를 찾는 ‘새싹’ 회원들이 생기고, 탁구에 진심인 회원이 늘어난 덕일까. 노동부는 올해 4월에 치러진 36회 중앙행정기관 탁구동호인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24개 중앙부처가 경쟁했다. 3년 연속 1위를 차지했던 공무원계의 탁구 강호, 감사원을 꺾어 뜻깊었다. “마지막 게임에서 8대8, 10대8 막 엎치락뒤치락하다가 이겼거든요. 끝난 뒤 모두 라켓울 던지고 둘러 모여 빙글빙글 돌았어요.”
탁구를 한 단어로 정의하면 무엇이라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김 사무관은 고민도 않고 “설렘”이라고 답했다.
“사실 어른이 될수록 일상에 재미를 느끼는 것들이 적어지거나 없어지잖아요. 그런데 50대가 넘은 회원들도 대회 나가기 전에 설렌다고 하시거든요. 소풍을 기다리는 초등학교 학생처럼. 내일 대회에 가서 내가 뭘, 어떻게 해야 되지. 탁구대 앞에 딱 서서 첫 서비스를 넣을 때가 긴장되는 순간인데 그때 호흡을 어떻게 해야되지. 막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자거든요. 대회에 대한 설렘도 있고, 치러 가면 또 재밌고 그런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