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1차 하청업체 사외서열·보급 작업자들을 한국지엠이 직접고용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공정과 장소를 분리해 불법파견 책임을 회피하려는 원청 ‘꼼수’가 대법원에서 저지당한 셈이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지난 11일 ㈜BTX코리아 소속 황아무개씨 등 2명이 한국지엠㈜을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확인 등 소송에서 원심의 원고 승소 판결을 확정했다. 한국지엠은 2004년 초 BTX코리아와 서열·보급업무 도급계약을 체결했다. 원청 사내하청업체 A가 담당하던 서열·보급 업무를 함께 담당했다. 황씨 등은 2004~2006년 BTX코리아에 입사해 조립공정에 필요한 부품·자재를 조달해 지정된 위치에 운반하는 보급업무, 부품·자재를 사전에 지정된 순서에 따라 늘어놓는 서열업무를 해 왔다. 서열·보급업무는 대부분 원청 공장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하청업체 사업장에서 이뤄졌다.

사측은 재판 과정에서 서열·보급업무가 컨베이어벨트에서 직접 작업이 이뤄지지 않은 간접공정인 점, 원청 공장 밖에서 업무가 이뤄진 점 등을 들어 합법적 도급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하급심 모두 노동자 손을 들어줬다.

대법 “간접공정도 컨베이어벨트에 구속돼”

대법원 역시 하급심 판단이 맞다고 봤다. 대법원은 우선 BTX코리아와 같은 업무를 하던 사내하청업체 A가 불법파견을 인정받은 점부터 짚었다. 2000년대 초 한국지엠 불법파견 문제가 제기된 직후 A 대표는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파견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2013년 유죄를 확정받았다. 금속노조 대표 소송을 통해 A 소속 노동자들이 2016년 대법원에서 직접고용 판단을 받기도 했다.

대법원은 황씨 등이 원청의 지휘·명령을 받는 파견관계에 있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2005년경 황씨 등이 담당한 서열보급 업무는 원청이 전산시스템을 통해 제공하는 작업사양서에 따라 수행됐다”며 “하청관리자는 주로 원청으로부터 받은 지시를 노동자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했을 뿐, 하청관리자가 일부 직접 지시하거나 원청 지시를 변경했더라도, 원청이 정한 작업방법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만 가능했다”고 판시했다.

사측의 간접공정 주장에 대법원은 “서열보급 업무는 컨베이어 라인의 생산라인에 맞춰 적시에 조립부품 등을 제공하는 것이므로 컨베이어벨트의 생산속도 및 일정에 연동돼 이뤄졌다”며 “그 결과 업무의 시작 및 종료시간, 연장·야간·휴일근무 시간 등이 원청이 정한 생산계획에 구속됐고, 해당 공정의 작업량이나 투입 인원 또한 컨베이어벨트의 작동 속도 내지 생산량을 감안해 책정됐다”고 봤다.

장소 분리 꼼수 막은 대법원

가장 쟁점이 됐던 작업 장소와 관련해 대법원은 “하청업체는 원청 창원공장 내에서 이뤄지던 서열업무를 외부사업장에서 수행하기도 했으나, 이는 원청 창원공장의 공간 부족으로 인한 것이었을 뿐, 원청의 창원공장 안에서 하는 서열업무와 외부사업장에서 하는 서열업무 사이에 특별한 차이는 없었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대법원은 원청이 원청노동자들에게 요구되는 표준작업방식을 하청노동자들에게도 요구하고 동일한 감사와 검사를 받도록 하는 등 사실상 원청 노동자들과 하청노동자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관리한 점, 하청노동자의 노동력에 따라 도급비가 지급돼 원청이 하청업체 도급비 적정성 검증을 위해 하청노동자 근태자료를 공유받은 점 등도 짚었다.

하청업체가 지게차·트럭 등 일부 장비를 보유하는 등 독립적 조직을 갖췄다는 주장에 대해선 대법원은 “핵심적으로 필요한 생산 관련 시설, 장비, 작업도구, 부품 등은 대부분 원청 소유였고, 하청업체는 이를 임차해 사용했다”며 “원청이 주장하는 2008년 말 이후 하청업체 보유 장비 및 거래처 현황 등의 사정은 원고들이 원청 노동자로 간주되거나 원청에 직접고용의무가 발생한 이후 사정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정준영 변호사(법무법인 여는)는 “현대위아 사건에서 정규직이 없는 사외하청 공정에 대해 2021년 대법원이 불법파견을 인정했던 것처럼 이번 판결도 작업 장소가 사내인지 사외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불법파견 책임 회피 한국지엠 대법 선고 잇따라

이 사건 외에도 한국지엠 불법파견 사건 선고가 줄줄이 예정돼 있다. 2016년 대법원 판결을 확정받은 금속노조 1차 소송 이후 2·3·4차 소송 선고가 오는 25일 대법원에서 있을 예정이다. 한국지엠은 2005년 불법파견 수사를 시작으로 2013년 대표이사가 파견법 위반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이어 2016년 대법원은 한국지엠에 사내하청노동자 직접고용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이후 한국지엠은 작업공정을 분리하는 등 업무절차를 변경하고,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노동자에게 법원의 개별 판단을 요구하는 한편 불법파견 소 취하를 조건으로 발탁채용하는 방식으로 불법파견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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