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을 상대로 불법파견 소송을 낸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원청의 방해공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승소 사례가 나오자 불법파견 책임을 회피하려는 원청이 소 취하를 압박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소를 취하하지 않으면 먼 지역으로 전보가거나 해고자로 남아야 했다.
최근 원청의 이러한 행위가 부당노동행위인지에 대한 법원 판결이 잇따라 나왔다. 현대위아는 부당노동행위가 인정된 반면 한국지엠은 책임을 피했다. 한국지엠 비정규직들은 다른 방법으로 원청의 불법행위를 인정받겠다고 예고했다.
소 취하 안 하면 다른 지방가라?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7부(재판장 구회근 부장판사)는 지난달 23일 현대위아㈜가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낸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판정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유지했다.
현대위아 평택1공장에서 일하던 사내하청업체 노동자들이 2020년 7월 울산3공장으로 출근하라는 지시를 받으면서 문제가 시작됐다. 당시 평택1공장 소속 금속노조 현대위아비정규직평택지회 조합원들은 원청을 상대로 제기한 불법파견 소송의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었다.
울산3공장으로 가지 않기 위해선 소를 취하해야 했다. 원청과 사내하청업체들은 평택 1·2공장을 아우르는 통합 신설법인을 설립하고, 소송을 취하하거나 같은 내용의 소송을 제기하지 않는 조건으로 신설법인 고용승계와 2천만~3천만원가량의 보상금을 제시했다. 원청이 직접고용 의무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이다.
40여명의 소 취하자들이 나왔다. 지회 조합원이었던 이들은 소 취하와 동시에 지회를 탈퇴했다. 신설법인에 소 취하자와 부제소 합의자를 중심으로 노조가 설립됐고, 교섭대표노조였던 지회를 대체했다.
원청에 불법파견 책임을 묻고자 했던 이들은 울산 출근을 거부하고 600여일 넘게 평택에서 출근 투쟁을 벌였다. 아울러 원청이 부당노동행위를 했다며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했다. 부당노동행위가 아니라는 경기지방노동위원회 판정은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뒤집혔다. 현대위아는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법원 “파견법 잠탈 목적” 부노 인정
1·2심은 노동자 손을 들어줬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재판장 박정대 부장판사)는 지난해 4월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먼저 원청이 부당노동행위 주체인 사용자라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현대위아가 “파견법상 직접고용의무를 잠탈할 목적으로” “조합원들의 재판청구권 행사이자 정당한 활동이라고 할 수 있는 불법파견 소 취하 또는 부제소 합의를 압박·종용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수용한 노동자들은 평택1공장 신설법인으로 고용을 승계한 반면, 이를 거부한 이들은 울산3공장으로 전보하는 차별적 결과를 초래시켰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현대위아가 우월한 지위 내지 법인격을 남용해 노조의 조직과 운영, 조합 활동을 심각하게 위축시킨 지배개입의 부당노동행위를 했다”며 원직 복귀를 명령했다. 2심 재판부도 원심이 옳다고 판단했다.
문제는 여전히 원직 복귀가 언제 이뤄질지 미지수라는 점이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대법원은 2021년 7월 현대위아가 사내하청업체 노동자들을 불법으로 사용했다고 인정했다. 이에 현대위아는 2022년 1월 1차 소송자와 2차 소송자 97명에 대한 직접고용을 결정했다. 문제는 3차 소송자 14명이다. 이들은 최근 불법파견 1심 소송에서 승소했다. 신생법인으로 고용승계되지도 않고, 정규직 전환도 되지 않은 이들은 현재 해고자 신분이다. 현대위아비정규직평택지회 관계자는 “사측은 (불법파견 소송) 대법원 판단까지 받고 오라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소 취하해야만 정규직?
반면 한국지엠은 부당노동행위 책임을 피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재판장 박정대 부장판사)는 지난달 2일 금속노조와 한국지엠 사내하청노동자 15명이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낸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판정취소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한국지엠은 하급심에서 사내하청노동자들에 대한 불법파견이 인정되자 2022년 발탁채용을 추진했다. 사내하청업체의 직접공정 중 일부 공정을 선별해 소 취하 및 부제소 합의 등을 조건을 수용한 노동자들만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내용이다.
발탁채용은 불법파견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원청의 꼼수라며 사내하청노동자 17명이 이를 거부했고, 이 중 15명이 원청을 상대로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에 나섰다. 그러나 인천지방노동위원회와 중노위는 모두 사측 손을 들어줬다.
법원 “비조합원도 소송 참여해 노조 겨냥 아냐”
법원 역시 노동위원회와 같은 판단을 내렸다. 한국지엠이 부당노동행위 사용자에 해당하지만 발탁채용 자체를 부당노동행위로 볼 수 없다고 봤다. 발탁채용은 사측의 합리적 경영 행위이며, 조합원과 비조합원 모두 소송에 참여해 노조를 겨냥한 행위가 아니라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한국지엠은 사내하청업체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정함에 있어 직간접적으로 지배력 내지 영향력을 행사해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면서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며 부당노동행위 금지 의지 의무를 준수할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발탁채용에 대해 재판부는 “합리적 경영상 판단에 의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불법파견 소송에 비조합원도 다수 참여한 점을 언급하며 “발탁채용 조건으로 제시한 내용은 노동자들이 최종적으로 (불법파견 소송에서) 승소했을 때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불리한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발탁채용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것은 조합원인지 여부와 관계없이 선별 공정에서 근무하는 사내 협력업체 노동자 모두에게 일률적으로 적용돼, 그러한 조건 제시가 노조 활동을 이유로 한 것이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한국지엠 사내하청노동자들은 다른 방식으로 원청의 불법행위를 인정받겠다는 방침이다. 비정규직지회 관계자는 “부당노동행위는 노동자가 모두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이기기 어렵다”면서도 “원청이 부당노동행위 사용자로 인정된 점은 주목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지회를 대리한 김유정 변호사(법무법인 여는)는 “부당노동행위로 인정되지 않았지만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을 잠탈하려는 불법 행위인 것은 확실하다”며 “항소하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판단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등 민사 방식을 검토하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발탁채용을 거부한 이들은 해고자로 불법파견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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